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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레나팍 Feb 04. 2023

아빠 육아휴직 1년이 가져온 변화

‘아이는 부모가 3년은 직접 돌봐야 해!’ 임신 때부터 주장하던 나의 세뇌 작용 덕분이었을까? 내 생에 육아휴직은 절대 없다던 남편이 회사 최초로 육아휴직을 쓴 남자가 되었다. 20권 이상 읽은 육아서에서 하나같이 영유아기 3년이 매우 중요함을 강조하고 있다. 나 역시 내 일을 사랑하고 직업에 애정이 넘쳤지만 육아를 최우선 순위로 둔 이유다.


1년 반이 지나고 남편과 주양육자 교체를 했고, 남편은 30년 넘게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24시간 육아’라는 새로운 세계로 입문했다.


남편은 육아휴직을 하며 크게 2가지 심적 어려움을 느꼈다.

첫째, 8년 근속하던 회사를 떠나 사회로부터 처음 단절되는 것에 대한 두려움

둘째, 아이와 무엇을 어떻게 놀아줘야 할지 모르는 막막함

막연함과 두려움을 가진 채 육아 세계로 던져진 남편은 24시간 직접 아이와 함께 부딪히고 경험하면서 하나씩 답을 찾아가기 시작했다.


회사에 있을 때 하지 못했던 견문을 넓히며 틈틈이 자기 계발을 하면서 재미를 찾아갔고, 육아 실력도 나날이 발전했다. 책에도 아내에게 물어도 답을 알 수 없던 육아법은 아이에게 집중하면서 해결할 수 있었다. 아이가 우는 이유를 몰라 쩔쩔매던 초반과 달리, 아이 눈을 바라보고, 아이의 표정, 몸짓 하나에 집중하면서 점차 스스로 해결할 수 있게 되었다. 육아를 경험하는 시간에 비례해서 남편의 육아가 능숙해지는 게 느껴졌다.


어느 날 밤, 이유를 모른 채 갑자기 심하게 울어대는 아이 앞에서 쩔쩔매고 있는데 남편이 오더니 “비켜봐~ 왜 애를 못 달래고 그래” 하며 자연스럽게 아이를 안았다. 그러더니 다정한 말도 하고, 아픈지 살펴보고, 공감도 해주며 아이를 마법처럼 재워버렸다. 그 광경에서 진짜 ‘주양육자’가 바뀌었음을 실감했다. 내가 예전에 했던 멘트를 남편이 그대로 내게 한 것이다. 그 기분이 묘하면서 좋았다. 육아의 든든한 동반자로서 남편과 함께할 수 있으니 기쁘고도 감사할 따름이었다.


아이와 아빠는 집에서 국민체조도 하고, 블록 놀이도 하고, 책도 보고, 숨바꼭질도 하며 놀았다. 함께 빨래도 널고 청소도 하며 집안일도 했다. 아이와 아빠는 누구보다 친한 단짝이 되어 일상을 공유했다. 어느 날엔 아이가 아빠에게 간식을 먹여주며 “아빠, 다 먹어야지 튼튼한 어린이가 돼” 하며 웃음을 주기도 했다. 둘 사이에 엄마가 낄 자리가 없는 경우도 있었지만 그 비껴 남이 나쁘지 않았다. 온전히 아이와 아빠, 둘만의 교감과 추억을 쌓아가는 게 흐뭇했다.


아이가 성인이 되기까지 20년의 시간 동안 이렇게 오랜 시간 부모와 함께할 수 있는 시기가 있을까? 하루 24시간, 365일을 함께하는 시간은 영유아 시기뿐이지 않을까? 아이는 학교로, 부모는 일터로 가며 각자의 사회 속에서 시간을 보낼 것이다. 그리고 하루 몇 시간 겨우 만나는 날들이 이어질 것이다. 아이와 온전한 하루를, 온전한 행복과 일상을 공유할 수 있는 시기는 바로 지금 뿐이다. 그 소중한 하루하루의 시간 속에서 아이와 아빠는 진한 교류를 하고 있었다.


육아휴직이 반년을 넘어가자, 남편은 아이와 단둘이 당일치기 여행도 도전했다. 아이는 신났는지 다음에 또 박물관에 가자며 잔뜩 들떠 있었다. 9층석탑을 보고 왔는데 아이는 아빠와 한 동안 쿵작거렸다.

