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바람이 불면
RCO와 베를린필, 그리고 빈필 덕분에 또 한번 충만해진 11월. 언제부턴가 찬바람이 불어오면 이렇게 또 한 해가 다 갔구나 하는 허망함과 알 수 없는 불안감에 늘 울적해지곤 했다. 그러나 이 위대한 오케스트라들의 연주를 들으며 이렇게 일년 또 일년을 보내는 것이 그리 나쁜 일만은 아님을, 나이 들어감이 퍽 괜찮을 수 있겠다는 생각을 처음으로 하게 되었다. 무릇 사람은 기대감으로 사는 존재가 아니던가. 이 멋진 음악가들이 내년에는 또 어떤 곡들로 멋진 연주를 들려줄까 하는 설렘으로 일년을 번 셈이다. 나에게는 마치 캐롤과 같은 빈필의 왈츠. 쿵짝짝 쿵짝짝 오늘의 앵콜을 되새기며 다시 돌아올 봄을 생각해본다. 그래, 이런 기다림이라면 얼마든지 좋다. 이제 나는 겨울이 그리 무섭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