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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레나팍 Feb 12. 2023

중고거래 100번 하며 가장 기억에 남는 일들 - 1편

슬금슬금 당근마켓을 이용한 지 3년 차, 거래한 물건이 기록적으로 100이란 숫자를 찍게 되었다. 처음엔 육아용품을 몇 개씩 정리하다가 점점 내 옷, 신발, 전자제품 등 자연스럽게 범주가 넓어졌다. 한 번은 신발장은 열어 몇 년 이상 안 신는 신발부터 구두까지 싹 꺼내 하나씩 사진을 찍어 올리니 언젠가, 누군가에게 결국엔 팔렸다. 이렇게 물건을 후련하게 팔아치우니 군더더기 없어진 살림살이에 기분이 개운해지고 자원도 재활용되니 뿌듯함이 밀려왔다. 신발장을 시작으로, 옷장, 화장대, 주방문을 열며 안 쓰던 물건들을 한 번에 소탕하기 시작했다.


내가 100번 넘게 거래하며 판매한 물건들은 주로 육아용품, 옷, 신발, 전자레인지, 액세서리, 신문지, 전기장판, 스팀다리미, 책 20여 권, 가구, 요가매트, 해외에서 산 스타벅스 텀블러 등이었다. 설마 이런 것도 팔릴까? 하며 안 듣던 CD 몇 장을 나눔으로 올렸더니 누군가가 받아갔고, 다이소에서 산 싸구려 식탁매트도 올렸더니 누군가가 사갔다. 믹서기가 고장 나 믹서기에 쓰던 플라스틱 통 3개를 나눔으로 올렸는데, 신기하게도 본인 믹서기와 같다며 동네사람 누군가 나타나 감사하다며 받아갔다.


한참 거래에 빠졌을 때 물건들을 진열하고 요리조리 사진 찍고 올렸더니 남편이 '쓸데없는 시간낭비'하지 말라며 말류 했다. 몇천 원을 벌겠다고 그런 일을 하고 있냐는 뉘앙스였다. 단지 돈 때문이 아니었다, 미니멀로 물건을 정리하는 이점뿐 아니라, 쓰임이 다해 버려질뻔한 물건들이 몇 천 원의 가치로 재탄생하며 필요한 누군가에게 가서 다시 쓰임이 시작되는 게 참으로 가치 있게 느껴졌다. '아껴 쓰고 나눠 쓰고 다시 쓰는' 그야말로 일석삼조의 일이었다.


몇 천 원이라고 우습게 볼 게 아니었다. 소탕작전을 벌이자 일괄로 몇몇이 사가며 순식간에 20만 원이 모인 적이 있었다. 중고판매 수익금을 쓰지 않고 모았다가 당당하게 남편이 원하던 물건을 흔쾌히 사줬다. 남편은 20만 원을 벌었다는 리를 듣깜짝 놀란 눈치였다. 작은 돈도 모이면 큰 액수가 된다.  뒤로 그는 내 중고거래에 대해 비판하거나 관여하지 않았다.


100번의 중고 거래를 하며 가장 기억에 남는 사람들과 에피소드를 뽑아본다.






1. 아름다운 향기를 지닌 그녀

그녀는 내게서 신생아옷 2~3벌을 샀다. 옷을 고르더니 2개 더 구매하며 정중하되 애교스럽게 D.C. 를 요구했다. 나는 흔쾌히 원하는 가격에 판매했다. 그녀는 첫 인사말부터 몇 안 되는 대화 내내 공손하면서도 절제된 매너를 보였다. 상대를 기분 나쁘지 않게 하는 정중한 물음과 배려가 대화 속에서 엿보였다. 드디어 거래하기로 한 날이 되었다.


나는 신생아를 돌보며 감퇴된 기억력은 물론이고 시계를 볼 틈도 없이 고요한 전쟁터 속에 분초를 다투며 하루를 보내고 있었다. 그리고 늦은 점심을 먹다가 시계를 보고 소스라치게 놀라고 말았다. 중고거래를 하기로 약속한 시간이 15분이나 지나있었다. 밥 먹다 말고 벌떡 일어나 어플을 확인했다. 그녀가 우리 집 앞에 도착했다는 채팅 이후의 메시지들을 나는 묵묵부답으로 씹고 있었던 것이다. 사과 메시지와 함께 부리나케 내려갔다. 그녀의 답장이 왔다.


