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9 Ⅰ.슬픔에 대하여 ⑧
반려동물의 건강과 수명은 타고난 유전자뿐만 아니라 보호자가 아이를 어떻게 돌봤느냐에 달려있다. 생활방식에 따라 사람이 얼마나 잘 나이 드는지, 얼마나 오래 사는지 떠올려 보면 된다. 몸에 좋은 자연식품(whole food)과 건강 보조제를 챙기며 꾸준히 운동하는 사람과 고열량의 정크 푸드나 배달 음식으로 끼니를 때우며 소파에 누워 지내는 이들의 평소 건강과 수명은 다르다. 누구나 건강한 청년기에는 큰 차이가 없지만 나이가 들수록 관리의 차이가 확연히 드러나는 것과 같다.
식습관, 생활습관에 더해 심신의 스트레스도 큰 영향을 미친다. 지금의 나는 과거의 나의 총합이듯, 일상이 차곡차곡 쌓여 장기적인 결과를 낳는다. 반려인의 선택에 전적으로 삶의 질이 달려 있는 동물들에게 더 세심한 일상적 돌봄이 필요한 이유다. 우리는 사랑하는 반려동물이 건강하게 성공적으로 나이들 수 있도록 도와줄 수 있다. 질병과 장애가 있다면 그것에 적응하며 사는 방법도 배워야 한다.
신부전이 있거나 가능성이 있는 고양이에게는 물, 물, 물이 중요하다. 음수량을 채우는 것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이런 어색한 번역투의 관용구를 굳이 쓸 만큼 고양이에게 신선한 물은 생명과 같다. 고양이 신부전을 물을 잘 안 먹어서 생기는 질환이라고 말하는 이들도 있을 만큼 물을 충분히 섭취하는 것이 절대적으로 중요하다. 고양이의 적정 음수량은 체중 1kg당 50ml 안팎으로 알려져 있다.
따라서 식사를 통해 다량의 수분을 섭취할 수 있는 습식이 권장된다. 성분이 좋은 주식캔이나 생식이 좋다. 건사료를 주식으로 했던 고양이라면 신부전 진단 후 습식으로 전환하는 것이 좋다. 다만 식단을 급격하게 바꾼다거나 입맛에 맞지 않는 처방식이를 강요해선 안 된다. 고양이는 스트레스에 취약한 동물이다. 먹는 것이 스트레스가 되면 건강을 더 해칠 것이다.
신부전은 신장이 제 기능을 하지 못해 대사 과정에서 발생하는 노폐물을 제대로 거를 수 없고, 그것이 몸에 쌓이는 질환이다. 그래서 음식 섭취 단계부터 식단에서 단백질 비중을 줄여 신장에 과부하가 걸리지 않도록 한다. 신장질환 고양이용 처방식 사료의 기본이 저단백, 저인이다. 사람도 신장 질환이 있으면 우선 식이에서 단백질 비중을 일반인의 60~70% 수준으로 제한한다. 사람이든 고양이든 건강하다면 단백질의 과한 섭취가 크게 문제 되지 않지만 신부전 동물에게 고단백 식이는 독과 같다고 한다.
생고기로 만드는 생식은 단백질 비중이 높기 때문에 신부전 환묘에게 생식을 급여하는 것에 대해 논쟁이 있다. 생식 자체에 대한 의구심도 있다. 전문가가 아닌 반려인이 만드는 생식의 영양학적 균형, 위생관리 등이 완벽할 수 없다는 이유에서다. 하지만 신부전 환묘를 비롯해 고양이를 반려하는 다수의 보호자들이 생식 급여 후 긍정적인 변화를 경험한다. 또 각종 질환에 특화된 다양한 생식 레시피가 개발되고 있다. 나는 미미와 함께 한 10년 동안 내내 생식을 했고 잘한 일이라 생각한다.
“You are what you eat.” 직역하면 당신은 당신이 먹는 것이다, 혹은 무엇을 먹는지가 바로 당신을 만든다는 이 말은 아픈 고양이를 포함한 모든 반려동물에게도 해당된다. 질 좋은 재료로 만든 신선한 음식은 생명이 누리는 최고의 기쁨이자 건강의 바로미터다. 반려동물은 반려인이 주는 음식을 먹을 수밖에 없고, 따라서 어떤 음식을 선택하는지가 동물의 건강에 절대적인 영향을 미친다.
