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관크를 넘어
클래식을 어릴때부터 좋아해왔기는 하지만 실황으로는 거의 들어본 적 없던 클초보중의 대왕초보, 2022년 임윤찬이라는 빅뱅 이후 본격적으로 공연장을 드나든지 햇수로 5년이 된 바. 이제 대왕초보에서 맨앞글자의 대 정도는 떼도 되지 않을까 싶은 연차임에도 어째 들으면 들을수록 더 모르겠고 더 알고 싶은게 넘쳐나기만 하는 클래식세상.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나 저러나 쌓인 구력덕에 한가지 분명히 늘어난 게 있으니, 바로 ‘관크‘ 에의 철학 이다.
거창하게 철학 씩이나 운운하냐 할 사람도 있겠으나 어차피 내가 쓰는 모든 글의 유일한 독자는 나 자신뿐임을 알기에, 이런 한여름밤의 개꿈같은 글에도 철학이라는 거창한 타이틀을 붙여도 아무도 나무랄 이가 없음에 안도하며 어쨌건 그간 공연장을 다니며 느낀 관크에 관한 모든 것을 써보고자 함이다. 그동안 사실 공연 후기 비스무레 한 것은 여러번 써왔지만 관크 얘기는 거의 쓴적이 없다. 안좋았던 일을 굳이 기록하거나 재차 발화함으로써 부정적 감정을 강화하는 것을 피하려는 관성 탓이기도 하거니와, 사실 더 근본적인 이유는 따로 있다. 타인의 공연 관람에 방해를 끼치는 행위를 이른바 관크라 칭하는데, 이렇게 정확한 명칭조차 애매하여 인터넷 용어로만 통용되는 것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하는 것이 어딘지 모양이 빠지는, 시쳇말로 좀 ‘짜치는’것 같아 항상 공연의 좋은 점만을 상기하려 애써온 것이 사실이다. 어쨌든 오늘은 오랜만에 오만관크를 하루에 다 느낀 날을 기념하기로 한 터. 일단 그들의 유형을 살펴보기로 하자.
1. 관크의 유형
- 캔디크러쉬 : 기침이 날 때 사탕을 먹는 것은 공연장에서도 무료로 제공하는 만큼 권장이 되는 일이나, 이 유형의 사람들은 어디서 단체로 공구라도 한 양 비닐이 천겹쯤 되는 것 같은 봉투를 하염없이 까는 스킬을 보여준다. 악장간에는 뭐하고 있다 일부러 조용한 타임을 기다린듯이 곡의 가장 서정적인 부분에서 주로 출몰하며, 1분여의 바스락거림이 영겁처럼 체감된다.
- 리듬히어로 : 온 몸으로 음악을 즐기는 유형들. 보통 손가락 탭핑과 발 까닥거림이 동반되는데, 가장 하드코어인 유형은 마치 락페에서 펜스를 잡은 사람들처럼 상체를 앞뒤로 계속 까닥거리는 타입이다. 시청각 모두를 괴롭게 하는 관크.
- 브라보러버 : 마치 공연이 끝나기만을 기다린 사람처럼 지휘자가 지휘봉을 채 내리기도 전에, 심한 경우에는 곡의 마지막 음이 채 가시기도 전에 브라보를 외치는 유형. 주로 대편성 교향곡에 출몰하며, 서로 경쟁이라도 하는 듯, 그 난데없는 빠르기가 마치 룰라의 3!4! 의 예측할수 없는 박자와도 같다 하겠다. 여운의 싹을 말려버리는 유형.
- 겨울나그네 : 개인적으로 가장 곤혹스러운 유형. 공연장 안이 아무리 갑갑해도 외투를 코트룸에 맡기거나 벗어서 들고 있는 일은 이들에게 절대 있을 수 없다. 갑옷같은 패딩을 입은 채 끊임없이 몸을 움직이는데 상대가 양쪽 귀 뒤로 있을때 제일 고통받는다. 신경을 갉아먹듯 멈추지 않는 바스락거림이 이들의 챠밍포인트.
- 페이지터너 : 누구는 음악만 집중해서 들어도 어렵던데, 음악을 들으며 프로그램북의 텍스트까지 읽으며 멀티태스킹의 기염을 토해내는 이들. 끊임없이 아까 읽은 페이지로 다시 돌아갔다가 접었다 폈다를 반복하며, 리듬히어로와 마찬가지로 시청각을 골고루 테러하는 유형.
이 외에도 다양한 양태의 관크들이 있을 것이며, 가장 흔한 유형인 핸드폰 벨소리나 알람소리는 안울리면 서운할 정도의 빈도이므로 대충 이 정도로 마무리를 짓기로 하자. 그렇다면 우리는 이 관크에 대해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가? 관크 대처법에는 단계가 있으므로 다음 수순을 따르도록 한다.