- 통로 앞이에요^^ 아가 있으신데 천천히 오세요


어떤 비난도 없이 그녀는 웃으며 나를 반겨주었다. 실물로 본 그녀는 단정한 외모와 옷차림, 깔끔한 코트를 입고 있었다. 단아하면서도 기품 있는 태도가 넘실거렸다. 물건을 받아 든 그녀는 내게 깔끔한 봉투를 건넸다. '음??? 이게 뭐지?' 그녀는 12,000원의 돈을 깨끗한 하얀 봉투에 담아 내게 준 것이다. 여러 번의 중고거래에서 돈을 봉투에 담아 내민 사람은 그녀가 처음이었다. 그리고 그 뒤로도 1번 빼고 없었다. 살포시 지은 미소와 함께 건네준 봉투는 받은 사람의 기분을 아주 좋게 만들었다..


비록 중고 옷 몇 벌의 거래지만, 이 거래를 마치 고급스러운 귀한 거래로 만드는 것 같았다. 이 모든 건 사소하지만 디테일한 말투, 태도 하나하나에서 그녀가 만들어 낸 분위기가 자아낸 것이다. 내겐 100번의 거래를 통 틀어 그녀가 가장 인상적인 사람이었다. 짧은 대화, 짧은 만남에서도 참 매력적이라는 생각을 했다.


사람은 자신만의 향기를 남기는데 그녀가 풍긴 향기는 아주 은은하면서도 여운이 짙게 남았다.



2. 벤츠를 타고 온 수줍은 그녀

나는 옷을 잘 버리지 못하는 편이었다. 특히 20대에는 패션에 관심이 많았고, 예쁘고 독특한 옷들로 의류회사에 다니냐는 소리도 듣곤 했다. 그중에서도 내가 애정하는 바캉스 원피스가 있었다. 오래전, 15만 원 넘게 주고 구매한 옷으로 파란색 화려한 꽃들로 그려진 아주 예쁘고 화려한 원피스였다. 내게 너무도 잘 어울렸고, 입는 순간 회사해지는 마법 같은 옷이었다. 그러나 30대가 되고 더 이상 이 옷은 내게 어울리지 않게 되었다. 한 때 전성기를 지나 이제는 인기가 사라진 연예인처럼, 주인 잃은 옷은 갈 곳이 없어 옷장 속에 5년 넘게 갇히는 신세가 되었다.


그러나 주인은 옷을 꼭 부여잡고 있었다. 내 20대의 젊음을 보내주기 싫었고, 더 이상 이 옷이 어울리지 않는 나이가 되었다는 사실을 받아들일 수 없었기 때문이다. 옷을 보며 깨달음도 얻었다.  전혀 변한 게 없는데 사람이 변한다는 게 신기했다. 영원할 것 같은 아름다움도, 나이도 없음을 느끼며 이 옷을 입고 환하게 웃고 있던 과거의 나를 떠올리며 옅은 미소만 지을 뿐이었다.


그러던 옷을 어느 날 1만 원에 팔아버리기로 했다. 그리고 구매자가 나타났다. 중고거래의 암묵적인 룰은 판매자 집 근처에서 거래가 이뤄진다는 점이다. 그런데 이 분은 본인 집주소를 대며 와줄 수 있냐고 물었다. 대형평수의 집이었다. 난 차도 없고 애도 있어서 단번에 거절했다. 뭔가 구두쇠 같이 옹삭 한 첫인상이었다. 1만 원짜리 거래를 하면서 나보고 오라 가라 하다니.

 

우리 집 근처로 약속을 다시 잡았는데, 그녀는 벤츠를 타고 나타났다. 그리고 차에서 내린 그녀는 50대였다. 20대에 입었던 옷을, 30대가 된 내가 어울리지 않아 판매하는데 50대가 사가다니?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그녀는 수줍어하며 말했다.


