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루스트 이펙트

지메르만의 리사이틀을 듣고

by sue


마르셀 프루스트의 저 유명한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못다 읽었을지라도 아마 모두가 알고 있을 장면. 주인공이 마들렌을 한 조각 베어 무는 순간 무의식 저 깊이 숨어 있던 어린 시절의 기억에 휩싸인다. 말로 설명할 수 없는 깊고 강렬한 기쁨이 그를 덮치고 마르셀은 그 이유를 알 수 없다. 오늘 지메르만의 리사이틀 첫 곡이었던 슈베르트의 Impromptus 의 2번이 시작되자마자 나는 책 속의 마르셀과 꼭 같은 경험을 하게 된다. 분명 음악을 듣고 있을 뿐인데 코끝에 은은한 홍차 향기가 훅 끼쳐오는가 하면, 잘 다려진 베갯잇의 바스락거림이 느껴지더니 어디선가 오월 무렵의 산들바람까지 불어오는 것이었다. 지치는 매일을 사느라 잊고 있던 아름다운 것들로 마음을 씻어내는 기분이랄까. 모든 사근하고 우아한 것들을 온몸으로 느끼며 나는 더없이 행복해졌다.


한참을 황홀경에 빠져 있다, 문제의 2부가 찾아왔다. 프로그램을 사전에 공개하지 않고 그날그날 여러 프렐류드 중에 몇 곡들을 엮어 친다는 설명이 전부였다. 연주자의 의도를 알기 어려워 반신반의하는 마음으로 듣다가, 한참이 지나서야 어렴풋이 알게 되었다. 스타트코프스키의 곡으로부터 출발한 모든 곡들이 장조와 단조의 순서를 반복하고 있었는데, 처음에는 그 장단의 콘트라스트가 분명해 보였으나 이내 흐려지기 시작했다. 장조라 할지라도 매 순간이 다 장조인건만은 아니었으며, 단조 또한 시종일관 단조가 아니었다. 마치 우리네의 희로애락이 그러하듯 밝은 것 뒤에는 기필코 어두운 것이 있으며, 침잠하는 가운데에는 언제나 솟아날 구멍이 있다. 이 위대한 피아니스트의 손끝에서 설핏 보면 개연성 없는 곡들의 나열일 뿐인 프렐류드들이 하나의 이야기로 엮여져갔다. 아름다운 선율들과 함께 나는 다시금 모든 것은 지나간다는 만고의 진리를 떠올린다. 기쁨은 영원할 수 없기에 더욱 소중히 여겨야 할터이고, 슬픔 또한 계속되지 않기에 쉬이 낙담치 말것. 지메르만의 피아노에 방울방울 맺힌 음표들이 작은 일들로 속상해하던 내 마음을 촉촉히 적셔주었다.


귀한 것을 귀하게. 훗날 또 보드랍고 빛나는 무언가를 만나면 이 순간이 떠오를 것이다. 노장의 곱게 센 아미와 유려한 손놀림, 청중의 혼을 쏙 빼놓은 마지막의 앵콜까지. 언제올지 모르는 그날을 위해 이 기억을 마음의 서랍장에 잘 넣어두어야지. 나중에 또 다른 마들렌을 베어 물었을 때, 오늘의 프렐류드들이 향기처럼 피어오를 수 있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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