2. 대처법
-Maltese : 참지않는 말티즈가 되는 것이다. 즉, 당사자에게 직접 불편을 이야기하는 정공법 되시겠다. 이때의 팁은 잘못한 것이 없어도 ‘죄송하지만’이라는 쿠션어와 ’선생님‘이라는 존칭의 사용이다. 산전수전공중관크를 다 겪어온 나는 이 두 단어의 조합으로 8할정도의 승률을 얻어내고 있는 바, 미운 마음을 뒤로하고 저자세로 나가기를 권한다. 그러나 이는 상대가 나의 양옆이나 바로 앞뒤인 근거리일때만 가능한데, 멀리 있는 사람에게는 아무리 악장 중간에도 전달이 어렵기 때문이다. 게다가 나처럼 호전적(…)인 성향과는 반대인 사람은 낯선 이에게 이런 말을 꺼내기가 쉽지 않을 수 있으며, 가장 중요한 점은 상대를 봐가며 해야 한다는 것이다. 카타스트로피의 아우라를 풍기는 관크에게 말을 걸어봐야 이 말티즈 방법은 더 큰 화를 불러올 뿐. 그럴 때엔 다음 방법이 있다.
-하우스어셔 : 상대가 말이 안통해보이거나 이미 말로 했을 때에도 개선이 안될 때. 그러나 사실 이미 말티즈법을 쓴 이후라면 어셔분의 도움도 소용이 없는 경우가 많으며, 정말 자리를 옮겨야 할 최악의 때에만 이용을 권한다.
-그 밖에 : 가장 최후의 방법은, 대처법이라고 하기에도 뭐하지만 필터링, 이른바 걸러듣기이다. 들리는 소음을 안들리는 것처럼 하는 것은 아니고, 그 소음도 음악의 일부로 만들어보는 작업이라 하겠다. 마치 존케이지라도 된 양, 악기들의 아름다운 소리 사이에 저 패딩소리를 넣어보는 것이다. 핸드폰소리를 피처링으로, 프로그램북 떨어트리는 소리를 타악기처럼 여겨보는 것이다. 그렇다. 정신승리 하란 말을 길게 써봤다.
3. 마치며
처음 임윤찬의 피아노를 듣기 위해 5년전 경기도 광주의 공연장을 찾았던 날, 지역민들에게 초대권이 많이 풀렸던 탓일지 어린 관객들이 정말 많았다. 내 뒷줄 전부가 초등학생들이었는데 쉴새없이 떠들고 의자를 차는 애들에게 부탁도 해보고 눈으로 욕도 해보았지만 아무 소용이 없었다. 앵콜에서까지 여지없이 우하하 소리를 내며 웃는 남자애가 너무 미워 지금 생각해보면 웃기지만 어쨌든 나도 모르게 눈물이 막 났다. 믿을 수 없겠지만 정말 쪽팔리도록 눈물을 뚝뚝 흘리며 울었고, 다 큰 어른이 우는 얼굴로 뒤를 돌아보며 노려보니 그제서야 애들이 조용해졌지만 이미 1부는 다 끝난 뒤였다. 그날 밤 꿈에 그 통통한 남자애가 나왔다. 그날의 눈물은 말티즈로 진화하기 위한 통과 의례였다 하겠다. 그 매콤짭짜름한 눈물 끝에 깨달았다. 내내 괴로워할 바에 창피하거나 두려워도 빨리 해결하자. 그 뒤로 나는 항상 주변에서 심하게 방해되는 행동을 하는 사람이 있으면 딱 세번을 참고 기다렸다가 네번째에 말한다. 죄송한데요 선생님. 그것도 안되면 어셔분들께 부탁하자. 그마저도 안된다? 그럴땐 소음을 받아들이자.
이 길고 긴 글의 요지는 무슨 시체관극을 권장하고자 함도 아니요, 관크를 척결하자는 홍건적스러운 궐기문도 아니다. 재미로 써내려간 글이 재미없는 수준으로 길어져서 문제일 뿐, 그저 지난 몇년간 공연장에서 다양한 소란을 겪으며 내가 느낀 바를 한번쯤은 적는 것이 좋을 것 같아 써본 것. 일종의 셀프 살풀이인 셈이다.
이 모든 관크들을 겪으며 내가 지나치게 예민해서는 아닌가, 나란 놈이 너무 피곤한 타입인건 아닐까 자기검열도 끝없이 해보았다. 그러나 적지 않은 돈을 지불하고 무언가를 ’들으러‘ 집중하는 상태에선 온갖 소음에 예민한 것이 당연지사. 그러므로 혹시라도 이 글을 읽는 누군가가 있다면, 이 말을 전해주고 싶다. 당신은 예민폐가 아닙니다. 우리의 예민함은 유난이 아니라 애정의 증거에요. 잘 들으려다보니 엉뚱한 것도 들리는 거죠. 그러니 우리 기꺼이 말티즈도 되고 존 케이지도 되봅시다. 관크에 휘둘려 소중한 공연의 기억을 망치지 맙시다. 그럼, 공연장에서 만나요 우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