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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레나팍 Mar 29. 2023

부모님 의료비 영수증을 보며 드는 생각

60대 아빠와 30대 딸의 대화

60대 아빠와 30대 딸의 대화


- 딸~ 그... 다름이 아니고 엄마아빠 의료비 영수증 모아놨는데 저번에 너 올 때 깜박하고 안 줬다. 네가 보험금 청구 좀 해주라

- 흠~~ 왜 안 챙겨줬어요~~ 며칠 전에 갔을 때 주면 되었을걸!

- 깜박했다잖니~~ 우체국 가서 등기로 보낼 테니 처리 좀 해줘

- 등기??? 뭐 하러 귀찮고 돈 아깝게. 그냥 스캔으로 보내면 간단한데~

- 스캔??? 그걸 언제 풀칠하고 있냐. 그냥 싹 보낼 테니 네가 봐봐. 한 2~3년 치 될 거다.

- 2~3년이요?? 아니, 보험금 청구권 소멸시효 있는데. 2년인가? 3년인가?? 왜 이제 주시는 거예요??

- 올 때마다 깜박했어~~

- 몇 십 년간 매달 보험료를 그렇게 많이 내놓고 보상받을 권리는 왜 청구를 안 하시노??

- 허허. 네가 알아서 지난 건 버리고, 기한 내 인건 청구해라~ 딸~~ 고맙다~~



딸은 잔소리를 해대며 부모님 의료비, 약제비 영수증을 등기로 받았다. 다행히 각 10건 정도로 양이 많지는 않았다. 다행이다. 부모님께서 병원 가신 횟수가 10건을 넘지 않아서. 


그럼에도 3년 치 의료비 보험금 청구는 은근히 정리할 게 많았다. 약제비 영수증을 풀로 다 붙여서 정리하고, 날짜를 보고 병원과 약국 영수증을 매치시키고, 병명이나 아픈 사유 등을 확인해서 정리했다. 건별로 스캔한 뒤, 홈페이지에 가입하고 마지막으로 보험금을 청구했다. 일이 바쁘다는 핑계로 틈틈이 짬 날 때 단계별로 정리하느라 1달이 걸렸다. 내 하루일과의 우선순위에서 미뤄졌다고 봐야 할 것이다.


마음먹고 서류더미를 들고 의료비 영수증 풀칠을 시작했다.

'아빠, 위염이 자주 있으셨구나...'

'역류성 식도염도 걸리셨네....'

'이거 뭐야? 연말마다 위염으로 치료받으셨네? 송년 모임에서 술 많이 드셨나 보네!'

'허리 협착증? 허리도 계속 아프시더니... 또 치료받으셨구나'

'엄마도 허리 약 드셨네? 약으로는 통증 치료가 안될 텐데...'

'아빠 안과도 한 번 가셨네? 어디가 안 좋으셨던 걸까?'

'엄마 피부약은 왜 받으신 거지? 주부 습진인가??'


지난 3년의 부모님 병원기록에서 부모님의 삶의 모습이 보였다. 자식 앞에서 아프다는 얘기도 한 적 없고, 병원 간다는 얘기도 거의 한 적이 없어서 크게 신경 쓰지 않고 있었다. 무심했던 3년의 시간을 영수증이 말해주고 있었다. 


그 사이 나는 내 새끼 아픈 것에만 집중하고 있었다. 감기 하나 걸리면 오매불망하며 일-병원-육아를 소화하느라 바쁘게 뛰었다. 열이 나서 아이가 쳐지면 내 마음도 함께 처졌다. 축농증이 오고, 숨쉬기 어려워 잠도 잘 들지 못할 땐 걱정이 더욱 커졌다. 비염과 코에 좋다는 작두콩차를 사서 끓여 먹이고, 코 밑에 바르는 아로마밤도 발라 보고, 코끼리뻥코를 사서 코도 빼주고, 결국에는 비싸다는 콧물 빼는 기계도 샀다. 내가 내 새끼만 바라보고 있을 때 우리 부모님도 여러 사유로 병원을 다니고 계셨다.


영수증 뭉치를 보니 미안함이 올라왔다. 아빠에게 위염에 좋다는 양배추를 챙겨드시라고 문자를 보냈다. 그러면서 또 반성한다. 몸에 좋은 걸 사드리지는 못할망정 말로만 하고 있으니. 


내 자식이 조금만 아파도 마음이 아프고 뭐든 해줄 수 있을 것 같다.

내 부모도 나를 이렇게 애지중지 키워주셨겠지.

대신 아프고 싶을 만큼 애정과 사랑을 듬뿍 담아 나를 간호하고 치료하셨겠지.


아빠가 보내주신 진료내역을 엑셀로 정리했다. 날짜, 병원, 병명, 금액 등을 기재하고, 영수증이 추가로 필요한 것은 비고란에 적었다. 의료비 총액을 보여드리고, 예상 수령 보험금을 예측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었다. 아빠가 이걸 보시면 또 이렇게 생각하시겠지?


- 껄껄. 역시 내 딸은 날 닮아서 이렇게 꼼꼼하구만. 나보다 더 해 아주~~


아빠가 좋아하실 걸 생각하니 미소가 지어진다. 자식만 내려다볼게 아니라 나를 키워내신 내 부모를 바라보며 더 자주 연락드려야겠다. 양가 부모님이 건강하신 것만큼 축복인 게 어디 있으랴. 멀리서 위대한 효도를 찾지 말고 가까이 일상에서, 자주 소소하게 효를 실천하기를 다짐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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