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라면 누구나 내 아이를 풍족하게 키우고 싶을 것이다. 부모가 줄 수 있는 사랑과 애정, 배려와 관심, 훈육과 인성교육 등 많은 것들 중에 단연코 빼놓을 수 없는 것은 경제적인 지원이다.
'사랑만 가지고 사랑이 되니?'라는 어느 대사처럼 육아에는 필수적으로 돈이 수반된다. 당장 아이가 먹을 분유와 밥값, 입을 옷 등은 모두 돈이 있어야 구매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최소한의 의식주가 가능한 경제적 뒷받침은 필수적이다.
그렇다면 돈은 얼마나 필요할까? 법륜스님에 따르면 부부가 밥 먹는데 숟가락 하나 더 올리고, 평소 세탁하는데 아기옷도 추가해서 넣으면 된다고 한다. 특별한 돈이 엄청나게 필요한 건 아님에 동의한다. 어디까지나 부모의 선택에 달렸으며, 소비를 하려고 들면 한 없이 쓸 수 있는 게 육아시장이며, 아끼려 들면 또 가능한 게 육아다. 그러므로 최소한의 소비를 할 것인지, 최대치를 쓸 것인지는 부모에게 달렸다. 가난한 전쟁통에도 6남매, 10남매를 키워낸 것처럼 말이다.
나는 미니멀라이프를 지향하며 값비싼 옷이나 화려한 육아용품보다는 내면을 강하게 길러내는 양육, 책육아, 회복탄력성, 균형 있는 발달,건강한 집밥 제공 등을 더 중요하게 생각한다. 즉 물질적 풍요로움보다는 내 노력과 시간, 에너지가 수반되는 일에 더욱 집중하는 편이다.
남편은 경제적으로 부족함 없이 아이가 원하는 것은 뭐든 지원해 줄 생각을 가지고 있다. 여기엔 부분적으로 동의한다. 정서적 빈곤함이 없도록 하는 게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세이노(수백억 대 자산가)가 얘기했던 것처럼 '원하는 건 뭐든 살 수 있는'환경에 있다면 그만큼 키워내지 못하는 능력들도 있다. 그래서 세이노는 자녀교육을 위해 일부러 부도가 났다고 자녀들을 속일 생각까지 했다. 부족함이 하나도 없이 자라면, 감사하거나 소중함을 덜 느낄 수도 있고, 어쩌면 부모가 제공해 주는 모든 것들을 당연하게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니 적정선에서 소비하며 아이의 독립심도 키워내고 경제관념도 심어주고 싶었다.
이런 신념에도 불구하고, 아이 앞에서 차마 이 말을 쉽게 내뱉을 순 없었다. '비싸서 못 사준다'는 말! 콩알만 한 블루베리가 최고가를 향해갈 때도 아이가 먹고 싶다고 집으면 아무렇지 않은 척 장바구니에 담았다. 내 주머니 사정과 상관없이 언제, 어느 순간에라도 내 아이에게 최고의 음식과 먹고 싶은 건 다 해주고 싶은 마음은 마찬가지인 셈이다.
내가 절제하려는 건 소비재 영역이지 먹는 영역은 아니었다. 그래서 아이 앞에서 '비싸다. 싸다'는 단어를 써 본 적이 없었다. 아이가 어리니, 돈의 개념을 당장 가르칠 것도 아니었고 비싸고 좋은 것을 따지기보다는 그냥 본연의 것에 집중하길 바랐다. 언젠간 경제관념에 눈을 뜰 것이고, 자본주의 세상은 돈으로 굴러가며, 엄마 아빠가 사 오는 모든 것은 무한의 개념이 아니라, 유한한 화폐의 영역임을 알게 될 것이다.
몇 달 전 일이다. 몸에 좋다는 죽염을 샀는데, 죽염 중에서도 좋은 브랜드, 그중에서도 맛이 좋은 대신 가장 비싼 '자죽염'을 구매했다. 1kg에 20만 원이 넘어서 친구 셋과 나눠서 샀으며 그것도 모아둔 회비로 구매했다. 친구 한 명이 시키진 않았지만 1kg 자죽염을 저울로 재서 3등분을 해주었고 우리는 주먹 2개만 한 양을 각자 품에 소중히 안고 집에 돌아왔다. 일반적인 죽염 가격 대비해서도 3배 정도 비쌌다. 내가 생각해도 돈을 투자한 것 같았다. 해맑게 웃고 있는 아이에게 작은 통에 담은 죽염을 주며 설명해 줬다.
