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6 Ⅰ.슬픔에 대하여 ⑤
고양이는 빨리 늙는다. 놀랍도록 귀엽고 사랑스러운 이 생명체는 야속할 만큼 빠르게 돌아가는 생체시계를 지닌 탓에 특별한 주의를 기울이지 않으면 눈 깜짝할 사이 어느덧 노년기에 접어들어 있다. 최대 500년까지 산다는 장수거북이나 보통 130년을 산다는 북극고래까지는 아니더라도, 인간과 비슷한 수명(60~100년)을 가진 앵무새만큼만 이라도 오래 살면 좋으련만 고양이의 기대 수명은 20년을 넘지 못한다.
미국수의사회(AVMA)가 개와 고양이의 실제 나이를 사람의 나이로 대략 환산한 표는 다음과 같다. 고양이와 개 모두 만 1~2살 사이 인간의 성년에 이르게 된다. 보통 태어나 6개월까지 유아기(kitten), 6개월~한 살까지를 아동기(junior)로 보는데 보통 18개월이면 신체적으로 어엿한 어른이 되는 것이다.
어미가 정상적으로 새끼를 돌볼 경우 최소 만 3개월령 이상 동물을 입양하는 것을 권장한다. 그러니까 동물이 아기 때 한 가정의 가족이 되고 고작 1년 남짓이면 성장이 끝난다는 얘기가 된다. 고양이는 이후 청년기(prime), 중장년기(mature)를 거쳐 노년기(senior)에 진입하는데 고양이와 소형견은 7살이면 노령동물로 본다. (대형견은 노화가 더 빠르게 진행돼 5~6살이면 노년으로 간주한다) 또한 11살 이후는 노년기 이후(geriatric)로 분류해 이때부터 본격적으로 노화로 인한 건강문제를 겪는다고 보면 된다.
같은 미국수의사회가 제공하는 자료지만 아래 표는 조금 차이가 좀 있는데 고양이는 7살이면 사람의 54세, 견종 크기별로 수명 차이가 큰 개는 7살을 사람 44~56살로 제시하고 있다. 인간과 마찬가지로 반려동물 역시 수의학의 발전, 삶의 질 향상으로 평균수명이 늘어나는 추세다. 사람 노인의 기준이 조금씩 늦춰지고 있는 것처럼 고양이나 개의 노년 기준도 과거에 비해 조금은 뒤로 미룰 수 있을 것이다. 다만 확실한 것은 귀여운 동물가족들은 우리 예상보다 빨리 특별한 관리가 필요한 시기로 접어든다는 것이다.
물론 노화 자체는 질병이 아니다. 하지만 노년기 동물은 노화와 관련된 각종 질환에 시달릴 가능성이 높아져 보호자의 주의 깊은 관찰과 노력이 시작돼야만 한다. 노년기 동물에게선 털색이 옅어지고 걸음걸이나 움직임이 느려지는 등 눈에 보이는 변화가 차차 나타난다. 치아에 치석이 많아지는 것도 당연하고 흔한 증상인데 이와 함께 생명활동을 담당하는 기관들에 이상이 생기기 시작한다. 청력, 시력 같은 감각기관이 서서히 퇴화하고 심장, 신장, 간 등 주요 장기의 기능도 떨어지기 시작한다. 사람과 똑같다고 보면 된다.
문제는 점진적인 변화를 보호자들이 알아채기 어렵다는 것이다. 어린아이가 매일 조금씩 자라는 것을 부모는 눈치 채지 못하다 사진첩을 꺼내 보다 문뜩 내 아이가 얼마나 컸는지 놀란다. 반려동물의 노화도 마찬가지다. 보호자들은 쉽게 반려동물의 늙음을 알아차리지 못하고, 어느 날 ‘언제 이렇게 살이 빠졌지’, ‘식사량이 줄었네’, ‘날렵함이 전만 못한 걸’ 하는 식으로 변화를 느낀다. 그리고 병원을 찾았을 때는 이미 노화로 인한 문제가 상당히 진행된 경우가 많다. 따라서 반려동물이 노년기에 접어들었다면 건강상의 변화를 추적할 수 있는 정기적인 검사가 필수다. 또한 아이들의 행동을 유심히 관찰해 적절한 도움을 줄 수 있어야 한다. 식사량, 배변 횟수와 양 등을 일상적으로 확인하고, 침대·소파 등 높은 곳을 어렵지 않게 오르내리기 쉽도록 계단이나 사다리를 놔주거나 하는 배려가 필요하다.
고양이의 만성질환과 수명
집 고양이의 기대수명이나 사망원인에 대한 국내 자료는 찾아보기 어렵다. 고양이를 포함해 반려동물에 대한 연구가 우리보다 일찍 시작된 외국의 연구를 참고해야 한다.
영국 왕립수의학교(Royal Veterinary College) 소속 연구진(*)은 2009년 9월 1일부터 2012년 12월 20일까지 90개 동물병원에 내원해 1차 치료를 받은 11만 8016마리의 고양이를 대상으로 종, 성별, 나이, 중성화 여부, 보험가입 여부, 체중, 질병 상태 등을 조사해 2015년 연구결과를 내놨다. 이 기간 사망한 3,309마리 고양이의 사망 원인을 분석한 결과 1위는 외상(405마리, 12.2%)이었고, 2위가 근소한 차이로 신장 질환(399마리, 12.1%)이었다. 이어 3위는 원인불명(370마리, 11.2%), 4위 악성종양(356마리 10.8%), 5위 종양 유래 질병(336마리 10.2%) 등이었다. 질환이 아닌 외상을 제외하면 신장질환이 1위이고, 1~5위(합 56.5%) 중 부위를 특정할 수 있는 질병도 신장질환이 유일하다.
