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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레나팍 Aug 04. 2022

엄마는 하이힐을 신지 않는다


하이힐을 신을까 말까?



신발장 앞에서 잠시 고민에 빠진다. 정장을 입고 평소처럼 운동화를 신을지 하이힐을 신을지 몇 초의 갈등과 함께 하이힐을 선택했다. 오늘은 결혼식장에 가는 날이다. 결혼식에 참석하는 것도 오랜만인데 하이힐을 신은 건 더 오래된 몇 년만이다. 그리고 아이와 단둘이 결혼식장에 참석하는 건 처음이다.


짧은 순간, 여자로서 예쁨을 선택할지, 육아하는 엄마로서 편함을 선택할지 갈등했다. 아이를 데리고 대중교통을 이용해 목적지에 간다는 미션이 있었지만, 집과 예식장 앞에 정류장이 있으니 조금 걷는 건 괜찮겠지란 생각에 끌리는 대로 구두를 택했다.


회사에도 늘 양말에 운동화를 신고 다니기 때문에 여름임에도 맨발로 외출한 적이 없었다. 처음으로 민낯의 발을 드러내고 구두를 신었는데 뭔가 못 보던 것이 눈에 확 들어다.

엄마의 발, 엄마 따라 구두를 신은 딸의 발도 빼꼼히 보인다


이게 뭐지? 가만히 생각해보니 며칠 전 아이가 모기 퇴치 스티커를 발에 붙여주었던 기억이 떠오른다. 나는  내 발에 이런 스티커가 붙여진 걸 알아차릴 겨를도 없이 지내다 구두를 신고 맨발을 마주하고서야 알아차렸다. 문신 스티커 같은 재질이라 씻거나 며칠이 지나도 떨어지지 않았던 것이다. 스티커를 떼야하나 싶었지만 시간이 없어 서둘러 나왔다. 걸음을 옮길수록 눈에 선명히 띄는 스티커다. 민망함도 잠시, 꿀벌 스티커가 마치 내가 일반 사람이 아닌 '엄마'라고 알려주는 배지 같이 느껴졌다. 하나의 징표라고 해야 할까? 


혼자 옷을 차려입고 나간다면 결혼을 했는지, 아이가 있는지 옷차림만으로는 알기 힘들다. 그런데 아이가 손으로 직접 붙여준 스티커가 당당히 말해주고 있다. 나는 자랑스러운 대한민국의 엄마라고 말이다. 그래서 이 스티커를 떼지 않기로 했다. 가능한 오래오래 붙어있을 때까지 그냥 두고 싶어졌다. 나는 사랑스러운 아이를 가진, 그래서 세상을 다 가진 것 같은 엄마임을 자랑하고 싶었다. 엄마 인증 스티커 배지는 내가 엄마로 살아가고 있음을 다시 상기시켜 주었다. 엄마가 되어 많은 것을 잃은 것 같지만, 얻은 것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크다.




임신과 출산을 앞두고 아무도 내게 '행복'에 대해서 얘기해 주지 않았다. 육아에 수반되는 고통, 인내, 희생, 포기, 힘듦 등의 부정적인 단어들을 더 많이 들었다. 나 역시 '나의 자유와 행복은 끝이구나'라고 생각하며 마음의 대비를 단단히 했다. 세계여행을 다니고, 원하는 직업을 찾아가고, 하고 싶은 일을 도전하며 살아왔기에 '엄마'가 되면 내가 살아온 인생 방식이 통으로 바뀔 거라 생각했다. 그래서 더욱 각오를 단단히 했다. 힘들더라도 이 악물고 고통을 버틸 각오 말이다.


그런데 아이가 태어나고 뜻밖의 사실을 알게 되었다. 아이는 내가 일전에 한 번도 느껴보지 못한 종류의 감정, 행복, 충만함, 기쁨, 사랑, 베풂, 온정과 같은 따뜻하고 긍정적인 수많은 단어들을 내 인생에 함께 가지고 왔다. 바라보고만 있어도 기쁨의 감정이 솟아나고, 마음이 다 채워지는 행복감을 느끼게 되었다. 물론, 육아 현실은 아이를 지긋이 바라보고 있을 틈이 없는 것도 사실이다. 그런데 직접 육아를 겪어보니, 내게 겁을 주었던 사회의 인식을 향해 이 외침을 꼭 하고 싶었다.


'아이를 키우면 이렇게 행복하단 사실은 왜 아무도 안 알려준 거야??!!'


아이가 가져다주는 온전한 행복은 상상할 수 없을 만큼 컸다. 작은 생명체가 움직이는 몸짓, 웃음, 뒤뚱거리는 걸음, 서툴지만 밥 먹는 모습, 나를 보면 환하게 웃어주는 미소, 어른의 발상을 뛰어넘는 시선과 생각, 호기심, 이 모든 것들이 충만한 행복감을 가져온다. 


나만 온전히 살았던 세상에서, 누군가의 세상이 되었다.


나는 매일 아이에게서 조건 없는 무한한 사랑을 받는다. 내가 어떠한 모습이든 아이는 엄마를 바라보고, 엄마를 따라 하고, 엄마를 믿고, 엄마를 찾는다. 내 언행에 의미가 깊어졌다. 나의 존재의 이유가 더욱 높아졌다. 엄마가 된다는 것은 더 이상 나로서만 존재하는 게 아니다. 내 모든 것이 아이에겐 거울이 되고, 내 행동과 생각이 또 하나의 사람에게 밀접한 영향을 미친다. 또한 나뿐만 아니라 내 아이가 살아가게 될 사회와 미래를 고려하고 행동하게 된다. 조금 더 넓은 시야로 조금 더 성숙해지는 어른이 되어간다.


아이는 혼자의 삶보다 함께의 삶이 아름다움을 일깨워주었다.

온전히 충만한 행복감이 무엇인지 가르쳐 주었다. 

 



- 엄마, 나 안아줘!! 안아줘!! 


오랜만에 엄마 따라 구두를 신은 아이는 발이 아팠던지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안아달라고 한다. 오늘만큼은 못하겠다고 말해봤지만 소용없다. 엄마는 횡단보도를 건너 예식장에 도착할 때까지 15kg에 가까운 아이를 번쩍 들어 안고 불편한 옷과 7cm가 넘는 하이힐을 신고 걷는다. 생각보다 예식장은 버스정류장에서 멀었다. 더욱 아득하게 보이는 건 느낌 탓일까? 치마 때문에 평소보다 짧은 보폭으로 아이를 안고 걷는 동안 이미 진이 다 빠졌다. 아이의 15kg 무게가 1cm 두께의 가느다란 하이힐 한가닥에 온전히 실린다. 엄마는 우스꽝스러운 걸음으로 걷는 내내 생각한다. 


- 이 놈의 하이힐!! 벗어던지고 맨발로 걷고 싶다!!!


다시는 하이힐을 신지 않겠다고 다짐하지만 아이와 함께여서 더욱 빛나는 나는 자랑스러운 엄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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