반려동물에게 평생 상업사료를 주식으로 주는 것은 너무나 인간 편의적이다. 불과 한 세대 전까지만 해도 집에서 키우는 개나 고양이들의 주식은 사람들이 남긴 잔뜩 양념이 된 음식이었다. 된장찌개에 밥을 말아 먹여 키운 할머니 댁 고양이가 스무 살까지 살았다더라, 는 식의 이야기도 있다. 그에 비하면 필요한 영양이 고루 들어간 전용 사료, 값도 천차만별이라 제법 비싸기도 한 고급 사료를 먹는 것은 호강이라는 사람들도 있다. 하지만 동물의 사료를 인간으로 바꿔 생각하면, 일평생 시리얼이나 곡물 가공품을 매일 먹는 것이다. 필수영양소가 완벽하게 구성됐고, 말끔한 환경에서 생산된 것이라 해도 다르지 않다. 편하고 맛도 있을 테지만 분명 최선의 식이는 아니다. 평생 그런 것만을 먹어야 한다면 인간 대부분은 고문으로 느낄 것이다. 인간에게 먹는 것은 삶의 질과 행복을 위해 아주 중요하다. 우리 삶의 반려자인 동물 또한 다를 리가 없다.
고양이의 행복, 삶의 질과 기쁨을 구성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는 보호자의 사랑과 함께 맛있고 질 좋은 음식이라고 생각한다. 아이들이 맛있는 음식을 달게 먹어 치우는 모습, 간식을 향한 그토록 순수한 열정과 기쁨은 반려인에게도 큰 행복을 준다. 꼭 환묘를 돌봐서가 아니라 동물을 가족으로 둔 모든 이들이 조금 더 책임감을 갖고 반려동물의 식이에 신경을 쓰면 좋겠다.
환묘들은 전반적인 스트레스 관리도 중요하다. 이 부분은 개묘차가 크기 때문에 아이 성향에 따라 적절한 스트레스 관리가 필요하다는 당연한 이야기를 할 수밖에 없겠다. 모든 것은 고바고(고양이 by 고양이)이지만, 환묘에게도 놀이는 중요하다. 고양이들은 본능적 사냥꾼들이다. 독일의 시인이자 극작가 프리드리히 실러(Johann Christoph Friedrich von Schiller)는 “인간은 놀이를 즐기고 있을 때만이 완전한 인간이다”라고 했는데, 고양이에게도 들어맞는 말이다. 고양이는 사냥을 즐기고 있을 때만이 완전한 고양이다. 스트레스 관리와 자신감, 즐거움을 위해 나이 든 아이들도 적당한 놀이가 필수라고 생각한다. 미미는 생의 말기로 접어든 시기에도 곧 잘 놀만큼 대단한 사냥꾼이었다. 마지막을 앞두고도 간혹 컨디션이 괜찮을 땐 호기심을 자극할 수 있는 정도로 살살 놀아주며 아이의 반짝이는 눈에 입 맞췄다.
한창때와는 비교할 수 없게 굼뜨게 반응했지만 늙고 아픈 고양이에게도 사냥 같은 놀이는 중요하다. 사그라든 호기심과 열정을 보는 것은 슬픈 일이지만 여전히 움직이는 물체에 궁금함을 갖고 솜방망이를 날리는 사냥꾼의 본능을 확인하는 것은 내게 큰 기쁨을 줬다.
놀이 후의 보상인 간식도 빼놓을 수 없겠다. 만성질환을 앓는 아이들을 위해 다양한 간식이 시중에 나와 있다. 반려동물 산업이 우리보다 일찍 번성한 일본 또는 유럽 등에서 만들어진 환묘용 간식을 어렵지 않게 구할 수 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지속적인 관찰과 정기 검진으로, 발병 초기에 질환을 진단하는 것이다. 신부전은 물론 고양이 만성질환으로 흔한 췌장염, 비대성 심근증(Hypertrophic Cardiomyopathy), 종양 등 모든 병에 해당된다. 이상이 조기에 발견되면 질환의 전개를 늦추고, 손쓰기 어려운 상황을 막을 수 있다.
