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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레나팍 Feb 24. 2023

누가 사람은 안 변한다고 했나? 사람은 변한다

어느 30대 여자들의 대화 중

- 얘들아, 낼 밸런타인데이ㅋㅋ
- 초콜릿 준비함?
- 여자가 주는구나. 이제 그것도 헛갈리네
- 그니까ㅋㅋ 헛갈렸어 나도

결혼한 아이 엄마들이자 30대를 붙잡고 있는 나와 친구들의 대화방이다. 단백질 영양제, 주말여행, 가족 여행 등 얘기를 나누다가 마지막에 친구가 참고사항으로 던진 화두였고 우린 별 관심이 없다 보니 그 어느 때보다 단답형으로 짧게 대답하고 넘어갔다. 대화를 다시 보면 무미건조하기 이를 데 없다. '아.. 그런 게 있었어? 맞네.' 정도랄까. 이 주제로 단체방의 대화조차 끊겨버렸다.


우리 셋은 대학교 친구들이니까 10년도 훨씬 넘은 사이다. 이 말의 뜻은 10년, 15년 전에도 우리는 밸런타인데이에 관한 대화를 나눴다는 의미다. 지금은 기억이 나지 않지만 대학생 때 우리의 대화를 상상해 보면 아마도 이렇지 않았을까?

- 얘들아, 나 오늘 밸런타인 고백받았어ㅋ 갑자기 선물 줘서 깜놀ㅋ
- 오 마이갓!! 웬일이야ㅋㅋ 누구누구?? 뭔데 뭔데~ 자세히 좀 얘기해 봐
- 아 몰라, 갑자기 부담스러움ㅋㅋ
- 난 선물 주려고 초콜릿 직접 만들었는데 사진 보내줄게 봐봐ㅋㅋ


우리는 같은 사람들인데 대화 내용은 전혀 다르다. '밸런타인데이'를 놓고 보면 20대에는 관심과 흥미, 재미의 중심에 있었고 현재는 관심사 울타리 밖에 있다. 더 이상 중요한 날도 아닐뿐더러 특별히 호들갑 떨 기념일도 아니었다. 결혼기념일, 자녀 생일, 부모님 생신, 환갑 등 더 중요한 일정에서 한참 밀려났기 때문이다.


우리의 대화에서 엿볼 수 있듯이 우리는 참 많이 변해있었다. 라이프 사이클에 따라 관심사와 대화 주제, 하루 일과, 쇼핑 목록, 고민, 흉보는 대상마저도 모두 변했다. 삶의 우선순위도 바뀌었고, 외모도 바뀌었고, 스타일도 바뀌었고, 성격조차 조금씩 변했으며, 가치관도 변했다. 누가 사람은 절대 변하지 않는다고 했던가. 우리는 계속 변해왔다.


커리어와 관심사로 나의 변천사만 살펴봐도 그렇다.






20대, Career 네임밸류, 안정성 / Life 자유

20대에 직업을 선택하는 우선순위 기준은 네임밸류와 안정성이었다. 특히, 가정에서 사회에서 '안정성'을 끊임없이 강조했다. 내 주변 대부분의 사람들은 무모한 도전을 하지 않았다. 어떻게 하면 '안정적'으로 직장인이 될 수 있는지를 중요하게 고려했다. 네임밸류도 안정성의 일환이기도 했다. 연봉도 안정적으로 살아가기 위해 필요한 요소였다.


어찌 보면 아이러니하다. 가장 도전적이고 가장 창의적이고 가장 자유분방한 20대에 누구보다 '안정적'인 걸 추구하고 있었다니. 나뿐만 아니라 내 주변 대부분의 사람들이 말이다. 가장 방황해도 되는 20대에 우리는 마음껏 방황하지 못했다. 유럽 여행 중에 만난 친구가 본인들은 20세가 되면 유럽의 이웃 나라들을 여행하며 1년을 보낸다고 했다. 자유롭게 여행을 먼저 다닌 후에 진로든 미래든 결정한다는 말에 깜짝 놀랐다. 스무 살에 대학입학을 하지 못하면 사회적 낙오자라도 되는 듯한 우리네 분위기와는 전혀 달랐다. 취업 또한 한 살이라도 뒤쳐지면 큰일 날 것 같은 분위기와 달랐다. 그들에겐 남들과 같은 나이에 같은 걸 해야 한다는 것은 중요해 보이지 않았다.



