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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레나팍 Sep 19. 2022

20년간 아침밥 차려준 엄마 밑에서 자란 딸의 육아


아침 안 먹으면 학교 못가!



고등학생 때 우리 집 아침 풍경에선 종종 이런 외침이 들려왔다. 학생 때나, 직장인 때나, 지금이나 아침시간은 언제나 전쟁이다. 1분이라도 더 자려고 이불속에서 안 나오는 딸과 어떻게든 아침을 먹여서 보내려는 엄마와의 전쟁이 시작된다. 고등학생인 나는 스쿨버스를 타고 학교에 다녔고, 우리 동네는 출발지다 보니 새벽 6시 45분에 버스를 타야 했다. 새벽형 인간이 전혀 아닌 나에겐 새벽 기상도 아닌 새벽 출발은 고역과도 같았다. 특히 추운 겨울에 어둠과 함께 시린 새벽바람을 뚫고 버스 타러 가는 길은 내가 가장 싫어하는 순간이었다. 학창 시절은 행복하고 즐거웠지만 단지 새벽 등굣길 때문에 동시에 벗어나고 싶기도 했다. 졸업만 하면 내 인생에 다시는 새벽 이동은 만들지 않으리라 다짐하고 꿈꿨다. 고 3 수능까지만 버티면 새벽 기상은 다시없을 줄 알았다. 그러나 어찌 된 일인지 그로부터 15년이 훌쩍 흐른 현재의 나는 다시 새벽 출근을 하고 있다. 오늘도 8시 출근을 하기 위해 6시 55분에 집을 나선다.


엄마는 늦어도 아침은 꼭 먹어야 한다는 가치관을 가진 분이다. '아침은 중요해'에서 끝나는 게 아니라 아침을 못 먹으면 정말로 학교를 못 갔다. 지각이 위태로운 순간에도 아침은 한 숟갈이라도 떠먹어야 했다. 가끔 정말 늦잠을 잤을 때, 세수조차 못하고 나가야 할 만큼 늦었을 때도 '지각하더라도 아침은 먹고 가야 해' 하시며 나를 식탁에 앉히셨다. 학교가 멀었기에 그런 날은 아빠 차를 타고 가거나 택시도 탔던 것 같다. 머리를 못 말리고 허둥지둥 밥을 먹고 있으면 엄마가 뒤에서 드라이기로 동시에 머리를 말려주기도 했다. 그만큼 아침식사는 내가 대문을 나서기 위해서 거쳐야 하는 필수 관문이었다. 그때는 '아침밥이 뭐라고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는 생각을 했다. 그러나 지금은 내 뒤의 엄마가 보였다. 20년간 한결같이, 눈이 오나 비가 오나 덥거나 춥거나 엄마는 내게 밥과 국, 반찬이 있는 한국의 아침밥을 차려주셨다. 엄마는 그 어려운 걸 내게 해주셨다.


20대가 되어 독립을 하자 내게서 아침밥은 바람처럼 사라져 버렸다. 아침밥의 중요성과 이점을 스스로 깨우치지 못했거니와 차려준 밥만 먹다 보니 바쁜 아침에 혼자 차려먹을 리가 만무했다. 아침을 먹는 대신 잠을 택했다. 조금이라도 더 잘 수 있다면 배는 저절로 부른 것처럼 좋았다. 10년 이상 아침을 안 먹다 보니 배고픔도 없고 불편함도 전혀 없었다. 나는 그냥 아침을 먹지 않는 사람이 되었다.





혼자 나를 위한 밥을 챙겨 먹는 것은 어려웠으나, 아내가 되고 엄마가 되자 입장이 달라졌다. 늘 정성껏 집밥을 차려 준 엄마처럼, 내게 집밥은 당연한 일로 인식되었다. 맞벌이임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저녁은 손수 집밥을 준비했다. 퇴근길에 장을 봐서 저녁을 준비하는 날도 많았다. 남편은 결혼하고 10kg 가까이 살이 쪘다.(육아 휴직하며 다시 쏙 빠졌지만) 최근 몇 년간, 책도 보고 공부를 하니 '밥'의 중요성에 대해 내가 얼마나 무지했는지 알 수 있었다. 모든 건강의 기초는 먹는 것에서 시작되었다. 아침밥을 비롯해 엄마의 사랑이 담긴 집밥은 신체부터 두뇌, 정서적 안정까지 광범위하게 아이 발달에 긍정적인 영향을 끼쳤다. 유대인의 밥상머리 교육, 채식, 건강한 식생활, 조리법, 심리발달, 두뇌발달, 신체발달, 질병예방 등 먹는 것과 연관된 요소들을 공부할수록 가족의 건강과 아이의 발달을 위해 '집밥'을 포기할 수 없었다.


그래서 육아 휴직하며 아이를 키우는 2세까지 삼시 세 끼, 3가지 반찬을 채운 밥을 꼬박꼬박 제공했다. 한 번도 시판 이유식을 사 먹인 적은 없었다. 엄마가 내게 20년간 밥을 차려주셨듯, 나 역시 내 아이에게 소중한 끼니를 제공했다. 그리고 밥을 잘 먹은 아이는 튼튼하고 건강하게 잘 자랐다. 그러나 복직을 하고 워킹맘이 되자 얘기가 달라졌다. 새벽에 휘리릭 사라지는 엄마는 더 이상 아이의 아침을 챙겨줄 수 없었다. 아침 당번은 남편, 저녁 담당은 내가 되었다. 누룽지에 김자반은 부녀가 애정 하는 아침이다. 조금 더 다양하게 먹으면 좋겠지만, 아침을 빠지지 않고 먹는 것 자체에 크게 감사할 일이기도 했다. 그런데 며칠 전 무심코 던진 내 질문에 나조차 깜짝 놀라고 말았다.