-총명이 아빠랑 여행 가서 뭐 보고 왔지?

- 고층타층! (9층석탑)

- 그렇지!!! 다음에 아빠랑 또 가볼까?? 엄마 빼고?

- 응응!!!


둘은 바닷가 모래놀이도 다녀왔다. 내가 부재인 날, 남편 혼자 아기 준비물을 챙긴 짐가방과 텐트를 들고 출발했다. 여기서 남편이 3살 아기 짐가방을 혼자 쌀 수 있다는 것조차 대단한 능력임을 강조하고 싶다. 모래놀이가 끝날 무렵에 소나기가 오는 바람에 남편은 우는 아이를 달래 가며 텐트를 접어가며 한쪽으로는 텐트와 온갖 짐을 들고 한쪽으로는 아이를 들쳐 안고 주차장까지 비를 뚫고 왔다고 한다. 얼마나 고생길이었을지 앞이 훤히 보였다. 그렇지만 한편으로는 남편이 육아의 참맛을 느꼈고, 또 그 안에서 살아남았음에 응원의 박수를 보냈다.


그리고는 친구들과 함께 아빠와 아이로만 구성한 1박 여행까지 다녀오게 되었다. 첫 여행이기에 스케치북과 크레파스 등 바리바리 짐을 싸줬는데 남편은 필요 없다며 과자와 간식을 충분히 챙겨서  훌쩍 떠났다. 그리고 성공적으로 여행을 하고 돌아왔다. 육아휴직 전에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아빠와 아이, 단 둘만의 여행이라니!






아빠 육아휴직으로 인해 우리 가족에게는 많은 변화가 생겼다. 아이가 아빠와 단둘이 있어도 안정감을 느꼈다. 아빠는 민감한 양육자가 되어 아이를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 어떤 태도로 어떻게 말해야 하는지, 어떻게 사랑을 표현하는지 자연스럽게 터득했다. 아빠와 아이의 애착관계가 좋아짐에 따라 아이는 심리, 정서, 신체적으로 안정적으로 발달해 갔다. 아빠와 아이, 둘만의 추억들은 아이에게도, 그리고 아빠에게도 잊지 못할 선물을 안겨주었다.


뿐만 아니라 남편이 육아를 직접 경험해 보면서 아내에 대한 이해도가 매우 높아졌다. 내가 굳이 언급하지 않아도 일, 육아, 가사를 병행하는 고충을 알고 있으니, 자연스럽게 부부가 서로 이해하고 배려하게 되었다. 가사나 육아 참여도도 높아졌다. 서로 육아에 대해 논의하고 협동할 수 있으니 앞으로 함께 의지하고 나아갈 수 있을 것이란 육아 효능감도 높아졌다. 한 명이 아닌, 부부가 아이에 대한 민감성이 높아지니, 아이 역시 더 안정적으로 잘 자라게 될 것이다. 함께 육아한다는 사실이 심리적으로도 매우 든든하다.


1년의 값진 시간은 기대 이상의 변화를 가져왔다. 육아휴직 이후 남편은 내겐 든든한 육아 동지로, 아이에겐 눈높이에서 바라봐주는 다정한 아빠로 변했다. 아빠 육아휴직 1년이 가정과 아이에게 미치는 영향은 휴직기간 동안이 아니라 아이가 성장하는 내내 영향을 미칠 것이다. 모두가 만족한 1년이었다고 결론지어도 될까? 남편의 의견을 묻진 않았지만 ‘육아휴직을 또 하겠다’고 당당하게 말하는 모습에서 동의한 걸로 보인다. 아빠 육아휴직 만족도는 200% 였다고 자신 있게 얘기하고 싶다.


아이가 울면 무의식적으로 “엄마~”하며 우는데, 아이 본인도 모르게 “아빠~”하며 우는 신기한 모습을 마주하고 싶다면 아빠 육아휴직을 꼭 경험해 보길 바란다. 일석이조가 아닌 일 석 십조의 효과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어린이집도 안 보내고 8개월간 온전한 육아, 그리고 1년간의 육아휴직을 해 준 남편에게 진심으로 감사함을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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