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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레나팍 Feb 13. 2023

중고거래 100번 하며 가장 기억에 남는 일들 - 2편


1편에서 이어집니다.



4. 기대가 되는 사람

구독 중인 신문지 버리지 않고 적당히 모이면 중고로 판매했다. 그냥 재활용 수거함에 버리는 것보다 훨씬 가치가 있는 재활용이 될 거라는 생각 때문이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계속 사가는 사람들이 나타났다. 신문지만 10번 정도 거래를 했다. 그리고 매번 다른 사람들이 다른 사연을 가지고 나타났다. 신문지가 어디에 쓰이는지 궁금해 몇몇에겐 물어보기도 했다.


공장에서 구리 같은 제품을 생산하는데 신문지 위에 두고 펼쳐놔야 한다는 사람, 강아지를 키우는데 배변 장소용으로 필요한 사람, 골에서 쓰겠다는 사람 등이었다. 그중 아이 과제를 해야 하는데 최근 신문기사를 읽어야 한다며 10부만 줄 수 있겠냐는 연락이 와서 준 적도 있었다. 요즘 신문 구하기 힘든 세상이라며 반갑게 받아가는 사람도 있었다.


10번의 거래 중에 가장 인상적인 사람이 있었다. 그는 은 미소와 정중한 태도로 신문지를 받아갔다. 나보다 나이가 한참 많아 보였지만 나를 보자마다 굽신 인사를 했다. 그리고 고개를 숙이며 감사하다 말을 건넸다. 고작 신문지를 건네준 것뿐인데 귀한 물건이라도 받는 분위기랄까? 덕분에 꼭 필요했던 것을 받아 기쁘다는 듯한 느낌을 전달받았다. 신문지 하나에 진심을 담아 감사함을 표현하는 태도가 인상적이었다. 그는 식당 사장님이었는데 그의 친절한 태도에서 식당 서비스가 어떠할지 눈에 훤히 보였다. 왠지 장사가 잘 될 것 같았다.


몇 달 뒤, 두 번째 신문거래도 하게 되었다. 이번에는 딸이 가지러 간다고 했다. 그분을 잠깐 본 것뿐이지만 그 자녀분이 어떤 사람일지 궁금했다. 아니, 기대가 되었다. 딸은 동글동글한 얼굴에 선한 인상이었다. 그녀는 밝고 다정하며 따뜻한 웃음을 내보였다. 씩씩하게 신문지를 번쩍 들어 올리더니 차에 실었다. 그리고 생글생글 웃으며 인사를 하고 떠났다. 역시, 내 예감이 맞았다. 기분 좋은 느낌을 주는 사람이었다.


스쳐가는 만남이지만 하나를 보면 열을 안다는 말이 떠오른다. 부모를 보면 그 자녀가 보이고, 자녀를 보면 그 부모가 보이는 것 같다. 올바른 부모아래 올바른 자녀가 자람은 두말할 것도 없다. 나 역시 나를 통해 내 자녀가 기대되면 좋겠다. 내 자녀를 통해 내가 기대되면 좋겠다. 나부터 올바른 사람이 되어야겠다고 다짐해 본다.



5. 세서리를 수집하는 이유

한 때 나를 빛내주었지만, 이제는 쓸 일이 없는 액세서리를 정리했다. 무대에서 공연할 때 쓰던 화려한 액세서리들도 꽤 있었다.

언젠가 다시 쓸 일이 있을 줄 알았지만 그 언젠가는 오지 않았다. 보석함에 넣어두고 이사 갈 때마다 가지고 다니다가 결국엔 서랍에서 서랍으로만 옮겨 다니는 이들에게 새 주인을 찾아주기로 했다.

 

10여 종의 액세서리를 하나씩 사진을 찍어 올렸다. 귀걸이, 목걸이, 팔찌 등이었다. 누군가 사겠다고 연락이 왔다.


