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눈

임윤찬의 라벨 피아노 협주곡을 듣고

by sue

자자, 준비하시고 레디, 액션! ‘짝’ 하는 슬레이트와 함께 영화 테이크가 시작되는 것처럼, 채찍 같은 슬랩스틱이 가른 공기 사이로 피아노와 피콜로가 스며들어온다. 돌아가는 필름 속에 다른 차원의 세계가 만들어지듯 이 무대는 또 하나의 새로운 공간이다. 이 곡에서 피아노는 결코 저 혼자 왕왕 울리는 주인공이 아닌데, 기존의 협주곡과는 사뭇 다른 오케스트라와의 관계 속에서도 임윤찬의 피아노는 특별한 채도로 빛난다. 현악기군의 피치카토와 엇박자를 이루는 동시에 빠르게 튀어나가는 고음 음형 속에서 결코 서두르지 않는 여유가 느껴졌다. 왼손으로 저음역의 묵직함을, 오른손으로는 새가 지저귀는 듯한 맑은 소리를 끊임없이 펼쳐낸다. 무겁지 않되 결코 얕지 않은 한 음 뒤의 한 음. 리듬은 재즈적이지만 구조는 여전히 고전적인데, 이 모순이 바로 라벨 음악을 독해하는 언어일 것이다. 분방한 척하지만 철저히 계산된 음악. 장난기 가득한 얼굴 뒤로 냉철함이 스친다.


이어지는 2악장 Adagio assai. 임윤찬의 피아노가 단선율을 조심스럽게 꺼낼 때, 이 마디마디는 노래라기보다 혼잣말에 가깝다. 곡의 심장부라 할 수 있는 이 독백에서 그는 감정을 일부러 드러내기보다 자연스레 손끝에서 배어나오도록 내버려두었다. 내버려두었다기 보다는 흘려보냈다는 표현이 좀더 옳을 것이다. 열흘 전의 연주보다 훨씬 더 짙어진 테누토가 현장을 압도했다. 관객석에서 이례적으로 큰 잡음이 있었음에도 연주자는 전혀 동요하는 기색 없이 묵묵히 자신이 그려내야 할 음표들만을 응시했다. 이윽고 오케스트라가 등장하여 피아노의 선율에 응답하며, 둘은 겹치지 않는 평행선 위에서 긴밀하게 공존하게 된다. 아까와 같은 낮고 조용한 피아노의 읊조림이 이어지지만 이제는 더이상 혼잣말이 아니다. 아니, 혼잣말일 수 없다. 타자와의 조우. 잉글리시 호른이라는 또다른 목소리를 만남으로써, 그 고독하던 독백이 새로운 의미를 가진 무언가로 확장되었다. 가히 레비나스를 떠올리게 하는 순간이었다.


다시 현실로 던져지는 3악장. 벌새가 날아오르듯 빠르고, 짧고, 날카롭다. 임윤찬의 손가락은 기계처럼 정확하게 튀면서도, 건반을 두드린다기보다 마치 건반 위를 미끄러지듯 유영했다. 토카타처럼 질주하는 피아노의 현란한 패시지가 금관악기와 팀파니의 격렬한 리듬과 어우러져 폭발적인 피날레로 치닫는다.


나는 이 곡이 마냥 즐거운 곡이라 불리는 것이 어딘가 조금 억울하다. 물론 즐겁다. 그러나 그 즐거움은 천진한 어린아이의 웃음이라기 보다는, 많이 알고 많이 겪은 자만이 선택할 수 있는 어떤 ‘품이 든’ 명랑함일 것이다. 가벼운 무거움. 오늘 임윤찬은 산타 체칠리아 오케스트라와 더불어 라벨이 만든 이 모순적 구조의 설계도를 낱낱이 보여주었다. 모차르트와 재즈를 사랑한 라벨. 그런 라벨을 사랑하는 임윤찬의 연주를 사랑하는 나. 이 행복한 삼각관계를 다시금 생각하며 공연장을 나서니 흰 눈이 사방을 가리웠다. 앵콜의 autumn leaves를 끝으로 가을의 마지막의 마지막마저 가고 겨울이 온 것이다. 지난번보다 더욱 웅장하고 화려해진 Die schönste Nacht처럼, 백야라도 온 양 온통 환하고 밝은 밤이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 거리에는 소복하니 고요만이 쌓였다. 한편의 영화를 본 듯한 기분으로, 아직 아무도 걸어가지 않은 올해의 첫눈을 뽀득뽀득 밟으며 내딛는 발걸음이 유난히도 가볍다. 그가 남긴 섬세하고 투명한 오늘의 잔향이 언제까지고 마음에 울릴 것을 알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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