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08. 07. 수요일
날씨 : 하루 종일 구름이 많은 편이었으나, 맑다고 해도 무방할 정도로 밝고 화창함. 밤에는 더욱 맑아짐.
아침에 일어나 침대에 앉아 오전에 그냥 쉴지 어디를 더 가볼지를 잠시 생각해 보았다. 그런데 곰곰이 생각해 보니 지금까지 교토에만 도합 2주나 있었으면서 아직 교토 중심부의 “니조 성”에 가보지 않았다는 것을 깨달았다. 니조 성이 멀지 않은 곳에 있다 보니, 매번 다른 데 갈 때 들르면 되지라는 생각으로 미뤄 지금까지 안 가고 있었다. 결국 이번 여행 대망의 마지막 관광지는 니조 성으로 하기로 하고 간단히 채비하여 숙소를 나왔다. 마침 오늘이 내 객실 청소 날이기도 해서 자리도 비워줄 겸, 빠르게 나와서 무더위가 극심해지는 시간대인 오후 1시가 되기 전에 돌아오기로 하였다.
니조 성도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지정된 교토의 주요 문화재로 에도 시대에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머물던 궁이다. 따라서 일본의 천년 수도였던 교토를 상징하는 요소 중 하나이기 때문에 그 역사적 가치가 상당하다고 볼 수 있다. 숙소에서 시조 거리까지 걸어간 뒤 버스를 타고 바로 니조 성까지 갔다. 입장료는 관광지 치고 꽤나 비싼 1,300엔이었지만 니조 성의 역사적 가치나 성의 규모 등을 고려했을 때 크게 의아한 정도는 아니었다. 조금 들어가니 니조 성의 상징과도 같은 “츠키지 문”이 보였고, 문을 지나니 바로 쇼군이 거주했던 공간인 “니노마루 어전”이 보였다. 니노마루 어전 내부도 둘러볼 수 있었는데 겉보기에 비해 내부 규모가 지금까지 들어가 보았던 일본 전통 건축물 중에서 가장 컸다. 내부는 수많은 방과 복도에 의해 복잡했지만 층고가 높고 복도 폭이 넓은 편이며 니노마루 정원을 끼고 창이 나 있어 답답한 느낌은 들지 않았다. 한국의 궁궐에 비하여 화려함은 덜 했으며 비교적 절제되고 심플한 조형 요소와 채색 요소들이 돋보였다. 한국과 일본, 그리고 중국은 얼핏 보면 비슷한 문화권에 있으면서도 왕의 권위에 대한 각자의 해석이 다 상이하다는 점이 흥미로운 것 같다.
니노마루 어전을 나와 관광 동선을 따라 천수각 터와 “청류원”을 둘러보았다. 니조 성도 나고야 성이나 오사카 성처럼 천수각이 있었지만 1750년에 번개를 맞아 소실되어 아직 복구하지 못한 채 터만 남겨 놓았다고 한다. 청류원은 니조 성의 역사와 크게 관련이 없이 1965년에 조성된 정원이다. 규모가 꽤 되었고 깔끔해 보였지만 이미 은각사와 산젠인의 정원 보고 온 상태라 일본 정원을 보는 눈이 조금 높아져서 그런지 큰 감흥이 올 정도는 아니었다.
니조 성 관람을 마치고 다시 버스를 타고 시조 역으로 갔다. 점심 식사를 하고 숙소로 돌아갈 생각으로 주변 식당을 찾다가 웬디스 버거가 보여서 들어갔다. 또 햄버거인가 싶긴 했지만, 웬디스 버거는 예전에 한국에서 철수하여 지금은 국내에서 볼 수 없는 브랜드이기 때문에 한번 먹어보기로 하였다. 맛은 훌륭한 편이었다. 수제버거 느낌이 살짝 가미된 햄버거와 감자튀김, 칠리 스프가 잘 어울렸다. 일본에 웬디스 버거가 있는 줄 알았으면 지금까지 맥도날드만 가지 말고 다른 햄버거 브랜드도 한번 찾아볼걸 그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숙소에 돌아와 세탁이 끝난 빨래를 개어 정리하고 쉬다가 4시 반쯤 다시 숙소를 나왔다. 본격적으로 부모님께 드릴 선물과 친구들이 부탁한 기념품들을 사러 시조 거리로 향했다. 우선 저번에 방문했던 포켓몬센터로 다시 가서 한 번 더 매장을 둘러보았다. 포켓몬을 좋아하는 후배들에게 기념품도 몇 개씩 더 사줄 겸 나도 마음에 드는 물건이 있나 확인해 보았다. 오랜 고민 끝에 후배들 기념품과 내가 쓸 컵을 하나 사서 나왔다.
