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너져야 흐로는 것들이 있다.
비 오는 날, 가파른 바위 절벽에서 폭포가 쏟아져 내리고, 그 위쪽 산책로를 노란 우산을 쓴 사람이 걷고 있다. 깎여 나간 절벽이 물길이 되듯, 삶의 상처가 새로운 흐름을 만들어낸다는 심리적 통찰을 보여준다
"솨아아아-" 오전 11시 20분. 우산을 때리는 빗소리보다 폭포 소리가 더 거칠게 고막을 때립니다. 회사에 연차를 내고 무작정 찾아온 곳입니다. 어제 팀장님과의 면담 때문일까요, 아니면 지난달 헤어진 연인의 부재중 전화 때문일까요. 속이 시끄러워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눈앞의 풍경은 기가 막힙니다. 거대한 바위 절벽이 칼로 베어낸 듯 날카롭게 깎여 있고, 그 틈새로 하얀 물줄기가 맹렬하게 쏟아져 내립니다. 그리고 저 멀리, 노란 우산을 쓴 누군가가 그 위태로운 절벽 길을 천천히 걷고 있습니다.
저 절벽을 봅니다. 원래는 매끈하게 이어져 있던 산이었겠죠. 그런데 어느 날 거대한 힘에 의해 찢겨 나가고, 깎여 나갔을 겁니다. 얼마나 아팠을까요. 바위가 비명을 지를 수 있었다면, 아마 저 폭포 소리보다 더 크게 울부짖었을지도 모릅니다.
제 마음도 저 절벽 같습니다. 믿었던 사람에게 배신당하고, 열심히 준비한 프로젝트가 엎어지고... "시간이 약이다", "아픈 만큼 성숙한다"는 말들로 위로받으려 했지만, 솔직히 말하면 다 개소리 같습니다. 상처는 그냥 아픕니다. 흉터가 남을 뿐, 새살이 돋아 예전처럼 매끈해지지는 않더군요.
그런데 가만히 보니 이상합니다. 저 절벽이 깎여 나가지 않았다면, 저렇게 시원한 물줄기가 흐를 수 있었을까요? 상처 입은 틈이 없었다면, 물은 갈 곳을 잃고 고여서 썩어갔을지도 모릅니다. 바위 입장에서는 억울하게 뜯겨 나간 살점이겠지만, 그 '뜯겨 나간 자리(상처)'가 비로소 물이 흐르는 '길(통로)'이 된 겁니다.
문득, 지난주 술자리에서 울면서 했던 말이 생각납니다. "왜 나한테만 이런 일이 생기는 거야." 저는 그 구멍을 메우려고 발버둥 쳤습니다. 술로 채우고, 일로 채우고, 넷플릭스로 채우고. 하지만 어쩌면 그 구멍은 메워야 할 게 아니라, 그냥 무언가가 흘러가도록 내버려 둬야 하는 통로였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사진 속 노란 우산을 쓴 사람을 봅니다. 저 사람은 알까요? 자기가 걷는 길이 깎여 나간 절벽 위라는 걸. 아마 알면서도 걷는 거겠죠. 발밑이 천길 낭떠러지라도, 폭포 소리가 귀를 찢어도, 그저 자기 보폭대로 한 걸음씩 옮길 뿐입니다.
저도 이제 그만 징징대고 걸어야겠습니다. 상처가 지혜가 되는지는 아직 잘 모르겠습니다. 솔직히 지혜 같은 거 안 줘도 되니까 안 아팠으면 좋겠습니다. 하지만, 이 아픔 덕분에 제가 고여 있지 않고 어디론가 흐르고 있다는 사실 하나는 알 것 같습니다.
"후우-" 깊은 한숨을 내뱉습니다. 입김이 하얗게 흩어집니다. 비는 여전히 내리고, 폭포는 여전히 시끄럽습니다. 달라진 건 아무것도 없지만, 적어도 어제처럼 숨이 턱턱 막히지는 않네요.
우산을 고쳐 잡습니다. 손잡이가 축축하지만 차갑지는 않습니다. 내려가서 따뜻한 도토리묵 무침에 막걸리나 한잔해야겠습니다. 상처는 상처고, 배고픔은 배고픔이니까요. 구멍 뚫린 가슴으로도 밥은 넘어가고, 그렇게 우리는 또 살아지는 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