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재의 허무를 이겨내는 법
순간의 역설. 사라짐으로 오히려 영원을 향하는 일.
녹음된 음반으로는 들을 수 없는 것이 한 가지 있는데, 제아무리 훌륭한 장비를 동원하고 엔지니어링으로 음향을 조정한들 현장감이 주는 그 동시성만은 영영 전달할 수 없다. ’지금, 여기‘ 라는 인식이 줄 수 있는 감각 말이다. 그런 의미에서 임윤찬이라는 피아니스트와 동시대를 산다는 것이 누군가에겐 아주 큰 의미를 가진다. 보통은 한 프로그램이 정해지면 수십 번을 같은 곡으로 순회하며 연주하는 게 일반적인 반면, 이 다재다능한 연주자는 레퍼토리를 끝없이 달리하며 계속 새로운 곡들을 보여주고 있다. 심지어 같은 곡을 연주할 때마저 넘쳐나는 아이디어를 전부 실험해보기라도 하려는 듯 매번 다른 주법과 해석을 보여주니, 이런 예술가와 동시대를 살아가며 그의 음악을 직접 들을 수 있어 나는 복이 많다.
자리가 앞쪽이었던 덕에 연주자의 손가락을 자세히 볼 수 있었다. 오른손 위로 교차된 왼손이 어찌나 섬세히 건반을 누르던지 마치 넘칠 듯한 잔 위에 조심스레 음 한 방울을 떨어트리는 듯 했다. 기어이 넘치는 일 없이 찰랑이던 라벨과 앵콜로 연주한 코른골트의 가장 아름다운 밤에서 높게 반짝이던 북극성 같은 음표 하나까지, 모든 순간이 눈부시게 빛났다.
언젠가 한 인터뷰에서 임윤찬은 자신의 좌우명이 사랑, 사랑, 사랑이라 말한 바 있다. 아마 이 아름다운 곡들을 처음 만들었을 작곡가들의 넘치는 음악에의 사랑과, 그 마음을 돋을새김하여 세상에 또 한번 꺼내놓는 연주자 본인의 사랑, 그리고 그의 연주를 듣고서 행복함으로 가득 찰 모든 이들의 사랑을 말한 것은 아니었을지. 이 사랑의 연결고리 안에서, 결국 존재의 허무는 실존을 바라볼 때 극복될 수 있을 것이다. 사랑이 허무를 건드릴때, 아무 것도 아니라고 여겼던 것들이 비로소 모든 것이 된다. 무의미 속에서도 순간은 계속 이어지며 그렇게 결국 어딘가에 가닿게 된다. 자꾸 파헤치고 파헤쳐 그 어딘가에 닿으려는 그의 음악과 함께 나도 지금을, 산다. 순간을 영원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