총명이, 어제 아침 먹었나?(밥통에 밥이 없었는데)


요즘 들어 아침을 잘 먹고 다니는 지조차 무심했던 것이다. 남편이 알아서 잘 챙겨주겠거니 하고 말이다. 매일 퇴근하고 저녁 준비하는 것만 지켜내기에도 힘든 게 나의 일상이었다. 냉장고가 텅텅 비워지는 날도 '그러려니'하며 슬쩍 넘어간다. 마음속 의무감과 책임감이 올라오지만 현실과 타협할 필요가 있다. 내가 체력관리를 잘하고 무리하지 않는 게 육아 전체의 관점에서 더 중요하기 때문이다. 엄마가 챙겨야 할 것은 비단 아침밥이나 저녁밥뿐만이 아니었다. 어디 육아가 밥 주는일 뿐이겠는가. 이미 내 하루의 24시간은 일, 육아, 살림으로 가득 차 있었다. 내겐 출근 전 새벽에 아침밥까지 검토할 여력이 없었다.


그러다 문득 어떤 사실을 깨달았다. 지금의 패턴대로 유지된다면 앞으로도 나는 자녀의 아침을 챙겨주기 힘들 것이다. 남편과 아이와 함께 오붓이 밥을 먹지도 못한다. 현재는 1년, 2년에 불과하지만 앞으로도 바뀌는 게 없다면 20년 동안 아이의 아침 풍경이 내 기억 속과는 현저히 다를지도 모른다. 엄마가 언제나 나보다 일찍 일어나 아침 준비하는 모습, 엄마가 차려주는 아침밥, 엄마의 잔소리, 시끌벅적한 아침 풍경, 엄마의 사랑이 담긴 따끈따끈한 아침 식사의 모습, 내 기억 속에 견고히 자리 잡은 아침 풍경엔 언제나 엄마, 그리고 엄마의 아침밥이 있었다.


엄마는 단 하루도 나보다 늦게 일어나신 적이 없었다. 엄마는 언제나 새벽같이 일어나 아침을 준비해 주셨고, 가족들을 깨워 아침밥을 주셨다. 엄마라면 당연히 그래야 하는 줄 알고 자랐다. 엄마라면 그게 가능한 건 줄 알았다. 그런데 엄마가 되어 보니 삼시세끼 밥을 차리는 것만큼 힘든 것도 없었다. 주말도 거르지 않고 늦잠 한 번 없이 아침을 준비한다는 건 돈을 받고도 못 지켜낼 만큼 힘든 일이었다. 피곤한 어느 날은 4살 아기에게 '오늘은 냉장고에서 아무거나 꺼내서 먹어~'라고 말하고 싶은 순간도 있다. 하루도 거르지 않고 아침을 차려주신 엄마라는 직업이 얼마나 위대하고 대단한 일인지 십수 년이 지난 후에서야 깨닫는다. 이제야 엄마와 이모가 해외여행 가서 외쳤던 대화의 의미를 체감한다.


여행 오니까 밥 안차려도 돼서 너무 좋다~^^


두 분은 약속이나 한 듯이 똑같이 얘기했다. 화려한 볼거리나 관광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남이 해주는 밥'을 먹는 것만으로도 들뜨고 신난 모습이었다. 우리네 엄마는 힘들다는 불평 한 번 없이 우리를 키워내신 것이다. 


어쩌면 내가 받은 만큼 내 가족들에게 '밥'으로 그 사랑을 전파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아무도 시키는 사람이 없어도, 남편이 만류해도, 배달 음식이 훨씬 편한 걸 알면서도, 서툴러도, 피곤해도, 가급적 내가 할 수 있는 선에서 집밥을 준비한다. 엄마의 사랑을, 부인으로서 사랑을 듬뿍 담아 내 가족에게 건강한 집밥을 주고 싶다. 내 가족이 그저 맛있게 한 끼 먹으면 그게 곧 행복이다. 그거면 충분하다. 피곤하고 지쳐도 나를 부엌으로 우뚝 세우는 힘은 우리 엄마가 밥의 중요성을 몸소 실천하며 보여주신 지난 세월이 아닐까.


내 자녀도 내가 차려준 밥을 먹고 이 세상을 향해 우뚝 서서 나아갔으면 한다. 힘들고 어려운 일이 있어도 쉽게 좌절하거나 포기하지 않고 헤쳐나가길 바란다. 흔들림 속에서 강단 있게 자신의 인생을 개척해 가길 바란다. 내면의 힘이 단단하길 바란다. 몸도 마음도 건강한 사람이 되길 기대한다. 그 힘은 늘 묵묵히 뒤에서 사랑의 울타리를 제공해주는 가족에게서 나온다. 밥심에서 나온다. 집에서 가족과 함께 먹는 집밥에서 나온다.


당근만 쪄줘도 엄마 요리 잘한다고 엄지 척을 하며 '엄마 최고~'를 외치는 아이

맛없으면 인정사정없이 '맛없어! 안 먹어!'를 외치며 돌아서는 아이


오늘도 우당탕탕 식사 시간이지만, 힘닿는 데까지 조리도구를 놓지 않겠다 다짐해본다.




* 건강과 음식에 관해 읽은 책 BEST.

- 태초 먹거리

- 아이 두뇌를 살리는 똑똑한 편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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