- 나이가 드니까 화려한 옷이 입고 싶어 지더라고요. 그래도 밖에는 입고 가기 뭐해서.. 집에서라도 입고 싶어서요^^


내게 부끄러운 듯 변명 아닌 변명을 하며 수줍게 고백했다. 나는 미소를 지어 보이며 옷을 건넸다. 부디 그녀가 멋지게 소화해 주길 바랐다. 그리고 이 옷으로 젊음과 화려함을 한 껏 느끼길 바라는 마음이었다. 그녀의 기분이 훨훨 날아가면 더욱 좋을 것 같았다.


집으로 돌아오니 여러 생각이 들었다. 내 50대의 모습은 어떤 모습일까? 나는 50대에 어떤 생각으로 옷을 고르고, 어떤 옷을 입고 다니게 될까? 50대가 되면 나이 때문에, 체면 때문에, 원하는 스타일이 있어도 마음껏 입지 못하게 될까? 20대의 옷이 50대에게 가듯이, 인간으로 태어나 흙으로 돌아가듯이 우리네 삶은 돌고 도는 걸까?? 자원과 삶의 순환은 양방향임을 생각해보게 되었다.



3. 이탈리아에서 온 가방

가방이 10개가 넘는다. 안 쓰는 가방이 절반이지만 모두 제 각각의 사연으로 옷장에서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그중 이탈리아에서 온 가방이 있다. 몇 년 전, 이탈리아 출장에서 사 온 가방이었다. 가죽으로 유명한 이탈리아인데, 출장길이다 보니 쇼핑할 시간은 따로 없었다. 찰나의 시간을 이용해 베니스 광장 인근의 아무 가방가게에 들어갔다. 시간은 없고, 대충 눈에 보이는 가방 들 중에 서둘러 아무거나 골랐다.


한국으로 치면 뒷골목 보세 같은 가게였다. 진열대부터 벽에 가득 걸린 가방들 중에 한눈에 봐도 마음에 드는 가방은 없었다. 그래도 뭔가 이태리 가죽 가방 하나쯤은 가져가야 할 것 같았다. 점원이 내가 서 있는 곳 가방을 추천한다. 끈이 움직여 핸드백으로도 멜 수 있고, 백팩처럼도 멜 수 있는 신기한 변신가방이었다. 무늬는 꽃무늬였다.


그래, 너로 결정했다!


한국에 돌아와 한 동안 이탈리아의 향수를 느끼며 봄이면 꽃무늬 가방을 종종 메고 다녔다. 흰 바탕에 빨간 꽃무늬 가방. 아무리 봐도 내가 말하지 않으면 이태리에서 물 건너온 가방임을 누구도 눈치채지 못할 것 같은 그런 가방. 그러나 내 소중한 시간과 여행이 고스란히 담긴 그런 가방.


결국 난 촌스러움을 인정해야 했다. 이태리고 뭐고 더 이상 쓸모가 없어진 추억팔이 가방을 정리하기로 했다. 당근마켓에 올렸는데 누군가에게 바로 연락이 왔다. '제가 살게요!'


평범해 보이는 아주머니가 기쁘게 방긋 웃으며 다가왔다. 그리곤 연신 고맙다고 얘기한다.


- 제가 얼마 전 이탈리아 여행을 다녀왔는데 00이 선물을 못 사 왔거든요~~ 그래서 너무 마음에 걸렸는데 이 가방이 딱 나타났지 뭐예요~!! 이걸로 선물 주면 되겠어요, 호호!! 너무너무 감사합니다. 정말 딱이에요~!! 이탈리아 물건을 이렇게 구하게 되다니.....

- 아하 네^^... 음... 선물하신다고요? 안쪽에 보시면 좀... 사용 흔적도 꽤 있는... 하하, 괜찮을까요?

 - 하유~ 괜찮아요. 괜찮아. 이탈리아 가방이기만 하면 돼요!! 감사합니다.



그냥 가방이 필요한 게 아니라, 마침 하필 딱 이탈리아 가방이 필요했던 사람이 신기하게도 나타나 내 가방을 받아갔다. 이로써 내게 하등 쓸모없어진 가방이 새로운 주인을 찾게 되었다. 얼떨떨 하지만 팔길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빛도 보지 못하고 옷장 구석에서 나이만 먹어가는 것보다 훨씬 좋으니까 말이다. 내게 감정을 주지 못한 물건이 누군가에게 기쁨이 되다니 보람이 느껴졌다.




- 2편에서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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