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새해 소원
학교 다닐 때 매년 반마다 유난히 순한 친구가 있었다. 땡땡이는 착하지, 모모? 그냥 둥글둥글해. 성적이 딱히 좋지도, 잘난 점도 없지만 그 부드러운 온유함 자체가 그 아이의 특징이었던 친구. 그런 애들은 으레 자신을 드러내거나 말수가 많거나 하지도 않기에 모두의 기억속에 뚜렷이 남지는 않지만, 오래 남는다. 아니, 보일듯 말듯 기어이 영원토록 남는다.
만약 자아라는 것을 옷이나 가방처럼 고를 수 있다면, 아니 어디서 돈주고라도 살 수 있다면, 나는 저 땡땡이나 모모와 같은 사람이 되고 싶다. 모나지 않은 사람. 뾰족하기 이를 데 없는 내 성격은 밖으로 남을 찌르다 내 마음까지 찌르는 일이 잦은데, ‘좋은게 좋은거’ 가 안되는 나는 먹고 입고 듣고 행하는 모든 것에 주제넘게 까탈을 떤다. 정말이지 나는 내가 피곤하다. 상대가 별 생각없이 툭 던진 말이 손끝의 거스러미마냥 이내 까슬하다. 디폴트가 허허 실실이어도 누군가 먼저 공격을 해오면 맘보가 고약한 난 꼭 갚아주고 싶어진다. 예수께서는 누가 왼뺨을 치거든 오른뺨도 대라 하셨는데. 함무라비의 후예라도 되는 양 눈에는 눈 이에는 이를 해줘야, 아니 적어도 혼잣말로나마 실컷 화를 내야 속이 시원해지는 옹졸함이 나의 그릇인 것이다. 이 그릇은 정말이지 너무 작아서 여기엔 남은 커녕 나 하나도 온전히 담기가 어렵다. 속상한 일의 잔상 또한 오래 남는다. 잊고 싶은 것을 쉬이 잊지 못한다는 건 아무리 생각해도 가장 큰 벌이다.
어느덧 한 해가 어찌저찌 가고 또 한번 싱숭생숭한 연말이 왔다. 이 싱숭생숭함은 그간 이루지 못한 것들에 대한 회한과 앞으로 이루지 못할 것들에 대한 두려움에서 기인한 것일테다. 그러므로 우리는 소원을 빈다. 지나간 것과 다가올 것들 모두에 예쁜 포장지와 리본을 달기 위해. 올해도 비는, 벌써 몇번째 비는지도 모르는 나의 소원은 언제고 ’5학년때의 땡땡이처럼, 고2때의 모모처럼 되게 해주세요‘ 이다. 성격도 팔자, 타고난 성정을 어쩔것이냐마는 그럼에도 바래본다. 작은 일에 노여워하거나 슬퍼하지 않기를. 아님 그 모든 것을 적어도 금방 까먹어버릴 수 있기를. 간장종지만한 나라는 세상이 다만 몸하나 누일 두어평 정도만이라도 되기만을 빌어보는 것이다. 이루어지지 않을 것을 알면서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