- 제가 사겠습니다.

- 이것도 사겠습니다.

- 이것도요~

- 이것도 사겠습니다.


그녀는 내가 올린 품목들을 하나씩 사겠다고 채팅을 보내더니 결국 내가 올린 모든 제품을 사겠다고 했다. 나야 감사할 일이었다. 한 명이 한 번에 다 사겠다고 하니 이보다 편할 수 없다. 그런데 어떤 사람일까? 나와 취향이 이렇게 같을 수가 있나? 엄밀히 말하면 과거의 내 취향과 같은 사람. 이 분도 화려한 걸 좋아하나? 옷도 화려하게 입는 사람일까? 정장에 어울리는 아이템들도 꽤 있는데 어떤 옷을 입고 나타날까?


궁금한 마음으로 거래를 하러 나갔다. 그녀는 50대 정도로 보이는 사람이었고 소위 말하는 아줌마 머리에 평범한 면바지, 검고 어두운 계통의 잠바에 운동화를 신고 나타났다. 일하다가 온 듯한 차림 같기도 했다. 그녀는 내게서 사 간 액세서리와 전혀 매치가 되지 않을 것 같은 차림이었다. 주말이면 다른 패션으로 변하는 건가? 아님 딸에게 선물하시는 건가? 그녀는 물건과 함께 휙 떠나갔다.


그런데 얼마 후, 몇 개의 액세서리를 더 올렸는데 그분은 또 연락이 와서 모조리 사겠다고 하셨다. 병원에 다니느라 2~3주 후에 사러 올 수 있다고 팔지 말고 기다려 달라고 하셨다. 나는 알겠다고 하고 그 분 또 거래했다. 화려함을 좋아하실 것 같 않한두 개도 아니고 왜 모두 사가시는 걸까? 어떤 이유로 사가는 건지 궁금했지만 물을 수도 없었다. 그녀가 영화처럼 전혀 다른 사람으로 변신해 이것들을 쓰는 걸까?? 상상이 되지는 않지만 상상의 나래를 펼쳐본다. 호기심과 궁금함을 남긴 거래였다.



6. 수요와 공급의 시장원리

전자레인지를 없애기로 결심했다. 혼자 살 때 쓰던 전자레인지인데 결혼 후에도 간혹 쓰다가 '전자레인지 없는 삶'으로 가고 싶어서 처분하기로 했다. 그런데 남편의 반대에 부딪혔다.


- 전자레인지 절대 팔면 안 돼!! 없으면 불편해서 못 살아


그래서 팔지 못하고 대신 서랍 안으로 넣어버렸다. 그리고 6개월이 흘렀다. 전자레인지를 서랍에서 꺼내서 써야 하는 불편함 때문인지, 서랍 속에 들어간 전자레인지는 한 번도 부엌 밖으로 나온 적이 없었다. 우리도 모르게 전자레인지 없는 삶에 익숙해지고 있었던 것이다. 이때다 싶어 남편 몰래 전자레인지를 후딱 팔아버렸다.


지난 시세를 보니 전자레인지 품목은 거래된 적이 별로 없었다. 시세를 가늠하기도 힘들었다. 모델마다 구매 가격도 천차만별이고, 사용기간도 다르고, 감가상각을 계산하기도 어려운 것 같았다. 내부에 미세한 하자가 있기도 해서, 임의로 할인가를 정하고 3만 원에 올렸다. 그랬더니 올리자마자 갑자기 알람이 빗발치기 시작했다.


당근!

당근!

당근!

당근! 당근! 당근!


내 전자레인지는 인기 폭발이었다. 올림과 동시에 여러 명에게 동시다발로 채팅이 몰려들었다. 한 명씩 대답하고 있노라면 계속 알림이 '딩동'대며 새로운 채팅이 밀려들었다. 3분 만에 10명이 을 섰다.


뭐지, 이 상황은???