포켓몬 센터를 나와 산리오와 스누피 팝업스토어에 들러 다른 사람들에게 부탁받은 기념품을 사고 나오니 어느새 7시가 다 되어 있었다. 배가 고파져 저녁 식사를 하고 나머지 쇼핑을 계속하기로 하였다. 일정 상 내일 점심은 간사이 공항에서 먹게 될 듯해서, 어쩌면 교토에서 먹는 마지막 식사가 될 수도 있기 때문에 신중하게 고민을 했으나 결과는 마츠야였다. 아쉬워서 아무리 다시 생각해 봐도 딱히 가보고 싶은 식당이 없었다. 대신 마츠야에 가서 한 번도 주문해보지 않은 연어구이 정식을 시켰다. 생각보다 구성이 좋았다. 교토에서의 마지막 끼니가 마츠야라니. 어이가 없어서 웃기면서도 어쩌면 단기 여행이었다면 하지 않았을 것 같은 선택이기에 역설적으로 가장 장기여행다운 마무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저녁을 먹고 돈키호테로 가서 계획한 나머지 물품들을 구매했다. 돈키호테가 구경하는 재미도 있고 값도 싼 편이라 좋긴 한데, 물건 수가 너무 많고 뭐가 어디 있는지 구분이 명확하진 않다 보니 정신이 없다. 부탁받은 물건과 부모님 드릴 선물만 사고 빠르게 빠져나왔다. 돈키호테까지 나오니 어느새 양손에 짐이 한가득이라 일단 바로 숙소에 가서 물건들을 놓았다. 그냥 씻고 쉴까 하다가 마지막 밤이라 그런지 무언가 허전한 마음이 들어서 최소한의 짐만 챙기고 다시 카모강으로 나왔다. <베텔기우스>를 들으며 니조 거리까지 걷는데 마음이 너무 무거웠다. 여행을 하는 동안의 아쉬움이나 후회는 없었지만 내일이면 다시 일상으로 돌아간다는 것이 아쉬웠다. 밤이 깊어질수록 날씨는 맑아져 하늘에는 별이 꽤 보였다. 이번 여행 내내 날씨가 좋았지만, 카모강의 별이 오늘처럼 많이 보인 건 처음인 것 같다. 아름다운 카모강의 풍경을 당분간 못 본다는 사실도 아쉬움에 무게를 더하였다. 정말 많이 그리워질 풍경을 마지막으로 눈에 저장해 두기 위해 눌러 담듯 둘러보았다.
이제 이 기행문도 마무리를 지을 차례다. 우선 여행을 시작한 이후로 단 하루의 예외 없이 꾸준하게 기행문을 썼다는 자체에 스스로에게 박수를 보낸다. 이번 여행은 한마디로 완벽했다. 나중에 누군가가 내게 이번 여행에 대해 물었을 때 완벽한 여행이었다고 답하면 추억 보정 때문에 그렇게 느끼는 것이라 할까 봐 여행이 완전히 끝나기 전 기행문에 미리 명시해 놓는 것이다. 일단 여행 내내 날씨가 너무 좋았다는 점부터 여행 운이 좋았던 것이다. 여행지에서 만난 거의 모든 사람들은 친절했고 내게 많은 도움을 주었으며, 그중 몇몇 사람들과는 친해져서 개인적인 담소를 나눌 정도가 된 것도 정말 즐거웠다. 친구가 놀러 왔을 때 교토를 마치 우리 동네 소개해 주듯 함께 다닌 것과, 여행지를 옮겨 다른 지역을 여행하다가 다시 교토로 돌아왔을 때 마치 집처럼 느껴지는 것도 정말 신기한 경험이었다. 첫날부터 오늘까지 사소한 여러 시행착오들도 있었으나 심각한 일은 아니었기에 에피소드로 넘길 수 있는 상황들이었고 그 시행착오들 또한 내게 많은 추억이 되었다. 그리고 재미있는 점이 한 가지 더 있다. 여행을 하며 일본어를 공부하기 위해 나름 교재도 들고 다녔으나, 일본어 회화 실력이 여행 필수 회화를 구사하는 수준까지 도달하게 되자 일본어 실력 향상 속도보다 눈치의 향상 속도가 더 빨라 일본어 수준이 더 이상 크게 향상되진 못하였다. 대신 눈치가 빨라져 명확한 일본어 대화 없이도 상대방의 표정이나 손짓만 봐도 대충 무슨 말을 하는지 유추하는 능력이 생겼다. 이것도 능력이라면 능력이니 크게 아쉽진 않다.
이번 여행은 아마 평생 기억에 남을 여행이 될 것 같다. 난 앞으로 힘든 일이 있을 때마다, 일상에 지칠 때마다 이번 여행을 회상하며 위안을 얻지 않을까 싶다. 교토의 아름다운 풍경과 일상을 벗어난 무한한 자유로움, 그리고 친절하고 재밌는 사람들이 모여 오랫동안 잊히지 않을 좋을 추억이 되었다. 교토는 매번 여행할 때마다 다음을 기약하게 된다. 작별이 아닌 재회를 기약하기에 더 이상 여행의 마지막에 대한 아쉬움을 말하고 싶진 않다. 그래서 이 기행문의 마지막은 긍정으로 끝내며 펜을 놓는 것이 좋을 듯하다. 행복했던 나의 교토! 다음에 또 보길!
한달살이 Chapter 6. 교토 끝
남은 경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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