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만과 바그너

12월 첫주 공연 기록

by sue


클래식은 연말이 되면 그 다음 시즌의 스케줄이 공개되기 때문에, 소위 클덕이라면 이맘때가 일년치 공연들을 예매해두는 시기이다. 헐빈해지는 지갑을 꽉 찬 캘린더로 맞바꾸는 셈이랄까. 작년 이맘때의 나는 다른 공연은 다 못 가더라도 이 둘만큼은 꼭 가야지 하며 예매창이 열리자마자 티켓을 구매했다. 엘리소 비르살라제의 슈만 피아노 협주곡 그리고 바그너의 트리스탄과 이졸데. 정말 말 그대로 일 년을 기다린 12월의 첫 주가 되었다.


비르살라제의 연주를 22년 리사이틀에서 처음 들었을 때, 나는 기분 좋은 당혹감에 휩싸였다. 왜 남들하고 똑같은 스타인웨이 피아노인데 저런 소리가 나지? 건반을 친다기보다는 건반과 건반 사이의 공백을 누르는 듯한 그 신기한 텍스처와 공명에 감탄하며 다시 한번 그녀의 피아노를 들을 수 있기를 고대해왔다. 그런데 이번에 지휘자도 지난번 스트라스부르 오케스트라를 이끌고 캉토로프와 함께 근사한 연주를 보여준 아지즈 쇼하키모프인데다가, 무엇보다 프로그램이 슈만 피아노 콘체르토라는 것이다! 내가 언제고 가장 사랑하는 피아니스트로 꼽을 리히터는 비르살라제를 두고 ‘이 시대의 가장 정교한 슈만 해석가‘라 말한 바 있다. 그러니까 이건 반드시 들어야만 하는 연주인 것이다.

80이 넘는 나이임에도, 눈을 감고 들으면 마치 한창때의 남성이 치는 듯한 힘과 기세가 있었다. 몇몇 군데의 미스터치는 그녀의 연주의 위대함을 훼손하기엔 너무 사소한 것에 지나지 않았다. 슈만의 음악에서 언제나 느껴지는 계절은 가을. 지난달 베를린필과 김선욱의 슈만이 눈부신 황금빛 가을 같았다면, 오늘 비르살라제의 슈만은 버석하게 마른 낙엽이 바람에 날리며 겨울을 예고하는 마지막의 늦가을이었다. 보통 피아노가 격정적으로 쏟아붓거나 꿈결처럼 흐리게 밀어내거나 하는 유형이 있다면, 비르살라제는 이 둘을 모두 거부했다. 그녀는 격정을 내부에서 폭발시키지 않고, 한 걸음 바깥에서 응시했다. 골백 번을 넘게 들은 곡인데도 단 한 번도 듣지 못했던 내성부의 더 깊은 곳을 들을 수 있었던 건 절제된 페달과 강박적일 만큼 툭툭 끊기는 묵직한 왼손 덕이었으리라. 작곡가의 기질적 불안과 클라라에 대한 넘쳐 흐르는 사랑을 양손으로 보여주며, 이 노거장은 기어이 나를 울리고야 말았다. 다음 달에 듣게 될(내 표가 있을진 모르지만 부디!) 임윤찬의 슈만은 또 어떤 모습일지 기대해보며, 나는 음악이 사람을 어떻게 겨울로 데려가고 또 어떻게 봄으로 밀어 올리는지 생각해보는 것이었다.



그리고 트리스탄과 이졸데. 이 위대한 오페라의 전주곡은 사실상 클래식 전 역사에서 가장 유명한 전주곡일 것이다. 20세기를 열었다고 불리는 ‘트리스탄 화음’. 그 마음을 에이는 긴장과 갈증의 선율을 실황으로 들을 기회는 생각만큼 흔치 않다. 성악가와 오케스트라 모두에게 극악의 난도인 데다, 네 시간을 넘기는 러닝타임으로 관객의 체력까지 시험하는, 모두를 혹사시키는 문제작이기 때문에. 그렇기에 나 역시 책도 읽고 음반도 들으며 나름의 예습을 해두었다. 이건 사랑 이야기가 아니다. 사랑이 운명이 되어버린 이야기다. 거부도, 회피도, 거짓도 불가능한. 둘이 눈을 마주친 순간부터 이미 끝이 쓰여 있는. 이 비극은 조성이 기울어가는데도 절대 떨어지지 않는 화음, 해결을 거부하는 화음과 함께 파국으로 질주한다. 기나긴 여정 내내 그 하나의 화음이 긴장과 해소를 반복하다, 이윽고 폭발하고 초월한다. 내 마음을 가장 울린 장면은 죽은 트리스탄 앞에서 마르케 왕이 my faithless faithful friend라 부르짖는 순간이었다. 트리스탄과 이졸데는 비록 죽었을지언정 사랑을 했다. 그러나 마르케 왕은 사랑도 우정도 미래도 잃었다. 용서하기 위해서, 아니, 그것 말고는 다른 길이 없어서 찾아온 그의 앞에는 차가운 시신뿐이었다. 그는 심지어 용서할 자유마저 빼앗겼다. 그 뒤를 이어 이졸데가 온 우주가 그녀 안으로 스며드는 듯한 노래를 부르며 소멸과 초월이 동시에 일어나는 죽음을 택한다. 나는 이제야 바그너가 만든 liebestod라는 말의 의미를 이해한다. 이 순간 극장은 ‘지금,여기’를 뛰어넘는다. 모든 것이 무너지고 다시 태어나는 듯한, 시간의 윤곽조차 흐릿해지는 어떤 경계의 세계였다.



공연장은 나서는 발걸음에 이상한 온기가 남아 있었다. 오늘의 음악이 데려간 곳은 분명 겨울이었는데, 그 겨울이 비밀스럽게 봄을 약속하고 있었다. 이렇게 일 년을 기다린 끝에 만난 하루 하루가 나를 다음 계절로 이끌었다. 아마 나는 내년 이맘때도, 다시 이런 순간 하나를 기다리며 달력을 넘기고 있을 것이다. 음악이 또 나를 어디로 데려갈지 몰라 설레는 마음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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