30대, Career 자아실현 / Life 열정, 도전

30대가 접어들자 직업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는 자아실현이었다. 원래도 이 가치가 가장 높았는데 20대를 보내며 늦게 발견한 것뿐이었다.


내 가치를 일로서 증명해 보이고 싶었다. 그래서 자아실현을 할 수 있는, 일에 의미를 부여할 수 있는 곳을 찾았고 그곳에서 열정을 불태웠다. 연봉은 내게 중요하지 않았다. 얼마를 주던 상관없었다. 내가 만족할 수 있고, 공공의 이익을 실현할 수 있고, 재미를 느끼면 족했다. 자아실현은 돈 주고 살 수 없는 요소였다. 내 가능성과 꿈을 마음껏 펼쳐 보일 수 있는 곳이 내게 적합했다. 그런 곳을 찾았기에 시키지 않아도 열심히 일했다. 스스로 성과를 내기 위해 노력했다. 자기 계발을 하는 게 기쁨이었다. 열정과 도전으로 가득 찬 날들이었다. 나는 거침없이 달렸다.



30대 워킹맘,

Career 워라밸 / Life 건강, 자연, 균형

워킹맘이 되고 나니 모든 시각이 바뀌었다. 한국에서 살던 사람이 갑자기 미국에살아남아야 하는 느낌과도 같았다. 하나부터 열까지 새롭게 변했다. 나도 모르게 머릿속 우선순위들은 온통 뒤죽박죽으로 섞이고 바뀌어 있었다. 직업에선 워라밸이 가장 중요하다. 일과 가정을 함께 영위할 수 있느냐가 최우선순위로 떠올랐다. 아무리 고액연봉에 모든 조건이 만족스러워도 매일 새벽퇴근을 한다면?? 선택할 수 없다. 대신, 다른 게 부족하더라도 유연근무나 단축근로제, 그리고 집에서 가까워서 출퇴근 시간이 단축된다면?? 언제라도 달려갈 태세다. 이처럼 내 개인의 만족만 생각하는 게 아니라 '일+가정'이 한 세트가 되었다. 일에서 인정받는 것보다 일과 엄마라는 2개의 직업을 소화할 수 있는 환경이냐가 중요해졌다.


인생의 우선순위도 바뀌었다. 예전에는 후순위에 있던 운동과 건강, 심신의 조화, 평온, 균형 등이 주요 가치관이 되었다. 더 예쁜 사람보다는, 더 여유롭고 유한 사람으로 거듭나고 싶어 진다. 당연히 늘 그 자리에 있어 거들떠보지 않았던 자연이 경이롭고 소중하게 다가온다. 개인의 행복만을 추구했다면 인생의 순리, 운의 작용, 끌어당김의 법칙, 인과응보 등을 생각하게 되었다. 거침없던 20대의 직진행보보다는 주변을 돌아보고 느린 걸음으로 오늘의 소소한 충만함을 느끼며 나아가고 싶다.






중요한 사람, 기쁨을 느끼는 요소, 가치관의 우선순위 등이 신기하게 계속 변한다.  때는 가장 소중했던 물건이나 가치들이 한낱 부질없어지기도 한다. 를 보면, 영원한 기쁨과 만족도 없고, 절대적인 옳고 그름도 없는 것 같다. 그러니 집착하거나 움켜쥐고 갈 필요도 없다.


과거엔 실수하지 않고, 실수를 용납하지 않았던 내가 사소하고 기본적인 실수들을 하게 된다. 그리고 '허허~'거리며 실수를 받아들이고 넘어간다. '실수해선 안돼'가 확고했던 입장이 '실수할 수도 있지 뭐' 정도로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게 되었다. 그러니 보다 넓은 마음과 유연한 자세로 변화하는 나를 받아들이자. 때론 타인이 전혀 이해되지 않는 행동을 한다고 해도 적당히 넘어가는 아량을 베풀자. 나도 언젠가 그의 입장과 태도가 될지도 모른다.


한 살 한 살 나이가 들면서 세련미 한 스푼, 원숙미 한 스푼이 더해져 간다. 변화하며 성장해 가는 재미가 쏠쏠하다. 마냥 젊음을 그리워할 것도 아니다. 지금의 나는 과거엔 가지지 못했던 생각과 시각, 판단으로 새로운 세상을 그려나간다. 그때의 나도, 지금의 나도 좋다. 변화의 바람에 몸을 싣고 인생의 따라 흘러가보자. 나의 하루를 충실히 살다 보면 멋진 미래에 닿아 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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