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대해서가 아니라,
버텨냈기에 아름다운 것들

흔들리면서도 오늘을 살아내는 당신에게

by 김정교
f-005-morning-fog-pavilion-faith-reflection.jpg 물안개가 피어오르는 강가, 절벽 위에서 오랜 세월을 버텨낸 고즈넉한 정자와 아침 햇살이 스며드는 장엄한 산의 풍경을 카메라에 담고 있는 사람의 실루엣

패딩 주머니에 손을 찔러 넣고


아침 공기가 뺨을 스치는데 아직 제법 차갑더라고요. 패딩 주머니에 손을 깊숙이 찔러 넣고 강가에 한참을 서 있었습니다. 물가로 내려가니 바닥에 깔린 자갈들이 훤히 보일 만큼 강물이 투명했습니다. 마치 누군가 세상의 소음을 '음소거' 버튼으로 눌러버린 듯한 고요함이었죠.


해는 산 너머에서 올 듯 말 듯 밀당을 하고, 물안개는 자꾸만 흩어졌다 모였다를 반복하고 있었습니다. 산허리를 스치며 쉼 없이 흘러가는 그 안개를 보는데, 묘하게 사람 마음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안개처럼 일렁이는 속마음


산은 묵묵히 그 자리에 있는데, 안개는 잠시도 가만히 있질 못하잖아요. 요즘 제 마음 상태가 딱 그렇습니다. 남들 앞에서는 "나 괜찮아", "별일 없어" 하고 웃어넘기지만, 속으로는 늘 정체 모를 불안이 안개처럼 흐르고 일렁이고 있었거든요.


여러분은 혹시 겉모습과 속마음의 온도가 달라서 혼자 끙끙 앓으신 적 없으신가요? 아무렇지 않은 척 가면을 쓰고 하루를 버티는 게 숙제처럼 느껴지는 날들 말이에요.


높은 곳이 아니라, 견뎌낸 곳


제 눈길을 사로잡은 건 절벽 끝 바위 위에 덩그러니 놓인 작은 정자 하나였습니다. 저 자리에 서서 얼마나 많은 바람을 맞았을까요. 비에 젖고, 햇볕에 달궈지고, 강바람에 깎이면서도 묵묵히 버텨온 시간들.


그 모습을 보는데 '위대하다'는 말보다 '애틋하다'는 말이 먼저 떠올랐습니다. 저 정자가 아름다운 건 높은 곳에 있어서가 아니었습니다. 온갖 상처와 흔적을 온몸으로 받아 안고도, 끝내 중심을 잃지 않고 그 자리를 지켜냈기 때문이겠죠.


문득 저 스스로에게도 조금 관대해지기로 했습니다. 위대함은 대단한 성취나 성공에서 오는 게 아니라, 흔들리면서도 오늘 하루를 묵묵히 버텨내는 그 소박한 뚝심에서 나오는 거니까요. 솔직히 고백하자면, 저도 요즘은 그냥 하루하루를 '버티는 중'이거든요.


서로를 비춰주는 다정한 풍경


가만히 보니 이 풍경, 참 조화롭습니다. 물가에 드러난 둥근 돌들, 고요한 강물, 오래된 소나무, 그리고 산을 타고 내려오는 안개까지. 누구 하나 튀려고 하지 않고 서로의 곁을 조용히 내어주고 있었습니다.


사람 관계도 이런 것 같아요. 혼자서 빛나는 사람은 없습니다. 강물이 산 그림자를 안아주듯, 좋은 사람은 곁에 있는 사람을 더 돋보이게 비춰주니까요. 혼자라는 게 서글픈 게 아니라, 함께일 때 내 안의 빛이 더 선명해진다는 사실을 강가에서 배웁니다.


안개를 뚫고 내려온 위로


한참을 서성이다 셔터를 누르기 직전, 드디어 기다리던 순간이 왔습니다. 산허리의 안개를 뚫고 아침 햇살이 쏟아져 내리더군요. 그 빛이 닿자 차갑던 바위와 나무들이 순식간에 따스한 색으로 옷을 갈아입었습니다. 빛이 풍경을 바꾼 게 아니라, 풍경이 빛을 받아들여 스스로 다시 태어나는 순간이었죠.


마음이 팍팍하고 피곤한 날, 누군가가 건넨 따뜻한 말 한마디가 제 하루를 완전히 바꿔놓을 때가 있습니다. 어두웠던 마음의 방에 불을 탁 켜주는 그런 순간들 말이에요.


오늘 찍은 사진은, 훗날 제가 또다시 흔들릴 때 꺼내 볼 비상약 같은 겁니다. 사진 속 풍경이 제게 이렇게 속삭이는 것 같아서요.


"오늘도 참 잘 버텼다. 흔들려도 괜찮고, 앞이 안개처럼 흐려도 괜찮아. 기다리면 빛은 반드시 다시 돌아오니까."


찬바람을 너무 오래 쐬었나 봅니다. 오늘따라 유난히 따뜻한 믹스커피가 당기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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