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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더불어YIU Mar 05. 2021

안녕! 뉴욕.

97년 어느날, 뉴욕을 만나다.

1. 97년 어느날, 뉴욕을 만나다.


내가 처음 뉴욕을 방문했던 것은 11살이었던 24년 전 여름이었다. 당시 뉴욕주 올버니(City of Albany)에는 둘째 이모, 이모부가 사셨다. 두 분은 꽤 오래전 미국으로 이민을 가셨는데 이모부는 미국 감리교회의 목사가 되어서 오랜 기간 이민자와 유학생들을 대상으로 목회를 하셨다.

 두 분의 초청을 받은 후 엄마와 외할머니의 손을 잡고 대한항공 비행기에 올랐던 그날이 아직도 내게는 생생하다. 요즘 항공기 내에는 각 좌석마다 스크린이 달려있어 장시간 비행에도 지루할 틈이 없다. 최신 영화들과 드라마, 각종 콘텐츠들은 여행의 설렘을 더해준다. 하지만 1997년의 대한항공은 내가 탑승했던 구간의 맨 앞 중앙 한 곳에만 큰 스크린이 있어 각종 비행 정보와 도착 예정시간을 일괄적으로 가르쳐 주었다. 시간이 되면 간혹 영화도 상영해 주었고, 앞 좌석에 덩치가 큰 사람이 스크린을 가리면 고개를 이리저리 갸우뚱거리며 자막을 읽어야 했다. 지금 생각하면 끔찍할 만큼 열악한 시스템이지만 당시에는 그것조차 나를 설레게 했다. 하늘을 나는 영화관이라니! 그러나 인생 첫 비행을 정말 즐겁게 해주었던 것은 따로 있었다. 그것은 내 좌석 옆 단자에 이어폰을 꼽으면 나오는 라디오 방송이었다. 공동 스크린과는 달리, 라디오는 내가 듣고 싶은 대로 주파수를 맞출 수 있었다. 기내에서 제공하는 헤드폰을 껴고 한국 가요가 나오는 곳에 주파수를 맞추었다. 당시 최고의 인기를 누리던 엄정화, 신승훈 등의 노래를 차례로 들으며 나름의 자유를 만끽했다. 그러나 재생목록이 한 사이클을 다 돌도록 내 11살 인생 최고의 곡은 끝내 나오지 않았다. 이해할 수 없었다. 한국 가요 채널에서 이 곡을 빠트린 것은 담당자의 분명한 실수였다. H.O.T.의 캔디. 지금 대한민국을 흔들고 있는 최고의 곡이 왜 빠졌을까? 아니, 어떻게 빼먹을 수 있을까? 하늘에서 캔디를 듣는 기분은 정말 예술일 텐데. 하여튼 실망스러운 마음을 감추지 못한 채 생각했다.


내가 무엇을 간절히 원하며 기다리면, 보통 그건 잘 안 이루어지더라.


2. 기분 좋은 '낯섦' 


JFK 공항에 도착하자 이모부 내외가 우리를 맞아주었다. 차를 타고 올버니까지 이동을 하는데 당시 내가 느꼈던 뉴욕에 대한 첫 감정은 '낯섦'이었다. 평소 내성적이고 혼자 공상하기를 좋아했던 나는 당시 찾아온 '낯섦'이라는 감정이 왠지 좋게 느껴졌다. 처음 보는 햇살, 트여진 시야, 영화 '나 홀로 집에'에서 볼 수 있었던 도시의 풍경... 이 모든 새로움으로부터 오는 약간의 두려움이 나에게 긍정적인 에너지를 주고 있음을 알 수 있었던 것이다. 그 에너지의 정체는 무엇일까? 사실 지금도 명확하게 정의하기 어렵다.

