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들리면서도 오늘을 살아내는 당신에게
아침 공기가 뺨을 스치는데 아직 제법 차갑더라고요. 패딩 주머니에 손을 깊숙이 찔러 넣고 강가에 한참을 서 있었습니다. 물가로 내려가니 바닥에 깔린 자갈들이 훤히 보일 만큼 강물이 투명했습니다. 마치 누군가 세상의 소음을 '음소거' 버튼으로 눌러버린 듯한 고요함이었죠.
해는 산 너머에서 올 듯 말 듯 밀당을 하고, 물안개는 자꾸만 흩어졌다 모였다를 반복하고 있었습니다. 산허리를 스치며 쉼 없이 흘러가는 그 안개를 보는데, 묘하게 사람 마음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산은 묵묵히 그 자리에 있는데, 안개는 잠시도 가만히 있질 못하잖아요. 요즘 제 마음 상태가 딱 그렇습니다. 남들 앞에서는 "나 괜찮아", "별일 없어" 하고 웃어넘기지만, 속으로는 늘 정체 모를 불안이 안개처럼 흐르고 일렁이고 있었거든요.
여러분은 혹시 겉모습과 속마음의 온도가 달라서 혼자 끙끙 앓으신 적 없으신가요? 아무렇지 않은 척 가면을 쓰고 하루를 버티는 게 숙제처럼 느껴지는 날들 말이에요.
제 눈길을 사로잡은 건 절벽 끝 바위 위에 덩그러니 놓인 작은 정자 하나였습니다. 저 자리에 서서 얼마나 많은 바람을 맞았을까요. 비에 젖고, 햇볕에 달궈지고, 강바람에 깎이면서도 묵묵히 버텨온 시간들.
그 모습을 보는데 '위대하다'는 말보다 '애틋하다'는 말이 먼저 떠올랐습니다. 저 정자가 아름다운 건 높은 곳에 있어서가 아니었습니다. 온갖 상처와 흔적을 온몸으로 받아 안고도, 끝내 중심을 잃지 않고 그 자리를 지켜냈기 때문이겠죠.
문득 저 스스로에게도 조금 관대해지기로 했습니다. 위대함은 대단한 성취나 성공에서 오는 게 아니라, 흔들리면서도 오늘 하루를 묵묵히 버텨내는 그 소박한 뚝심에서 나오는 거니까요. 솔직히 고백하자면, 저도 요즘은 그냥 하루하루를 '버티는 중'이거든요.
가만히 보니 이 풍경, 참 조화롭습니다. 물가에 드러난 둥근 돌들, 고요한 강물, 오래된 소나무, 그리고 산을 타고 내려오는 안개까지. 누구 하나 튀려고 하지 않고 서로의 곁을 조용히 내어주고 있었습니다.
사람 관계도 이런 것 같아요. 혼자서 빛나는 사람은 없습니다. 강물이 산 그림자를 안아주듯, 좋은 사람은 곁에 있는 사람을 더 돋보이게 비춰주니까요. 혼자라는 게 서글픈 게 아니라, 함께일 때 내 안의 빛이 더 선명해진다는 사실을 강가에서 배웁니다.
한참을 서성이다 셔터를 누르기 직전, 드디어 기다리던 순간이 왔습니다. 산허리의 안개를 뚫고 아침 햇살이 쏟아져 내리더군요. 그 빛이 닿자 차갑던 바위와 나무들이 순식간에 따스한 색으로 옷을 갈아입었습니다. 빛이 풍경을 바꾼 게 아니라, 풍경이 빛을 받아들여 스스로 다시 태어나는 순간이었죠.
마음이 팍팍하고 피곤한 날, 누군가가 건넨 따뜻한 말 한마디가 제 하루를 완전히 바꿔놓을 때가 있습니다. 어두웠던 마음의 방에 불을 탁 켜주는 그런 순간들 말이에요.
오늘 찍은 사진은, 훗날 제가 또다시 흔들릴 때 꺼내 볼 비상약 같은 겁니다. 사진 속 풍경이 제게 이렇게 속삭이는 것 같아서요.
"오늘도 참 잘 버텼다. 흔들려도 괜찮고, 앞이 안개처럼 흐려도 괜찮아. 기다리면 빛은 반드시 다시 돌아오니까."
찬바람을 너무 오래 쐬었나 봅니다. 오늘따라 유난히 따뜻한 믹스커피가 당기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