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 뭐 있나, 폼 나게 줍고 폼 나게 건네면 그만이지

세상을 구할 듯 날아올라, 기어이 당신 곁으로 가져온 작은 성의

by 김정교
golden-egret-funny-pose-delivering-twig-m026.jpg 황금빛 아침 햇살을 배경으로 거대한 날개를 펼친 수컷 백로가, 아주 작은 나뭇가지 하나를 입에 물고 둥지로 내려오고 있다. 웅장한 겉모습과 소박한 결과물의 대비를 통해 일상의 허세

오전 6시 50분, 눈부시게 웃긴 아침

"으악, 눈 부셔!" 오전 6시 50분, 동네 뒷산 정상. 선글라스를 안 가져온 걸 후회하며 눈을 찡그립니다. 아침 해가 정면으로 쏟아지는데, 저 앞에서 뭔가 엄청난 게 나타납니다.


거대한 백로 한 마리가 황금빛 아침 햇빛을 받으며 "쿠아앙-" 하는 포스로 내려옵니다. 날개 편 길이가 족히 1미터는 넘어 보입니다. 저 녀석의 비장한 표정과 근육질(?) 날개를 보아하니, 입에는 분명 월척 잉어나, 아니면 적어도 산삼 뿌리 정도는 물려 있을 것 같습니다. 마치 영화 <반지의 제왕>에 나오는 독수리 구조대처럼, 세상을 구하러 온 영웅의 등장 씬 같다고나 할까요.


그런데 줌을 땡겨서 자세히 보니... 녀석의 부리에 물려 있는 건, 앙상하고 비틀어진 나뭇가지 하나가 전부입니다.


"여보, 나 왔어! (빈손은 아니야)"


셔터를 누르려다 '풉' 하고 웃음이 터졌습니다. 저 화려한 등장, 저 압도적인 카리스마의 목적이 겨우 '나뭇가지 배달'이었다니요. 마치 명절에 벤츠 타고 고향 내려와서, 트렁크에서 꺼낸다는 게 '참치 선물 세트' 하나인 제 조카 녀석을 보는 것 같습니다. (물론 참치도 귀하지만, 차 문 여는 폼은 백화점 전체를 사 온 줄 알았거든요.)


둥지에서 기다리던 암컷 표정도 가관입니다. "어머, 자기야! 날개 각도 예술이다! 근데... 그게 다야?" 라고 묻는 듯 고개를 갸웃거립니다.


이런 풍경... 왠지 익숙하지 않습니까. 우리네 인생도 다 저런 '용두사미' 시트콤 아닙니까. SNS에는 "오늘도 치열하게 불태웠다 #성공 #열정" 하고 비장하게 올려놓고, 정작 퇴근길 손에 들린 건 편의점 '4캔 만원' 맥주 봉지가 전부인 날들 말입니다.


근데, 그 나뭇가지가 뭐 어때서


벤치에 앉아 숨을 고릅니다. 가만 생각해보니 웃을 일이 아닙니다. 저 수컷 백로, 꽤 멋진 놈입니다. 남들 눈엔 시시해 보이는 나뭇가지 하나를 줍기 위해, 저렇게 온 힘을 다해 날개를 폈다는 거니까요.


"폼생폼사면 어때. 내 새끼 위한 건데." 녀석은 아마 이렇게 생각했을 겁니다. 우리가 맥주 봉지 하나 달랑 들고 들어가도, "아빠 왔다!" 하고 현관문 열 때만큼은 세상 다 가진 표정을 짓는 것처럼요. 행복이라는 게 원래 좀 뻔뻔해야 제맛 아닙니까. 작은 거 하나 주워오면서도, 지구를 구한 영웅처럼 당당하게 건네는 저 뻔뻔함. 그게 바로 가장의 무게를 버티는 기술일지도 모릅니다.


오늘도 폼 나게 '지잉' 결제합니다


내려가는 길, 주머니에서 카드를 꺼내 봅니다. 오늘 저녁엔 아내에게 줄 붕어빵이나 한 봉지 사가야겠습니다. 천 원짜리 몇 장 없어서 카드로 긁겠지만, 건네줄 땐 백로처럼 날개를 쫙 펴고 말할 겁니다. "여보! 내가 당신을 위해 이 추위를 뚫고 황금 잉어빵을 사냥해 왔다!"


아내가 "아이구, 가지가지 한다"며 등짝을 때리더라도 뭐 어떻습니까. 그것도 다 사랑의 타격음(?) 아니겠습니까.


이어폰을 꽂습니다. 조용필의 'Bounce'가 흘러나옵니다. 심장이 콩닥콩닥, 발걸음도 덩달아 가벼워집니다. 오늘 하루, 대단한 성과는 없어도 괜찮습니다. 저 백로처럼 폼 나게 출근해서, 소박하게 퇴근하면 그게 바로 해피엔딩이니까요.



작가의 이전글꼭 뚜렷해야 하나요? 흐릿해서 좋은 날도 있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