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좋은 걸 찾느라 지금을 놓치고 있다면

먼 곳을 보느라 놓친 가까운 위로

by 김정교
image.png 연꽃 봉우리 위의 잠자리와 그 옆의 마른 연밥을 함께 담은 연잎 배경 자연 클로즈업 사진


새벽 5시 반, 이슬 젖은 나무 데크 위


새벽 5시 30분. 오늘도 '완벽한 한 컷'을 찾으러 연밭으로 나갔습니다. 그런데 그날, 제가 찾은 건 사진이 아니었습니다. 셔터를 누르기 전부터 머릿속이 시끄러웠거든요. "이게 최선인가?", "더 그럴듯한 장면이 어딘가 있지 않을까?" 하는 강박이 제 그림자처럼 따라다녔습니다.


눈앞의 풍경을 즐기기보다, 아직 오지 않은 '완벽한 한 컷'을 찾느라 눈동자만 분주하게 굴리고 있었죠. 축축한 나무 데크 위를 서성이다가 문득 발걸음을 멈췄습니다.


꽃잎을 꾹 다문 그 고집스러움


연잎들 사이로 봉오리 하나가 삐죽 올라와 있었습니다. 화려하게 만개한 꽃도 아니고, 그렇다고 독특한 모양도 아니었습니다. 입술을 꾹 다문 채 꼿꼿하게 서 있는 그저 평범한 봉오리였죠.


그런데 그 끝에 아주 작은 잠자리 한 마리가 앉아 있더군요. 바람이 불면 금방이라도 날아갈 것 같은데, 녀석은 묘하게 편안해 보였습니다. 아직 꽃이 피지 않았는데, 어떤 색일지 아무도 모르는데, 그 미완성의 자리가 녀석에겐 가장 편안한 쉼터였나 봅니다.


뷰파인더로 그 모습을 들여다보는데, 왠지 그 작은 날갯짓이 제게 말을 거는 것 같았습니다.


"지금 여기, 이 상태로도 괜찮아. 굳이 활짝 피지 않아도 쉴 곳은 돼."


저만 그런가요? 늘 '다음 단계'로 넘어가야만 안심이 되고, 지금의 내 모습은 어딘가 부족해 보여서 자꾸만 스스로를 다그치게 되는 마음 말이에요.


사라지는 것과 시작하는 것의 공존


봉오리 바로 옆에는 갈색으로 바싹 마른 연밥 하나가 고개를 푹 숙이고 있었습니다. 생명의 시작과 끝이 한 프레임 안에 나란히 놓여 있는 풍경. 그런데 그게 참 자연스러워 보이더군요.


새로 피어나는 봉오리도, 이미 시들어가는 연밥도 각자의 시간 속에서 자기 몫을 다하고 있을 뿐이었습니다. 누가 더 낫다고 말할 수 없는, 그저 '거기 있는' 존재들.


카메라를 고쳐 잡았습니다. 이번엔 이리저리 자리를 옮기지 않았습니다. 더 멋진 각도를 찾으려는 욕심을 내려놓고, 그 자리에서 딱 한 번 셔터를 눌렀습니다.


잠자리가 날개를 파르르 떨 때마다 봉오리도 미세하게 흔들렸는데, 그 작은 떨림이 사진의 전부가 되어도 좋겠다 싶었습니다.


먼 곳을 보느라 놓친 가까운 위로


사진을 확인해보니 화려하진 않지만, 마음이 놓이는 장면이 담겨 있었습니다. 저는 왜 항상 저 먼 곳만 두리번거렸을까요. 더 자극적이고 극적인 순간을 찾느라, 정작 제 발밑에서 조용히 숨 쉬고 있는 이 소박한 위로들을 놓치고 살았던 것 같습니다.


연밭을 나오며 다시 한번 뒤를 돌아봤습니다. 잠자리는 이미 날아가고 없었지만, 봉오리는 여전히 그 자리에 묵묵히 서 있더군요. 언젠가 꽃은 피겠죠. 하지만 꼭 만개해야만 아름다운 건 아닌가 봅니다.


풀숲을 헤집고 다녔더니 운동화 콧등이 이슬에 젖어 축축하네요. 집에 들어가면 따뜻한 커피 한 잔 내려 마시고, 젖은 신발부터 말려야겠습니다. 오늘 하루는 좀 천천히 가도 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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