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08. 06. 화요일
날씨 : 흐린 편이었으나 몹시 무더움. 더위에 습기까지 합쳐진 느낌.
어젯밤 구글 지도를 열심히 뒤져 본 끝에 결정한 오늘의 여행지는 교토 근처의 “우지”였다. 기차를 타면 거리도 멀지 않은 편이고, 어제 오하라 마을을 방문한 김에 이어서 교토 근교를 둘러보자는 생각이 들었다. 오하라 마을이 교토시 내에 있던 마을이라면 우지는 교토시 밖에 이웃해 있는 “우지시”로써 교토부 내에서 교토시 다음으로 두 번째로 인구가 많은 도시이다. 우지는 녹차와 말차가 유명하고, 유네스코 세계유산인 “뵤도인”과 “우지가미 신사”가 있어서 구미가 당겼다. 오늘도 어제처럼 빠르게 출발하여 오후쯤 숙소로 돌아오는 것을 목표로 하였다.
숙소 근처 지하철역에서 게이한선을 타고 도후쿠지 역으로 가서 나라선으로 갈아타 우지역에 도착했다. 대략 40~50분 정도가 걸려서 도착하니 어느새 11시였다. 오늘따라 날이 더운 건지 우지가 더운 건지 모르겠지만 기차에서 내리니 정말 역대급으로 무덥고 습했다. 거의 나라에서 느꼈던 더위에 맞먹는 정도였다. 해가 마치 나를 정조준해서 내 주변을 불태우는 듯했고 체감 습도 또한 평소보다 너무 높아, 정말 일본에서 경험해 본 최악의 날씨 중 하나였다. 너무 덥고 배가 고파서 바로 점심 식사를 하기로 하였다. 우지에서 가보고 싶었던 식당 두 군데를 찾아갔는데 모두 휴업이라 아쉬운 대로 근처에 보이는 말차 라멘 식당에 들어갔다. 말차 라멘과 말차 교자가 시그니처 메뉴라 하여 주문해 보았는데, 솔직히 일반 라멘과 큰 차이를 느끼진 못했다. 100엔을 추가해서 말차 가루까지 추가했는데 큰 차이는 없었다. 맛은 그럭저럭 괜찮았다.
점심 식사를 마치고 곧장 뵤도인으로 향했다. 뵤도인은 헤이안 시대인 1052년에 지어졌으며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지정된 불교 사원이다. 일본 10엔 동전에도 그려져 있을 정도로 그 인지도는 매우 높다. 뵤도인은 호수 가운데 있는 “봉황당”을 한 바퀴 돌면서 감상할 수 있었고 그 옆에 “뵤도인 호쇼칸 박물관”도 있어서 함께 관람할 수 있었다. 봉황당은 좌우 대칭의 형태였으며 양 옆으로 길게 뻗어 있었다. 봉황당이 웅장하고 아름답긴 했지만, 작년에 방문했던 금각사처럼 건물 하나만 구경하는 게 끝인 느낌이 들어 조금 아쉬웠다. 뵤도인 호쇼칸 박물관에는 나라 국립 박물관처럼 여러 불상들과 불교 관련 전시품들이 있었는데, 나는 이곳의 전시보다도 시원한 것이 너무 마음에 들었다. 봉황당 호수 주위에 그늘도 많지 않아 너무 더웠는데 이 박물관에 들어가자마자 사막에서 오아시스를 찾은 느낌이었다. 이 박물관은 불상과 불교 전시물들의 소개 역할 외에도 여름 열사병 예방에 큰 기여를 했을 것이라 추측해 본다.
뵤도인 관람을 마치고 근처에 있는 우지 공원으로 향했다. 우지 공원은 한국의 노들섬이나 선유도공원처럼 우지강 가운데 있는 작은 섬의 형태였다. 물론 우지강의 규모는 카모강보다 조금 더 큰 수준이기 때문에 우지 공원도 웬만한 건물 하나 넓이 정도로 매우 작았다. 우지 공원의 형태는 매우 좁고 길쭉한 형태였는데, 내 생각에 우지 공원은 쉬거나 노는 공간을 제공하는, 진짜 공원의 역할이라기 보단 공원에 연결된 두 개의 다리를 건널 때 잠깐 앉아 경치를 보는 용도가 아닐까 싶다.