고양이가 신장질환에 취약한 이유에 대해선 여러 가설이 있다. 우선 고양이는 사막에서 유래한 종이라 물을 잘 마시지 않는 습성을 갖고 진화했는데 이 때문에 나이가 들면서 신장이 서서히 망가진다는 가설이 설득력 있게 받아들여져 왔다. 과거 야생의 고양이는 작은 동물을 잡아먹으며 충분한 수분을 섭취했지만, 지금의 집고양이는 수분 함량이 거의 없는 건사료를 먹는다. 건사료를 주식으로 먹는 고양이들은 만성적인 탈수 상태가 되기 쉽고, 신장은 소변을 농축하기 위해 과부하가 걸리도록 일을 해야 한다. 따라서 나이가 들면서 신장 및 비뇨기 질환이 발생하기 쉽다는 것이다. 상당히 설득력 있는 가설이기도 하거니와 반려 고양이가 평소에 신선한 물을 자주, 많이 마시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물을 충분히 마셔 신장에 혈류를 촉진하고 체외로 나쁜 물질들을 내보내는데 도움을 줘야 한다.
최근엔 혈액 내 단백질의 일종인 AIM(Apoptosis inhabitor of macrophage, CD5L) 때문이란 연구가 주목받고 있다. 일본 도쿄대학 대학원 연구팀(**)이 밝힌 바에 따르면, 인간의 몸에서 AIM은 신장, 간 등 장기가 손상됐을 때 죽은 세포를 없애 장기 기능을 회복하는 일을 한다. 그러나 고양이는 AIM 단백질이 제 역할을 하지 못해 만성신부전 발병률이 높다는 것이다. 실제로 쥐(Feline mice)를 대상으로 실시한 동물실험에서 AIM 단백질을 혈액에 주입한 쥐들의 생존율이 대조군과 비교해 눈에 띄게 높았다. 급성신부전 인간 환자와 고양이를 대상으로 한 실험에서도 AIM을 주입해 신장 기능이 개선됐다는 결과가 나왔다.
이 단백질 이름을 딴 일본의 제약회사 ‘AIM제약’에서 만성 신장질환 고양이들에게 투약 가능한 신약을 현재 개발 중이고 거의 마지막 단계라는 소식이 최근 몇 년 전부터 전해지고 있다. 이 신약으로 고양이 수명을 30년까지 늘릴 수 있다는 장밋빛 전망도 나오고 있다.
영국 왕립수의학교 연구진의 논문엔 고양이 종별 수명 통계도 있다. 11만 8016마리 고양이 중 사망원인이 확정된 4,009마리가 표본이 됐고, 이들의 평균수명은 14살이었다.
사망 시점의 나이를 보면 15~16살에 사망하는 고양이가 가장 많았고, 초기 생애인 0~1살에 사망하는 비율도 높아 이원화된 분포(bimodally distributed)를 보였다.
종별 수명은 버만 고양이가 평균수명 16.1세(12마리)로 1위를 차지했다. 이어 태국 품종인 버미즈 고양이 14.3세(31마리), 샴 14.2세(31마리), 페르시안 14.1세(70마리), 이종 교배종(Crossbred) 14세(3621마리), 브리티시 숏헤어 11.8세(69마리), 메인쿤 11세(14마리), 랙돌 10.1세(21마리), 아비시니안 10세(11마리), 벵갈 7.3세(15마리) 순으로 나타났다. 종별로 평균수명은 큰 차이를 보였지만 개체수가 적어 일반화한 결론을 내리긴 어려워 보인다.
다만 이종교배 고양이들이 순수혈통 고양이보다 오래 사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종 고양이의 평균수명이 14세인 반면 순수 혈통 고양이는 12.5세였다. 이 연구의 표본 중 가장 오래 산 개체도 이종교배 고양이 중에 있었는데 26.7세로 보고됐다. 또한 암컷의 평균수명이 15세로 수컷 13살 보다 길었고, 중성화된 고양이들은 평균 15년을 사는 반면 중성화되지 않은 고양이는 평균 11살에 생을 마감했다.
다섯 살 이상 생존한 고양이로 대상을 좁힌 경우(Multivariable modelling)에도 이런 경향은 유의미하게 관찰됐다. 5살이 넘어 무지개다리를 건넌 고양이 중 이종 교배 고양이는 순수 혈통 고양이보다 0.6살, 마찬가지로 중성화된 암컷 고양이도 그렇지 않은 암컷 고양이 평균 보다 0.6살 더 살았다. 또한 고양이의 체중이 증가할수록 평균수명은 짧아졌다. 체중 3kg 고양이를 기준으로 놓았을 때 3.0~3.9kg 고양이는 평균 수명이 0.8살 적고, 4.0~4.9kg 개체는 1.7살, 5.0~5.9kg 고양이는 2.0살, 6.0kg 이상 고양이는 3.3살 수명이 짧은 것으로 나타났다.
*<Longevity and mortality of cats attending primary care veterinary practices in England> O'Neill DG, Church DB, McGreevy PD, Thomson PC, Brodbelt DC. 2015.2. Journal of Feline Medicine and Surgery(JFMS).
** <Impact of feline AIM on the susceptibility of cats to renal disease> Scientific Reports
2016.10. Ryoichi Sugisawa, Emiri Hiramoto, Shigeru Matsuoka, Satomi Iwai, Ryosuke Takai, Tomoko Yamazaki, Nobuko Mori, Yuki Okada, Naoki Takeda, Ken-ichi Yamamura, Toshiro Arai, Satoko Arai & Toru Miyazaki. 논문 원본은 이 링크에서 볼 수 있다. https://www.nature.com/articles/srep3525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