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순간도 결국 과거가 된다는 무기력한 예감

쏟아지는 물줄기보다 빠르게 달아나는 오늘에 대하여

by 김정교
어스름한 새벽, 이끼가 낀 바위 지대 너머로 거세게 쏟아지는 하얀 폭포수. 그 앞 바위 끝에 빨간 모자를 쓰고 배낭을 멘 남자가 홀로 앉아 폭포를 응시하고 있다.


오전 5시 40분, 쏟아지는 시간 앞

"철컥, 찰칵." 오전 5시 40분, 짙은 푸른빛이 감도는 괴산 수옥폭포 앞. 어스름한 새벽빛 속에서 거세게 쏟아지는 하얀 물줄기를 담으려 '캐논' DSLR 카메라의 셔터를 정신없이 눌렀습니다. 렌즈에 튄 물방울을 융으로 닦아내다, 그만 손이 미끄러져 렌즈 캡을 축축한 이끼 바닥에 떨어뜨리고 말았습니다.


"아, 진짜... 또 이러네. 그냥 눈으로 보면 될 걸."

축축해진 플라스틱 캡을 줍는데, 명치끝이 얹힌 것처럼 꾹 눌리며 답답해지더군요. 폭포의 서늘한 물보라 때문인지, 아니면 제 안의 묘한 조급함 때문인지 뒷목까지 뻣뻣해졌습니다.

저렇게 맹렬하게 쏟아져 내리는 하얀 물줄기를 보고 있으면, 제 손가락 사이로 속절없이 빠져나가는 시간의 속도를 눈으로 직접 확인하는 것 같아 덜컥 겁이 납니다.


렌즈 너머에 갇힌 조급함


시선을 돌려보니, 바위 끝에 빨간 모자를 쓴 남자가 위태롭게 걸터앉아 있었습니다. 무거운 배낭조차 내려놓지 않은 채, 사진을 찍지도 않고 그저 쏟아지는 폭포수만 가만히 응시하는 굳은 뒷모습. 그 고요한 등을 보고 나서야 깨달았습니다. 저 혼자만 이 거대한 순간을 어떻게든 네모난 뷰파인더 안에 박제하려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는 것을요.


왜 저는 이 웅장한 풍경 앞에 서서도 온전히 젖어 들지 못하고 조급해하는 걸까요. 눈앞의 폭포수는 1초의 망설임도 없이 아래로 쏟아져 내리는데 말입니다.

지금 이 순간의 축축한 공기와 물소리가 내일이면 닿을 수 없는 과거가 되어 지독하게 그리워질 거라는 불안한 예감에, 저는 자꾸만 셔터만 눌러대고 있었습니다. 어쩌면 저는 폭포를 찍고 있었던 게 아니라, 속절없이 흘러가버릴 '지금'을 잃기 싫어 발버둥 치고 있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잡을 수 없는 것들


저 빨간 모자를 쓴 분은 쏟아지는 물줄기를 보며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요. 이 순간을 온전히 누리고 있는 걸까요, 아니면 저처럼 무서운 속도로 사라지는 시간에 무기력함을 느끼고 있는 걸까요. 물론 그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그저 영원히 머물 수 없다는 제 초조함이 저 낯선 이의 쓸쓸해 보이는 어깨에 투사된 것일 테지요.


지금 당장 이 순간을 온전히 사랑하고 머무는 법 같은 건, 솔직히 아직도 잘 모르겠습니다. 내일이면 또 지나간 사진첩을 뒤적이며 이 폭포 소리를 그리워할 게 뻔하니까요.


축축해진 렌즈 캡을 주머니에 쑤셔 넣고, 차가워진 삼각대 다리를 접습니다. 발밑에 놓아둔 '삼다수' 페트병을 집어 들어 미지근해진 물을 삼킵니다. '찌그럭', 빈 플라스틱병이 우그러지는 소리가 거센 폭포 소리에 파묻혀 흐릿하게 흩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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