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한 번 사포질

첫번째 테스트

by sue


주말이라 느즈막히 일어나 오늘은 무얼 할까 하다가 여기저기 탑처럼 쌓여있는 책들이 눈에 들어왔다. 그래, 책도 읽고 강아지랑 산책이나 하자. 세수를 하고 강아지도 나도 패딩으로 중무장을 하고선 집을 나섰다.

아직 몽롱한 정신도 깨울 겸 걸어갈 만한 거리에 있는 유일한 반려동물 동반이 가능한 카페로 향했다. 꽤 넓은 공간인데도 손님은 나밖에 없었고, 강아지는 가방에 들어가 있었지만 그래도 혹시라도 불쾌해할 사람들이 있을까봐 최대한 구석에 자리를 잡았다. 그렇게 개를 옆에 끼고 커피를 마시며 책을 백여페이지가량 읽었을 무렵, 누군가가 말을 걸었다. “아니, 여긴 노인네들 위한 자린데. ” 지팡이까지 한 왠 할아버지가 성난 표정으로 내앞에 계셨다. 무슨 말씀이신지 당최 이해가 안가서 여쭤보니 당신은 이 카페를 자주 오며, 이 자리가 편하며, 여긴 나이많은 사람들이나 앉는 자리라고. 다시 들어도 이해가 잘 가지 않았다. 둘러보니 넓은 매장에 자리라면 아직도 차고 넘치게 많았고, 이 자리가 다른 곳에 비해 딱히 더 편해보이지도 않았다. 순간 머리속에 오만가지 생각이 들었다. 내가 개랑 함께 있어서인가. 아님 내가 젊은 여자여서, 한마디로 만만한 상대여서인가. 다른 자리에 앉으시면 될 것 같아요 라는 말이 목구멍까지 차올랐지만, 추운 날 비니며 장갑이며 꽁꽁 싸매고 지팡이를 짚고 나온 할아버지를 다시 한번 보게 됐다. 내가 먼저 앉은 곳이라고 해버리면 될 일이었지만서도, 그 쌀쌀맞은 말로 이 노인을 더 춥게 만들고 싶지는 않았다. 구석자리에서 좀 더 책을 읽다 가고 싶은 마음을 고이 접고는, 그냥 빙긋 웃어드리고 카페를 나섰다.

할아버지가 앞으로 커피를 드시면 얼마나 더 드시겠나. 그를 가엾어 한다거나 하는 재수없는 시혜적인 마음에서도, 괜한 싸움을 피하고 싶은 소심함 때문도 아니었다. 그냥, 그냥.

좋은게 좋은것을 연습하고 있다. 왜, 학교다닐적 반마다 한명씩 있던 그런 애들 있잖는가. 싫은게 없는, 화내는 법이라곤 없던 둥글던 친구. 언제고 늘 그런 사람이 되고 싶었다. 하루에 한번씩 사포질을 하면 이마만큼 뾰족하던 나도 그런 애들처럼 되지 않을까. 첫번째 테스트를 무사히 마친 기분으로 집으로 돌아가는 발걸음이 가볍다. 할아버지도 맛있게 커피를 잡숫고 가셨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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