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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레나팍 Oct 12. 2022

길바닥에 넘어지며 깨달은 육아 태도에 대한 반성

꽈당


아침 출근길, 도로에서 점핑하듯이 넘어지고 말았다. 몸이 앞으로 날아가듯 넘어졌다. 실로 오랜만에, 10년 만에 넘어진 것 같다. 넘어지는 1초의 찰나는 슬로비디오 장면 같았다. 내 몸은 이미 컨트롤할 수 없이 넘어지고 있지만 최대한 덜 다치게 착지하고, 핸드폰이 망가지지 않게 살려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인도가 통째로 공사 중이어서 진득거리는 진흙을 밟지 않기 위해 2m 정도 도로로 지나가는 중이었다. 최대한 인도 쪽이었지만 차가 오고 있어서 살짝 뛰어서 다시 인도로 빨리 들어가야겠다는 생각이었다. 그래서 달리기 위해 발에 속도를 내려는 순간 울퉁한 길에 걸려 앞으로 슬라이딩하듯 꽈당 넘어지고 말았다.


내 머릿속에는 '아픔과 쪽팔림' 두 단어밖에 떠오르지 않았다. 양 무릎, 팔, 손바닥이 쓸렸다. '아침부터 이게 무슨 일이람. 오늘 재수가 안 좋은 건 아니겠지?' 불안한 생각도 잠시, 팔과 다리가 살짝 떨렸다. 신호를 대기하는 중에 내 몸은 힘이 빠지고 긴장한 채로 오들오들 떨리고 있었다. 나는 성인이고 동행자가 없었기 때문에 누군가 내게 '괜찮냐?'라고 묻거나 일어나라고 부축 여주는 사람이 없었다. 아주 당연히 내 힘으로 일어나야 했고, 아파도 다시 걸어야 했다. 누가 옆에 있다면 '아프다'라고 징징대고 싶단 마음이 들었다. 조금은 덜 창피할 것 같았다. 그러면서 아이가 떠올랐다.


아이들은 늘 부산하게 움직인다. 위험해 보이는 행동도 하고 달리다가 넘어지는 일도 잦다. 내 아이도 밖에서 또는 집에서 쿵~ 넘어지기도 한다. 매트 위로 몸을 날려 점프하기도 한다. 그럴 때 나의 반응은 여러 가지인데 안짱걸음 때문에 넘어지는 것 같아서 속상한 마음에 핀잔을 주거나, 괜찮냐고 오만 호들갑을 떨며 묻거나, 또는 '괜찮아~ 훌훌 털고 일어나'라고 말하기도 한다. 그런데 내가 온전히 넘어지는 아이의 입장이 되어본 적은 없었다. 성인이 되고 넘어질 일이 없었기 때문이다. 직접 넘어져보니 '괜찮아~'라고 섣불리 말하는 게 어리석은 명령어에 불과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넘어진 그 순간에 누가 내게 와서 '괜찮아! 별일 아니니까 일어나'라고 말한다면 째려봤을 것 같다. 하나도 도움이 되지 않을 것 같다. 그 순간 내 머릿속에는 아프다는 생각밖에 없었다. 그런데 '괜찮다'라고 타인인 누가 감히 내 감정을 규정짓는단 말인가. 그냥 아프다는 감정에 집중되는 순간에, 다른 감정을 들이밀며 괜찮은 것이라고 말하는 건 오만한 일이라는 생각까지 들었다. 그저 내게 필요한 건, 일어날 수 있게 손을 내밀어 주는 것, 아프지 않냐고 물어봐 주는 것, 그리고 아프냐며 위로와 공감을 해 주는 것이었다.


만일 누군가 '많이 아팠지~~ 창피했지~~~'라고만 말해준다면 괜찮아질 것 같았다. 비로소 '공감'이 얼마나 아이에게 중요한 일인지 느낄 수 있었다. 누군가 내게 '아프겠다'는 말 한마디만 건네줘도 내 몸과 마음이 사르르 녹을 것 같았다. 욱신거리는 팔이 내게 신호를 주며 또 하나의 교훈을 가르쳐 주고 있었다. 이론으로만 '공감하기'를 이해할 게 아니라, 내가 당사자라면 느낄 감정을 알아채고 읽어주기만 해도, 그것을 말로 표현해주기만 해도 감정은 괜찮아진다는 것을 말이다. 내가 '괜찮다'라고 굳이 말하지 않아도 괜찮아진다.


10년 전부터 육아서의 바이블로 생각했던 책, 「엄마, 나는 아직 침팬지요」에 따르면 아이의 감정을 먼저 읽어주는 게 매우 효과적임을 강조하고 있다. 의사전달, 훈계, 명령 등 어떤 언어 표현에서도 첫 번째 단계는 아이의 감정을 읽어줘야 한다고 얘기한다. '안돼! 만지지 마!'를 얘기하기 전에 '만지고 싶구나~'를 얘기하는 것이다. 엉엉 우는 아이에게 '속상했구나~'하고 감정을 말해주면 아이는 신기하게 울음을 뚝 그치고 그다음 제안에 따른다고 한다.


비단 아이뿐만이 아닐 것이다. 성인도 힘들 때 누가 내 얘기를 들어주기만 해도 위로와 공감이 된다. 그 이야기를 비집고 들어와 내 이야기를 한다거나, 판단하거나, 훈계하려 들지 말고 그저 묵묵히 '그랬구나~ 힘들었겠다' 정도면 충분하다. 넘어져보니 알겠다. 다른 말은 필요 없다. 그저 옆에서 위로와 공감만 해주면 충분하다. 넘어진 길 위에서 얻은 교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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