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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더불어YIU Mar 03. 2021

뉴욕에 가면 나는 내가 된다.

#뉴욕의 아침은 모닝 커피와 함께

1. 내가 '나'되는 장소


새벽 체질인 나는 놀랍게도 뉴욕에서만큼은 자연스레 아침형 인간이 된다. 어떤 관광지를 꼭 가야겠다는 마음도, 이국적인 풍경을 눈에 많이 담아야겠다는 강박도 없다. 하지만 뉴욕에서 맞는 아침은 나에게 많은 영감과 생각을 가져다주기에 그 시간을 놓칠 수는 없었다. 그래서인지, 이곳에서는 내 몸이 나를 어렵지 않게 깨운다. 나는 보통 뉴욕을 방문하면 아침 일찍 내가 묵는 게스트하우스에서 얼마 떨어져 있지 않은 스타벅스로 간다(맨하튼 미드타운에는 몇 블록마다 스타벅스가 있다). 거기서 책을 읽거나 떠오르는 생각을 메모하는 일로 대부분의 하루를 시작하는데, 이른 아침 ‘파이크 플레이스’ 원두로 내려진 스타벅의 브루드 커피는 3달러도 안되는 가격에 신선한 커피 맛을 느낄 수 있도록 해준다.

 내가 뉴욕에 방문할 때마다 이러한 시간을 갖는 이유는, 아침의 그 짧은 시간이 내가 가장 나다워지는 순간이기 때문이다. 이른 아침 뉴욕의 작은 스타벅스 안에서 '나'라는 존재는 아무에게도 관심을 끌지 않는, 그저 동양에서 온 어떤 여행객일 뿐이고 그것은 나를 가장 나답게 만드는 최적의 장소이자 상황이었다.


브루클린에 위치한 어느 스타벅스

한국에서는 내게 부여된 많은 역할이 있고 사람들은 각각 이해관계를 기반으로 나를 규정한다. 운영하던 연남동 카페의 아르바이트생 및 직원들은 나를 ‘사장’으로, 성경을 공부하기 위해 다니던 대학원 동료들은 ‘전도사’로, 아르바이트 삼아 파트타임 강사로 일하던 연기학원에서는 나를 ‘선생’으로 규정한다. 그리고 나는 그에 걸맞은 인격과 능력을 갖추어야 하며 말과 행동 또한 사람들의 기대에 맞추어 해야 할 의무를 갖는다. 때로는 이와 같이 나에게 규정된 무언가가 소속감을 주고 안정감을 주지만, 이로 인해 진짜 내가 누구인지 나 자신조차도 헷갈리게 되는 경우도 있다. 왜냐하면 역할 뒤에 감추어진 아무도 모르는 내 진짜 모습이 있기 때문이다.


새벽 1시 모두가 잠든 시각에 홀로 깨어 방에 있는 나, 그때의 나는 사람들이 아는 나와는 사뭇 다르다. 


나는 사실 사업가보다 아티스트로써 살아가는 것이 행복하다. ‘사장님’으로 불리는 것도 불편하고 매번 쌓이는 고지서를 처리하는 일도 싫다. 생각하고, 고민하고, 사색한 그 무언가를 음악 혹은 글로 창작해내는 일이 가장 나를 기쁘게 한다. 그러나 가게로 출근하면 사업이 체질인 책임감 있는 사장인‘척’ 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나에게 월급을 받는 이들이 자신의 직장에서 안정감을 느끼기 어려울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나는 연기를 가르치는 일보다는 성경을 가르치는 일에 더 보람을 느낀다. 학생들에게 그것이 더 가치 있는 배움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학원에서는 누구보다 연기에 열정이 있는 선생인‘척’ 해야 한다. 그래야 학부모님들과 학생들에게 믿음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방금 이야기한 ‘척’이 내가 상대방을 속이고 있다는 의미는 아니다. 왜냐하면 사람들에게 드러나는 나도 분명히 진실된 나의 일부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문제는 치열한 일상을 살다 보면 나 스스로가 사람들에게 규정된 ‘나’를 전부로 알고 속아 넘어가기 쉽다는 것이다. 새벽 1시의 ‘나’를 모르고 살아가는 삶, 그것은 분명 불행하다. 그렇게 살아가다 보면 직장에서 일이 어그러지거나 좋은 평가를 받지 못하는 상황에 자존감이 무너지기도 하고, 스스로가 무가치하게 느껴진다. 심한 경우 우울감까지 찾아온다. 이것이 새벽 1시의 '나'를 모른 채 역할로 규정된 ‘나’에게만 종속되어 살아가는 사람이 겪는 부작용이며, 모두 실제로 내가 겪은 이야기이다.


2. 커피 한잔과 만나는 진짜 '나'


그러나 뉴욕 스타벅의 아침은 나를 규정된 ‘나’로부터 철저하게 분리시킨다. 거기서는 새벽 1시의 ‘나’를 햇살이 가득한 아침에 만날 수 있다. 주문을 받고 커피를 내리는 스타벅스 직원에게 나의 역할과 사회적 위치는 전혀 중요하지 않다. 나를 규정하려고 하지 않는다. 그에게 나는 그저 동양에서 온, 아마 며칠 혹은 몇 주 있으면 이곳을 떠날 이방인에 불과하다. 이런 생각을 하며, 그 상황을 기분 좋게 누리고 있는 나 스스로를 바라본다. 그 순간 내가 그동안 얼마나 타인의 시선에 영향을 받아 살아왔는지를 알 수 있다. 우리는 생각보다 더, 아니 어쩌면 지독히도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며 살아가는지도 모르겠다. 사람들에게 규정된 내가 나의 전부인 것처럼 말이다.


새벽 1시의 ‘나’를 찾는 시간은 우리에게 반드시 있어야 한다. 


그 시간은 우리의 삶을 더욱 풍성하게 하며 마음을 풍요롭게 만들어주기 때문이다. 파이크 플레이스 브루드 커피는 진한 맛을 내도록 오래 볶은 원두이다. 깊고 구수한 맛이 일품인 커피인데 그 아침 스타벅스에서는 달콤하게 느껴진다. 아마도 뉴욕이라는 낯선 곳에서 온전히 혼자가 되어 자유롭게 진짜 ‘나’ 자신을 찾아가는 기쁨이 단맛이기 때문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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