우지 공원을 건너 우지의 또 다른 유네스코 세계유산인 우지가미 신사로 이동했다. 우지가미 신사는 뵤도인과 비슷한 시기인 1060년경에 세워져, 일본에서 가장 오래된 신사라는 타이틀을 가지고 있다. 이 신사는 주택가 사이에 위치해 있었는데 유네스코 세계유산이라는 말이 무색하게 상당히 소박한 모습을 하고 있었다. 기요미즈데라나 금각사와 은각사, 뵤도인, 호류지 등의 다른 세계유산들은 엄청나게 많은 관광객들과 관리직원, 기념품 가게, 주변 상권 등으로 항상 시끌벅적한데 우지가미 신사는 마치 동네 주민만 가는 평범한 작은 신사처럼 고요하고 조용했다. 규모도 매우 작았으며 입장료도 없었고 관광객도 많지 않았다. 그런데 역설적으로 오히려 이런 소박한 모습이 일본 최초의 신사라는 이름에 더 잘 어울리는 듯했다. 신사라는 제대로 된 개념이 없던 시절 지어진 최초의 신사가 교토의 후시미 이나리 신사나 야사카 신사처럼 크고 화려한 것도 어불성설이지 않은가? 소박하고 평범했기에 더욱 많은 생각이 들게 하는 신사였다.
시간이 지날수록 더욱 무더워지고 습해져 우지가미 신사를 다 둘러본 뒤 빠르게 우지역으로 돌아왔다. 원래는 어제처럼 근처 카페에서 더위를 조금 식히고 돌아올 생각이었는데 우지에서 유명한 카페가 만석이어서 그냥 기차를 타고 숙소로 돌아왔다. 이 날씨에 카페 줄 서고 있으면 진짜 쓰러질 것 같았다. 숙소에서 더위를 식히며 쉬다가 산책도 하고 저녁 식사도 할 겸 밖으로 나왔다. 메뉴를 무엇으로 할까 고민하다가 예전에 알아둔 한식당에 가보기로 하였다. 한식이 그리웠다기보다는 그 한식당 맛이 궁금해서 귀국하기 전에 한번 먹어보고 싶었다. 그런데 가보니 어느새 카페로 바뀌어 있었다. 분명 가장 최근 리뷰가 2달 전인데 언제 바뀌었는지 모르겠다. 아쉬운 마음을 뒤로하고 무엇을 먹을까 고민하다가 그냥 또 마츠야에 갔다. 장기 여행을 하면, 처음에만 열심히 맛집을 찾아다니다가 뒤로 갈수록 안 가본 곳도 없어지고 돈도 점점 떨어져서 그냥 마츠야, 나카우 같은 프랜차이즈나 맥도날드를 가게 되는 것 같다. 이게 진정한 현지화가 아닌가 싶다.
저녁 식사를 하고 어제 갔었던 타치노미에 다시 갔다. 어제 친해진 점원 두 명이 오늘도 출근한다고 해서 다시 인사도 할 겸 방문했다. 어차피 더워서 생맥주 마실 거 친해진 점원 있는 곳으로 가는 것이 더 재밌고 즐겁다. 두 분이 영어를 할 줄 알아서 대화하기가 훨씬 편했던 것 같다. 또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두 분 중 한 분이 올해 겨울쯤 한국에 여행을 오는데 그때 서울을 안내해 줄 수 있냐고 하시며 내 연락처를 물어보셔서, 겸사겸사 두 분과 인스타그램 팔로우를 교환하였다. 여행을 시작한 이후로 현지인들과 연락처를 교환한 것이 2주 전 나고야 여행을 합쳐 4명째다. 이번 여행을 처음 계획하였을 때 여행 중 한 명의 현지인만이라도 조금 친해져서 연락처를 교환하면 성공이라고 생각했었는데, 4명씩이나 연락처를 교환했으니 정말 대성공이다. 이를 계기로 일본인 친구나 지인도 더 많이 생겼으면 좋겠다.
내일은 귀국 전날이라 오후부터는 시조 거리 인근을 다니며 사 갈만한 기념품들을 물색할 계획이다. 오전에는 그냥 쉴지 아니면 마지막으로 다른 관광지를 방문할지는 좀 생각을 해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