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윤찬의 슈만 피아노 콘체르토를 듣고
인류가 암전같은 우주에 혼자가 아니길 바라며 골든 레코드를 실은 탐사선을 쏘아 올렸을때, 그 안에는 우리를 우리이게 하는 모든 것이 들어 있었다. 수십 가지의 언어로 녹음된 인사말, 수 체계, 보들레르의 시, 그리고 음악. 거기에 바흐의 평균율을 넣은 것은 당연한 선택이었을 것이다. 인간이 만들어낸 가장 우주적인 음악. 바흐의 세계에는 감정 이전에 구조가, 개인 이전에 필연이 있다. 그러니까 그것은 인류의 자기소개서였다. 우리가 누구인지, 무엇을 아름답다고 여겼는지 보여주고픈 마음. 반세기가 흐른 오늘 내게 감히 인류의 두 번째 자기소개가 허락된다면, 나는 그 목록에 슈만의 피아노 협주곡을 넣겠다.
바흐가 코스모스라면 슈만은 카오스다. 완벽한 구조의 반대편에서 이 음악은 인간이 끝내 포기하지 못한 것들을 끌어안는다. 사랑, 집착, 망설임, 논리로는 설명되지 않는 모든 비합리적인 마음들. 그리하여 나는 임윤찬이 연주할 이 곡을 듣게 될 순간을 오래도록 기다려 온 것이다. 이 천년에 한 번 나올만한 천재가 인류의 보석과도 같은 곡을 어떻게 세공해줄지를 상상하며.
그렇게 공연장에서 마주하게 된 1악장 Allegro affettuoso. 수상하다. 서두의 하행 화음은 승리의 선언이라기보다는 중력을 거스르지 못한 채 낙하하는 감정의 추락에 가깝다. 임윤찬은 넘치는 기세로 바닥까지 체중을 실어 악구의 물리적 무게를 드러냈다. 동기가 계속 반복되고 결론에 도달했어야 할 음악이 같은 자리를 맴돌때, 임윤찬은 이 구조적 비효율을 교정하는 대신 투명하고 절제된 타건으로 이를 ‘미련’이라는 감정으로 번역했다. 피아니스트의 얼굴에 당당한 쓸쓸함이 스치운다.
2악장 Intermezzo에서 임윤찬의 전매특허가 빛난다. 그는 피아노를 칠 때만큼이나 치지 않을 때의 중요성을 본능적으로 알고 있다. 귀엣말을 주고받는 수줍은 연인들처럼 오케스트라와 피아노가 선율과 선율 사이의 여백을 함께 응시한다. 절제된 타건으로 소리가 사라지려는 찰나 속 문장이 되지 못한 열망이 응축되었다. 그는 이 순간 ’말 이전의 마음‘이 얼마나 뜨거울 수 있는지를 증명했다.
3악장 Allegro vivace에 이르러 리듬은 끊임없이 비틀린다. 헤미올라로 박의 중심이 흔들리고 음악은 자꾸 절뚝인다. 임윤찬은 이 불균형의 한가운데로 몸을 던진다. 그의 루바토는 이제 로고스의 영역을 넘었다. 질주하는 플로레스탄과 침잠하는 에우제비우스. 건반 위 이글거리는 활화산 안에 고요한 호수가 들어있다. 임윤찬의 손가락이 반짝이는 아르페지오로 건반을 휩쓸 때, 이는 결코 비르투오시티의 과시일 수 없다. 오히려 자기 소모에 가깝다. 이 놀라운 연주자는 슈만이 그리고자 했을 ‘나도 나를 어쩌지 못하는 마음‘을 담아 모든 음을 연주했다. 사랑할 수 있어서도, 사랑하고 싶어서도 아닌, 사랑할 수밖에 없어서. 곡이 피날레로 향하며 슈만 특유의 조증과 울증이 분열적으로 교차하며 충돌한다. 그렇게 이 곡에는 영웅이 없다. 돌아오는 기차표도 없이 무작정 길을 나서는자의 얼굴이, 스스로의 불완전함을 긍정하는 지극히 평범한 한 사람의 뒷모습만이 있을 뿐. 휘청일지언정 절대 넘어지지 않으며 그는 결국 우뚝 일어선다. 마지막 음표와 함께 터져 나오는 울음의 이유를 아마 나는 영영 알지 못하리라.
효율과 경제 논리로만 온세상이 돌아가는 지금, 사랑은 어쩌면 진작 멸종되었을지 모른다. 티타늄 갑옷을 입은 채 연신 계산기를 두들겨대는 신인류의 눈에 클라라를 향한 슈만의 사랑은 아무 쓸모 없는 비효율로만 여겨질 터이다. 그러므로 누군가 대체 이 수많은 음표들이 다 무슨 소용이냐 묻는다면, 맞다. 아무 소용 없다. 그러나 그 ‘소용없음’이 바로 사랑이고 인간인 것을. 부박하고 일그러지고 미련하여 아름다운 것을. 자꾸만 똑똑해지는 컴퓨터를 상대로 한 바둑 내기에서 어떤 셈법으로도 설명이 안되는 수를 던진 한 인간처럼, 때로는 이 비합리적인 ‘말이 안 되는 것’이 이길 때가 있다. 아니, 그것만이 우리가 가진 유일한 승부수이다.
가만 돌이켜보니 멀리서 청중을 찾을 필요도 없었다. 이 눈부신 생의 찬가가 닿아야 할 곳은 낭만이 불능해진 시대의 우리들이다. 진정으로 사랑할수만 있다면, 이 너른 우주 아무도 없이 너와 나 뿐이어도 더는 외롭지 않으리. 그리하여 임윤찬의 손끝을 통해 슈만이 우리에게 소리친다. 우리 다시 한번 뜨거워지자. 계산없이 슬퍼하고 구태여 먼 길을 돌고 돌아 대책없이 사랑하자. 설령 그것이 어리석은 일일지라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