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 Ⅰ.슬픔에 대하여 ⑪
나는 지금 커다란 동굴 앞에 서있다. 얼마나 깊고, 그 안엔 무엇이 도사리고 있는지 가늠할 수 없는 미지의 동굴. 막다른 길에 섰기에 이걸 지나야 만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 그것 밖에는 모른다. 이 안으로 들어가야 하는데... 무어라도 집어삼킬 것 같은 커다란 검은 심연 앞에 서성인다. 뒤돌아 왔던 길을 흘끗 보기도 한다. 어떻게 나아갈 방법이 보이지 않는다.
내 고양이의 뱃속엔 어떤 혼란이 도사리고 있는 것일까. 정밀 초음파로 보는 아이의 장기들엔 커다란 검은 구멍이 나 있다. 정확히는 구멍이 아니라 주머니 혹은 낭종. 크고 작은 검은 주머니들이 잔뜩 신장을 뒤덮고 있다. 무언가로 차있는 주머니가 겉면을 덮은 탓에 신장은 기능을 못하고 있다.
그리고 신장에서 시작된 낭종 중 아주 커진 주머니 하나는 요관을 누르고 있다. 간도 마찬가지다. 깊이와 내용물을 알 수 없는 검은 동굴들 천지. 나는 그 앞에 서 절망하고 또 절망했지만 그래도 여기까지는 그럭저럭 괜찮은 거였다.
복수가 차기 시작한 건 한 달 반쯤 됐다. 간문맥 고혈압으로 혈류가 막히면 서다. 다섯 주 동안 일주일에 한 번씩 천자로 복수를 뺐다. 주사기를 이용해 물을 제거한다.
그런데 이번 주부터 복수의 양상이 달라졌다. 이제 주머니들에서 농양이 흘러나와 복수로 차고 있다. 지난 한 달여 물에 가까운 복수는 어느 정도 임계치에 이르렀을 때 빼면 됐지만 이제 매일 천자를 해야 한다. 세균을 잔뜩 품고 있는 액체라 위험하다. 복강 내 농이 차기 시작하면 세균성 복막염으로 진행될 수 있고, 그렇게 되면 패혈증이 올 것이다. 그럼 다발성 장기 부전이 올 테고, 정말로 정말로 끝..이다.
어제 오전엔 400ml, 오늘은 300ml를 제거했다. 몸무게의 10%가 넘는 물이 배에서 찰랑인다. 복수를 제거하고 난 아이 몸무게는 2.56kg이다. 기가 막힌다. 부서질 듯 앙상한 내 고양이, 한때 4kg도 가뿐히 넘겼던 우리 돼지가. 그 작아진 몸도 배를 살짝 두드리면 통통하는 소리가 난다. 복수가 남아있는 것이다. 아가야 네 뱃속에 엄마가 들어라도 가고 싶구나. 어떻게 해줘야 할까 우리 아기.
천자로 매일 복수를 제거하는 것도 아이에게 큰 스트레스다. 이걸 아이가 얼마나 견뎌줄까, 막막하고 아득하다. 오늘도 다녀와서 많은 양의 토를 했다. 내용물은 초라했다. 겨우 먹은 조금의 음식들이 위액과 섞여 힘겹게 아이의 위장을 역류해 배변 패드 위로 쏟아졌다.
대안이 없는 것은 아니다. 매일 천자를 하는 대신 배액관을 달 수도 있다. 배를 뚫어 관을 넣고, 그 관을 통해 나쁜 물들을 수시로 뺄 수 있게 해주는 것이다. 오늘 주치의와의 대화.
나: 배액관 장착은 내키지 않네요. (마음의 소리: 선생님, 아이를 살려주세요)
주치의: 네 저도 같은 생각이에요. 배액관을 권한 다른 선생님과 상의했지만, 물이 아닌 농양이라 막힐 가능성이 높고, 그러면 다시 천자를 해야 하기에 실익도 없을 것 같습니다. 호스피스 케어 단계에서 삶의 질을 높이는 처치라 보기 어렵다는 판단이 들어요. 그래도 보호자님이 원하시면..
나: 배액관은 안될 것 같습니다... 그럼 항생제 주사는 매일 두 번씩 얼마나 맞아야 할까요.
주치의: 최소 한 달은 해야 합니다.
나:... 그러고 나면요?
주치의: 내성이 생겨 다시 다른 항생제를 쓰게 될 겁니다. 근본 원인을 제거하는 처치는 아니니까요. 사람이라면 신장을 떼어내고 이식해야 하는 상황인 거죠. 개복해 농양을 긁어내는 수술이라도 진행했으면 좋겠지만 아무래도 수술실에서 회복실로 나오기는... 어렵겠죠.
나: 하루에 두 번 주사, 두 차례 투약,, 이런 항생제 처치를 아이가 견딜 수 있을까요..?
주치의: 항생제 처치를 하지 않으면 결국 패혈증이 옵니다.
나: 그렇네요 그건.. 정말 안 되는 거네요...
주치의: 그렇죠. 그러면 정말... 지금 상황에서 통원을 하겠다는 보호자님 판단을 존중해요. 내과 과장님은 원칙대로 입원과 배액관을 시술하자는 의견이지만, 제 소견은 지금처럼 통원하시는 게 미미에게 나을 것 같습니다. 지금 수치상 완전히 무기력해야 하는데 아이 상태가 그렇지는 않잖아요. 고양이들, 특히 노묘들은 믿기 어려운 수치에도 집에서 그럭저럭 잘 지내다가 입원한 뒤 급격히 나빠지는 경우를 더러 봤어요.
나: 그쵸.. 저는 제 옆에 아이를 두고 있겠습니다. 그럼 이따 밤에 주사 맞으러 올게요.
주치의: 밤에 다른 선생님께서 주사 놔주실 수 있도록 준비해두고 갈게요.
나: 네.. 내일은 복수가 많이 차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주치의:.. 예쁜이 내일 봐.. ^^
나: ㅎㅎㅎ... (선생님, 아니 누구든 제발 우리 아이를 살려주세요..)
주치의가 이렇게 살갑게 얘기해준 것은 처음이라 눈물이 핑 돌고 나도 웃었다. 복수를 빼고, 항생제 주사를 맞고 깃털처럼 가뿐해진 아이를 안고 돌아오는 길. 현관문을 닫고 아이를 내려놓으니 정말 작다. 너무 말랐다. 먹인다고 먹였는데, 복수가 아이의 야윔을 가렸던 것이다. 오늘부터 더 잘 먹여야지 입을 깨문다.
이렇게라도 좋다 나는.. 네가 조금만 더 건강하다면 더 바랄 게 없겠지만 이렇게라도 괜찮아 엄마는. 네가 견뎌주는 한 너를 옆에 두는 시간을 나는 계속할 것이다. 기적이란 말도 입에 올리지 않을 것이다. 우리가 할 수 있는 모든 걸 다 하고, 그렇게 그렇게 너의 삶을 엄마가 완성해줄 거야 우리 아기. 조금만 더 힘내자.
2019.7.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