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사의 일기3>검진 전날, 잠이 오지 않는 밤

11 Ⅰ.슬픔에 대하여⑩

by 우아한우주

미미가 많이 아프고 두 달째. 오늘 아이 컨디션이 아주 좋았다. 늘 욕실이나 소파 아래 누워만 있더니 오늘 아침엔 소변을 보고 가다 식탁 의자 앞에 자리를 잡는다. 아프기 전 하루에 몇 번이고 본 뒤태다. 맞아, 우리 미미가 의자로 뛰어오르기 직전 바로 그 모습이지!


가뿐히 뛰어올라 소리 없이 멋지게 착지하는 그 잽싸고 우아한 도약. 그에 앞서 감지되는 찰나의 긴장. 아 얼마만인가. 아이의 뒷모습에서 의자를 오르겠다는 분명한 의지를 보고, 설마 하면서 심호흡했다.


분명히 뛰지는 못할 것이라 답삭 들어 올려주려는 순간, 아이가 벌써 뒤뚱 의자 위로 뛴다. 그러나 앞발만 겨우 의자 앉는 자리에 닿고 데굴 떨어지려 한다. 심장이 철렁. 너무 놀랐지만 바로 손을 뻗어 아이를 의자로 올리고, 아이가 당황하지 않게 신나는 목소리로 "오구오구 우리 애기 너무 멋지다~" 칭찬해 주었다. 두 달 만에 의자 위로 순간 이동한 아이는 어리둥절, '지금 내가 여기 올라온 게 맞지 그치' 하는 세상 귀여운 표정...


여세를 몰아 의자에서 식탁까지 등반은 성공. 그리고 이어진 싱크대 위로 올라가 한참을 앉아 있는다. 물을 찾기도 하고, 오랜만에 맡는 싱크대 주변 특별한 공기가 마음에 들었는지 그릉그릉 노래를 시작했다.


정말 간만의 컨디션이라 행복에 겨워야 하는데 갑자기 감정이 폭발해서 뒤돌아서 눈물을 쏟았다. 아이에게 들리지 않도록 소리 내지 않고 입술만... 내 아가, 내 사랑, 내 딱한 아기... 보통의 걸음도 이제 휘청거리는 녀석이, 물 찬 제비처럼 의자 위로 날아오를 리가 없다는 걸 잘 알면서도.


짧은 다리 네 개가 보이지 않을 정도로 날래게 집안을 뛰던 것이 엊그제 같은데 비통하고 분하다. 네가 다시 의자를 제 힘으로 오르는 날이 올까. 앞으로 이런 도약의 몸짓, 결과는 허무하나 너무나 벅찬 시도를 몇 번이나 더 보여줄까. 내가 혹여나 집을 비웠을 때 뛰어오르다 힘없이 고꾸라지는 일은 없어야 할 텐데..


어젯밤 막 잠들려는데 20일 만에 구토가 있었다. 모든 투약을 마치고, 급식량을 달성하고 두시쯤 불을 끄고 안도의 굿나잇 인사. 그리고 1분쯤 됐을까, 그 머리 쭈뼛 솟는 간만의 꾸웩꾸웩 소리에 이불을 박차고 욕실로 달려가니 하루의 마지막 투약인 철분제와 이후 먹인 것들을 다 쏟아냈다.


구토만큼 괴로워 보이는 게 없다. 머리도 복잡해진다. 두 시간 전에 먹은 항생제도 나왔을까. 어디가 또 고장 난 걸까. 결국 신경이 곤두서 밤새 잠을 설쳤다. 아이가 두 시간 간격으로 배변패드를 긁을 때마다, 숨죽이고 일어나 잔뇨감에 부르르 떠는 작은 털뭉치의 뒷모습을 보며 눈을 질끈 감고 입술을 깨문다. 그리고 터덜터덜 걸어오는 아이를 안고 유동식을 10ml씩 조심조심 먹였다.


온 우주의 신들을 불러 모아 다시 토하지 않게 해 주세요, 우리 아가 토하지 말자, 내 새끼 너무 예뻐, 다 잘 될 거야 계속 이야기해줬다. 그래서일까. 어쩜 아침부터 싱크대에 올라 그릉그릉 노래를 하고, 눈이 마주치면 스르륵 감으며 아기새처럼 한 번씩 냐앙~도 해주고 너무너무 예쁘다 내 새끼.


그러다가도 의자에서 곤두박질할 뻔한 순간이 떠올라 침통하지만 서둘러 병원에 전화해 오늘 검진 예약을 내일로 미뤘다. 얼마 만에 이렇게 기분 좋아하는데, 병원 스트레스를 주고 싶지 않다. 하루쯤 늦으면 어때 까짓꺼.


하지만 역시나 엄청 겁먹고 있다. 잊을 만하면 도지는 오른쪽 눈 염증이 재발해 그제부터 농혈이 나오고 있고, 무언가 먹고 나면 앞발을 모아 입에서 이물을 빼내려는 이상 행동이 보름 이상 지속적으로 심해지고 있다. 이제는 물을 먹어도 그런다. 혹시나 종양이라도 생긴 걸까, 겁나서 일이 손에 안 잡힌다.


지난주 새로 등장한, 요관을 압박하고 있는 낭종은 크기나 성질이 어떻게 변했을까. 마취가 필요한 CT나 탐색적 개복술은 할 수 없다. 결국 주치의는 또 같은 얘기를 하겠지. 아이 삶의 질이 최우선이다, 보조제나 약도 최소한으로 줄이자는 그렇고 그런...


두 달간 아이 입에 들어가는 모든 것들을 강제로 먹이면서 몸무게를 겨우겨우 유지하고 있다. 거기에 거의 열 종류에 육박하는 보조제와 약을 주면서 아이를 괴롭히고 있다. 너무 잦은 강제 급식이 아이에게 갈수록 큰 스트레스를 주는 것 같아 요즘은 텀을 좀 늘리고, 간섭이 없는 약들을 조합해 최대한 투약 횟수도 줄이고 있다. 내일 그래서 어떤 성적표를 받아 들까.


혈검 항목들을 찬찬히 공부하는 밤. 난수표 같은 엑셀표를 몇 번이고 다시 보는 밤. 병원에선 반드시 이성적이어야 한다, 감정을 추스르지 못해 상담을 망치는 일이 없도록 하자 그런 다짐을 하면서.


내 아가, 내가 널 어디까지 지켜주고 또 희망을 걸 수 있을까. 엄마는 매일 고민이 된다... 내 아기 겨우 열다섯 살 일 개월인데, 제발 힘을 내주렴 아가야. 엄마는 오늘도 독한 커피를 너무 많이 마셔서 깊은 잠을 자기는 틀린 것 같다. 그래도 널 도와줄 수 있다면 그것으로 족하니 마음껏 마음껏 나에게 요구하렴. 사랑해 예쁜이.


잠이 오지 않는 밤 엄마가.


2019.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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