내가 너무 싸게 올렸구나.... 를 순식간에 깨달았다.


공급은 없고 대기수요는 많았나 보다. 나는 싸게 올렸음을 깨닫고 순식간에 입을 싹 닫고 가격을 조정해서 올리고 싶마음뿐이었다. 그러나 얌체같이 그럴 수는 없었다. 울며 겨자 먹기로 가장 먼저 연락한 사람과 거래 약속을 했다. 총 15명에게 채팅을 받았다.


나는 이 중고거래를 통해 수요와 공급의 부동산 시장원리를 완전히 체득하며 이해했다. 수요가 몰릴 때 공급자가 어떤 심리인지, 왜 가격이 폭등하는지, 왜 팔짱을 끼고 금액 조정이 되지 않는지, 왜 호가가 떨어지지 않는지, 시세에 어떤 영향을 받는지 등의 심리를 단번에 이해했다.


수요와 공급, 그리고 심리. 중고거래를 통해 시장 원리를 깨닫게 해 준 사건이었다.







내게서 쓰임을 다한 물건이 어딘가로 가서 새로운 의미가 부여되며 새로 시작된다는 사실이 좋다. 새활용, 재활용, 기부 등 자원의 순환은 가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물건을 정리하다 보니, 물건을 사기 전 한 번 더 생각하게 된다. 얼마 못 가 쓸모 없어질 물건은 가급적 덜 소비하게 된다. 예를 들면, 옷장을 기껏 비워 절반가량으로 날씬하게 만들었는데 다시 절반을 가득 채우고 싶지 않은 마음이 든다. 새로 옷을 산다면, 기존 옷 하나를 버리고 사면 좋겠다는 생각도 든다. 비우기 전엔 몰랐는데, 비우고 나니 산뜻함과 가벼움이 주는 기분이 좋다. 안 쓰는 물건들을 정리하며 군더더기가 없어질수록 삶도 군더더기 없어지는 것 같다.


서랍 안에 산더미 같은 물건이 쌓여있으면 마음도 어지럽다. 물건의 개수가 적을수록, 늘 깔끔하고 정돈된 상태를 유지할 수 있다. 정돈된 집안은 정돈된 마음가짐과 태도로 연결된다. 그리고 이는 성공하는 사람들의 태도로도 연결된다. '돈의 속성'을 보면 비움의 중요성이 나온다. 쓸모없는 물건을 비워냄으로써 쓸데없이 소비되는 에너지들을 줄이고, 삶에서 중요한 것들에게 더 집중할 수 있게 된다. 오프라윈프리도 미니멀라이프가 주는 이점을 책에서 강조했다.


내 날개에 묻은 먼지를 털어내자.
그렇게 하면 더 쉽게 날 수 있다.
- 오프라 윈프리


경험해 보니 알겠다.

비움이 주는 에너지가 좋다.

켜쥐지 않고 놓아주며 가는 것이 좋다.


이제는 예전처럼 입지 않는 옷을 낑낑대며 들고 가지 않는다. 계절이 바뀌며 서랍장을 정리할 때, 올해 한 번도 입지 않은 옷을 하나씩 살펴본다. 입지 않은지 3년이 넘었다면, 내년에도 입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그런 옷들을 다시 서랍장에 넣지 않고 옆 상자에 살포시 담는다. 그리고 아름다운 가게에 기부한다. 소유에서 오는 기쁨보다, 비움에서 오는 기쁨이 더 크다.


올해 겨울 옷은 튀르키예 구호물품에 보내야겠다. 내 옷, 남편 옷, 아이옷까지 몽땅 뒤져서 겨울 옷을 보내야겠다. 장이 가벼워질수록 마음은 따뜻함으로 채워질 것이다. 옷들에게 새로운 의미와 날개를 달아줄 것이다. 훨훨 날아가 추운 겨울이 시리지 않도록 그 쓰임을 마음껏 펼쳤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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