- 이건 죽염이야~ 먹어봐~ 이거 아주 비싼 거야~!
나도 모르게 비싼 것을 어필하고 있었다. 자죽염은 구운 계란 맛이 나서 아이들이 아주 잘 먹는다. 다음 날, 아이는 처음 먹어봤던 죽염이 먹고 싶었는지 엄마에게 물었다.
- 엄마, 나 그거 줘... 어제 먹은 거.. 뭐더라...
비싼 거!!!!!
36개월 아이는 죽염 대신 그 이름을 '비싼 것'으로 기억했다. 아이에겐 죽염의 이름과 다름없었다. 나는 피식 웃음이 나왔다. 아이는 그 뒤로 죽염을 찾을 때마다 얘기했다.
엄마, 나 오늘도 그거.. 비싼 것 줘. 비싼 거!!!!!
나는 이 말을 들을 때마다 웃음이 터져 나왔다. 내가 왠지 비싸다고 생색낸 건 아닌가 싶기도 하고 조그마한 아이 입을 통해 이런 단어가 나오는 게 어딘지 어색하기도 한 게 피식피식 웃음이 터져 나왔다.
6개월 뒤, 아이는 그 사이 돈에 대한 개념이 생겼다. 1만 원짜리로는 빼빼로를 6개 살 수 있고, 5만 원짜리로는 30개를 살 수 있다고 가르쳐줬다. 그러자 장난감 돈을 줄 때 5만 원은 본인이 가지고 할머니에게 5천 원을 내어주는 아이였다. 그리고 돈이 있어야 먹을 것부터 장난감까지 모든 걸 살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예전에는 그저 카드만 있으면 뭐든지 사는 모습을 봤으니, 내가 장난으로 '돈이 없으니 과자 못사'라고 하면 카드를 내어주며 사 오라고 했다. 이제는 그 카드에 돈이 있어야 살 수 있다는 개념이 생겼다. 엄마 아빠가 일을 하며 돈을 벌어야 그 카드에 돈을 채울 수 있다는 사실도 함께 알았다. 자연스럽게 돈에 대한 인식이 생긴 것이다.
어린이 오디오앱을 통해 아이가 좋아하는 그림책을 자주 들려주곤 했다. 매월 정기 구독권을 구매해서 들어야 하고, 구독권이 없으면 '30초 미리 듣기'만 나온다. 아이는 몇 달간 재미있게 들었는데, 어느 날 이용기간이 끝나서 미리 듣기만 나왔다. 한참 이야기를 들으려고 하면 도중에 느닷없이 뚝뚝 끊겨버렸다.
"엄마, 왜 추피가 이상하게 나와?"
예전 같으면 돈에 대한 개념을 모를 것이기에 구매와 관련된 별다른 설명을 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이제는 개념이 생겼으니 사실 그대로를 설명했다.
"응~ 엄마가 돈을 안내서 이용권이 없어서 안 나오는 거야"
별생각 없이 직설적으로 표현했다. 그러자 아이는 토끼 같은 눈으로 바라보며 말했다.
"엄마... 돈 내죠...."
"푸하하, 알겠어. 엄마가 얼른 결제할게"
그런 뒤 저녁 준비와 할 일이 쌓여있던 나는 30초 미리 듣기를 그냥 내버려 두고 살림에 집중하느라 바빴다. 내게 급한일은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부엌에서 부산하게 움직이는 나를 아이는 나무랐다.
"엄마, 왜 돈을 안 냈어?! 돈을 안내서 추피가 안 나오잖아"
"아~~ 미안해~~ㅎㅎ 돈 낼게"
저녁 시간이 지나고 오디오앱을 까맣게 잊고 있었는데, 아이는 식탁 의자에 앉아있다 불현듯 뒤를 돌며 내게 말을 꺼냈다.
"엄마~"
"응^^?"
"돈 내줘...."
아이의 간절하고도 진지한 눈빛과 돈을 내달라는 직설적인 부탁에 나는 또 한 번 웃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아무리 순수한 동화책 이야기여도, 이용하려면 돈을 내야 할 수밖에 없었다. 순수한 아이와 '돈'이란 단어는 어울려 보이진 않았지만, 아이도 점점 알아갈 것이다. 돈의 개념, 경제 개념, 시장 원리, 자본주의, 돈의 속성 등에 대해서 말이다. 돈이 최고가 되어서는 안 되지만, 돈이 필요한 것만은 분명하다. 그러니 이왕이면 똑똑하게 돈의 속성을 알고 돈의 노예가 아닌 주인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