20여 년 만에 다시 고양이를 키우게 된 누군가의 이야기를 듣고 크게 공감한 적이 있다. 처음 고양이를 키웠던 20년 전인 그때나 지금이나 수의학에 큰 변화가 없다는 지적이었다. 최근 1, 20년 사이 수의학의 발전이 전혀 없다고 할 수는 없지만 인의의 발전 속도에 비하면 차이가 크다. 특히 신부전·암 등 빈발하는 질병에 대한 처치나 만성질환을 앓는 동물의 삶을 높이기 위한 통증관리 등 크게 달라진 점을 찾기 어렵다. 인의에서 암은 여전히 정복되지는 않았지만 생존율이 비약적으로 높아졌다. 표적항암제, 면역항암제 등 치료법이 시시각각 진화하고, 신약 개발을 위한 임상의 범위와 속도가 매우 빠르다. 만성질환자의 삶의 질에 결정적 영향을 미치는 통증과 불편감을 다스리는 통증의학 분야도 갈수록 중요하게 다뤄지고 있다.
수의학이 인의 보다 어려운 학문이라 발전이 더딘 것일까. 그건 아닐 것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냉정한 시장원리가 작동한 것이라 생각한다. 동물용 신약이나 개선된 치료법, 첨단화된 진단 등에 선뜻 지갑을 여는 보호자가 충분히 많지 않았기 때문 아닐까. 늙은 동물, 불치병을 앓는 동물을 끝까지 책임지고 돌보기보다 일찍 포기하는 사람들이 많았기 때문 아닐까.
많은 반려인들이 동물을 가족으로 생각한다며 예뻐해도 건강에는 잘 개입하지 않는 입장을 취하는 경우가 많다. 동물들 역시 사람처럼 특정 연령이 지나면 정기적으로 건강검진을 하고, 식생활과 생활습관을 개선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하지만 큰 문제가 생기기 전까지 병원 문을 두드리는 이들이 많지 않다. 무지나 무관심 때문이기도 하지만 동물의 건강상태에 충분히 주의를 기울이지 않거나 더러는 외면하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거기에 더해 동물병원에 대한 불신도 이런 분위기에 일조한다. 값비싼 동물병원비와 엉터리 진료는 반려인들 사이에 자주 성토 대상이 되지만 개선이 요원해 보인다. 서비스 대상이 말 못 하는 동물인 데다 반려인들도 수의학에 대한 별다른 지식이 없고, 동물진료 표준수가제 폐지 등이 얽힌 복잡한 문제이기 때문이다. 반려인들은 엉터리 수의사가 내 지갑을 털어가려 한다는 의심을 한 번쯤 해봤을 것이다. 이렇게 여러 문제가 얽히고설켜 악순환이 계속되는 것이다. 아직 아이가 젊고 건강하던 시절 나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우리의 소중한 동물 가족들에게 아프기 전부터 일상적인 관리를 해주어야 한다. 그것은 생명체로써의 필수 권리이자 동등한 가족 구성원으로서 마땅히 받아야 하는 존중이다. 반려인에겐 의무이자 책임이다.
그 바탕이 되는 것이 사랑이 아닐까 싶다. 지금 내 옆에 있는 동물이 소중하다면, 과묵한 털북숭이 친구를 사랑한다면 아이를 주의 깊게 보고 자주 이야기를 나눠보자. 내 소중한 시간을 동물 가족과 나누고, 마음으로 교감하는 것은 반려인과 아이 모두를 위한 최고의 선물이다.
안타깝게도 이 모든 것을 할 수 있는 보호자는 많지 않을 것이다. 또한 아무리 열심히 해도 충분하지 않다고 느낀다. 최선의 최선을 다해도 진행성 불치병을 앓는 노령동물의 증상이 개선되는 경우는 드물고, 유지는커녕 나빠지고야 많다. 내가 무엇을 또 잘못한 것인가 늘 염려하고 부족하다고 느낄 수밖에 없다. 사랑하는 아이를 향해 만성적인 죄책감에 시달린다. 기꺼이 아이를 돌보지만 가끔은 고립감과 좌절감에서 벗어나고 싶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돌아보면 아이를 향한 사랑으로 벅찰 만큼 충만했지만 동시에 가장 외롭고 고독한 시기였다. 살면서 그토록 고독했던 적은 없었던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