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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레나팍 Jul 28. 2022

새벽 6시 출근, 10시 퇴근길에 쓰는 워킹맘의 생각

새벽 6시, 따르르릉 알람이 울린다.

평소와 다르게 벌떡 일어나 순식간에 을 챙 뒤 출근하러 나섰다. 이번 주는 1년 중 가장 바쁜 주간에 해당한다. 내일 행사 및 오픈 준비를 앞두고 오늘이 데드라인인 해야 할 일 15개의 체크리스트가 머릿속에 떠다니니 눈이 절로 떠졌다. 출근 준비하는 부산함에 아이가 눈을 떠서 울자 슬며시 가서 다시 재운다.


이불을 덮어주고 토닥이며 프랑스식 인사처럼 아이 볼에 내 볼을 맞대며 잠시 숨을 고른다. 볼 포개심호흡을 가다듬으니 마음평온함이 스며든다. 아이 볼이 엄마품처럼 포근하다. 지난 며칠간의 노곤함이 풀리는 기분이다. 10초도 지나지 않았을까? 엄마는 달콤한 시간을 뒤로하고 아이가 잠들자 바람처럼 사라졌다.


출근길 버스에 올랐는데 10분 뒤, 남편에게 문자가 온다. 아이가 엄마를 찾으며 울고 있다는 연락이다. 버스를 돌려서 가고 싶지만 이미 그럴 수는 없는 상황이다. 남편이 어떻게든 아이를 달래는 미션을 잘 수행해주길 바랄 수밖에 없다.


어제도 집에 11시 들어가자 아이가 평소와 다르게 쪼르르 달려와 내 앞에서 폴짝 뛰 안긴다. "엄마~ 엄마~ 엄마~~" 하며 주변을 빙글빙글 돌 기쁨의 목소리로 종알거린다. 엄마를 기다렸다는 것을 온몸으로 표현하는 아이다. 아이는 나와 1분도 보내지 못한 하루가 아쉬웠는지 함께 책을 읽으며 늦게 잠들었다.


오늘도 피할 수 없는 야근이 예정된 나는 아침부터 밤까지 달렸다. 많은 일을 한정된 시간에 해야 한다는 압박행사 준비로 인해 1분도 아낌없이 쓰며 불태웠다. 간의 집중력이 이렇게까지 발휘될 수 있는 점에 스스로 놀랄 지경이었다. 수일을 야근하며 해야 할 업무량을 단일에 끝냈다.


이틀간 기안을 10개 가까이 쓰고, 수십 통의 전화 응대를 동시다발로 하고, 단체 수십 명에게 안내 메일을 보내고, RSVP를 확인하고, MOU 체결 준비를 하고, 유관부처와 업무 협의를 하고, 도중에 방문한 협업 기관을 응대하고, 회의하고, 홍보물을 만들고, 요청사항들을 처리하다 보니 1분도 쉴 틈 없이 일했다. 흐트러짐 없이 놀라운 집중력과 업무 효율성을 발휘했다. 10시, 겨우 회사 밖을 나서며 그제야 한숨 돌린다. 후~ 선선한 밤공기, 정신은 멍한 채 밀려오는 피로감, 긴장이 풀리며 찾아오는 약간의 안도감, 일에 매진한 뒤 찾아오는 오묘한 보람, 이런 느낌 낯설지 않다. 지난 야근의 시절이 떠오른다.




20대, 첫 직장에선 구조적으로 매일 야근이 일상이었고 월말에는 1주간 11시, 12시 퇴근을 했으며 때론 새벽 퇴근을 하기도 했다. 가장 어리고 젊은 막내인 나도 12시가 가까워지면 정신이 흐트러지는데(신기한 건 늦게까지 놀 때는 안 피곤 하다), 30-40대 선배들은 끄덕 없이 일하는 모습에서 깜짝 놀랐다. 그 앞에서 차마 힘들어서 집에 간다고 말은 못 하고 약해 보이고 싶지 않아서 더욱 이를 악물고 버텼던 것 같다.


30대, 결혼 전, 이직 후에도 일복은 많았다. 지금도 잊을 수 없는 첫 축제를 준비할 때는 몇 달간 10시 이후에 퇴근했고 주말도 없는 날들을 보냈다. 몇 년간 야근과 나는 뗄 수 없는 사이었다. 일을 많이 하니까 일이 계속 많아졌다. 하나라도 허투루 할 수 없어 내 모든 역량을 쏟아 일했다. 그렇게 일에 흠뻑 빠져 살았다. 을 통해 기쁨, 성취감, 힘듦, 분노, 애정을 모두 느끼며 사랑에 빠졌다.


그리고 워킹맘인 지금의 나, 예전처럼 야근을 밥먹듯이 하며 일할 수 없는 상황에 놓였다. 퇴근하면 집으로 출근해야 하기 때문이다. 야근을 하려면 집에서 누군가는 내 대신 아이를 돌봐줘야 하고 나는 회사와 집, 양쪽에 야근 허락을 받아야 하는 입장이 되었다. 그러다 보니 주어진 여건에 맞춰 변해야 했다. 정해진 근무시간에 업무를 끝내기 위해 시간을 잘 활용해 중해서 일야 한다.


더 많이, 더 잘할 수 있는 일들도 한정된 시간 안에 해낼 수 있는 만큼만 해야 한다. 스스로의 눈높이를 낮출 수밖에 없다. 직원들과 농담을 나눌 시간도 잘 내지 않는다. 정시퇴근을 위해 정해진 시간 안에 낼 수 있는 만큼의 아웃풋을 내고 시간을 허투루 쓰지 않는 방식을 택했다. 예전과 다르게 실수도 하고 삐걱대기도 하지만 스스로에게 관대해기로 했다. 대치를 낮추고 사 내 가에서 자유로워져야만 한다. 내가 할 수 있는 만큼에서 노력하고 그 안에서 만족을 찾기로 했다. 더 이상 나는 직장인으로만 살아갈 수 없기 때문이다. 






오늘도 11시에 집에 도착하니 안 자고 기다리던 아이가 환하게 반겨준다. 피곤한 듯 안도한듯한 표정의 남편이 고생했다고 반겨준다. 남편은 어제는 짜장면, 오늘은 치킨을 시켜서 아이와 저녁을 먹었다. 내가 매일 늦게 오면 치킨과 중국집 배달 사이가 무한반복이 되는 걸까?


직업이 2개인 워킹맘은 하루에 두 번 출근한다. 회사일을 선택하는 날은 집으로의 출근이 늦어지고, 집으로 정시출근을 하려면 회사에서 눈치가 보여도 정시퇴근의 삶을 선택해야 한다. 직장이냐, 집이냐? 어떤 쪽을 선택하던 아쉬움이 남을 수 있다. 일가정 양립의 밸런스를 위해선 내가

머물고 있는 공간에 집중하고 자신과 적정선의 타협을 하는 게 좋다. 적당한 내려놓음이 있어야 일, 가정 모두에서 만족감을 느낄 수 있다.


내가 선택한 방향은
이 순간을 밀도 있게 사는 것
내가 감당할 수 있는만큼만 하는 것
그리고 감사하고 만족하는 마음이다.


저녁이 되면 날 기다리는 아이에게 가고,

아침이 되면 날 기다리는 서류에게 간다.

두 개의 직업을 가진 나는 오늘도 줄다리기 위에서 균형을 잡으며 양쪽에서 기쁨과 행복을 찾 정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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