 오랜 시간 비행으로 지친 나는 자연스레 잠이 들었다. 그사이 자동차는 휴게소로 보이는 어느 곳에 멈춰 섰고, 옆자리에 있던 엄마는 점심을 먹으러 가자며 깨웠다. "안 갈래요 너무 졸려요..." 조금 더 차에서 자고 싶은 나의 간절한 부탁에 운전석에 있던 이모부는 다소 무뚝뚝한 말투로 엄마 대신 대답해 주었다. "안돼. 미국에서는 아이가 혼자 차에 있으면 경찰이 잡아간단다. 얼른 나오렴". 내가 차에 혼자 있으면 경찰이 잡아간다고? 미국은 참 독특한 곳이구나. 어쩔 수 없이 나는 일어나서 어른들과 휴게소로 들어갔다. 멍한 표정으로 이곳저곳을 둘러보는 사이 이모는 버거킹 햄버거와 콜라 한 잔을 나에게 건네 주었다. 햄버거를 한입 베어먹고 콜라를 마셨는데, 무슨 콜라 맛이 이렇지? 약간 시큼하면서 단맛이 나는 이 기분 나쁜 맛의 음료는 분명 내가 알던 콜라가 아니었다. 알고 보니 '체리콕'이라고 하는 코카콜라의 한 종류였다. 콜라에 체리 맛을 섞은 맛이었는데 아마도 이모는 내가 한국에서 못 먹어 봤으리라 생각하고 일부러 주문해 주신 것 같았다. 충분히 익숙하다고 생각했던 콜라마저도 이곳에서는 낯설다.

 드디어 도착한 이모네 집은 잔디 깔린 마당이 있고 농구대가 달린 전형적인 2층짜리 미국 집이었다. 서울 홍제동 연립 빌라에 살던 11살짜리 초등학생에게 미국 2층 집이라니. 마치 동화 속에 들어온 것 같이 흥미로웠다. 카펫이 깔린 거실을 지나 위층으로 올라가니 손님방이 마련되어 있었다. '이제 한 달 동안 이곳에 머물게 되는구나!' 침대에 누워 한국에서 가져온 장난감을 만지작거리다 보니 잠이 오기 시작했다. 왠지 기분 좋은 느낌, 아직 모든 것이 낯설고 불편하지만 한 가지만은 분명했다.


나 여기가 왠지 좋아!


11살 뉴욕과의 첫 만남. 올버니에 위치한 이모집에서 외할머니와 함께. 





3. 낯섦은 우리를 새로운 세계로 데려간다.


낯섦이라는 감정은 대부분 우리에게 부정적인 이미지를 느끼게 한다. 사람은 주로 익숙한 것에서 안정감을 발견하는데 그것은 편안함으로 연결되고, 그러한 이유로 대부분 익숙한 것을 선호하게 된다. 그러나 낯섦에 대해 가지고 있는 선입견을 잠시 뒤로한다면 이 감정은 우리에게 보답하듯 새로운 세계를 보여준다. 그전에는 결코 느껴보지 못한 기분, 도전의식, 바람, 향기 등은 낯섦만이 우리에게 줄 수 있는 선물이다. 따라서 때때로 안정감이 주는 편안함을 잠시 내려놓고 알 수 없는 세계로 나를 던질 때 우리는 두려움 뒤에 보이는 새로움을 경험할 수 있다. 뉴욕은 언제나 나에게 그러한 기분을 느끼게 하는 곳이다. 현대적인 감성과 전통적인 역사가 공존하는 도시, 이민자들의 도시이기에 이방인에 대한 편견이 덜한 곳, 감각적인 카페에서 맛 좋은 커피를 마음껏 누릴 수 있는 곳. 이 모든 것이 뉴욕이라는 낯선 곳에 나를 던졌을 때 만날 수 있는 새로움이었다. 성인이 된 이후 나는 기회가 될 때마다 뉴욕을 찾았다. 때로는 친구와, 가족들과 뉴욕을 만났고 그 도시는 때마다 매번 새로운 '낯섦'을 선물로 주었다. 그렇게 나에게 뉴욕은 점점 더 의미 있는 장소가 되어갔다.


3년전 겨울. 할렘에 있는 햄버거 가게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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