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치에 떨어진 햇살을 줍는 일
호시절이라는 단어에는 기본적으로 그 안에 서글픔이 들어있다. 좋은 시절 같은 건 이 지루하고 긴 삶에서 몇 안되는 짧은 순간이며, 다시 올 수 없기에 그것은 종종 회상되고 이내 그리워하게 되는 찰나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니까 좋은 시절을 보내면서도 어딘지 괜스레 슬퍼지는 건, 말하자면 그 순간의 행복에 보내는 나만의 찬사 같은 거였다. 이런 기쁜 순간은 자주 오지 않는다는 걸 본능적으로 깨달아버린 애늙은이는 한참 어린 나이서부터 벅찬 날의 끝에는 항상 이 날을 나중에 기어코 다시 떠올릴 나를 떠올리곤 했다. 그리고 정말 그 생각대로 됐다.
그래서 나의 호시절은 언제였던가를 생각해보면, 누군가의 그것처럼 화려하고 번듯하게 뭔가를 이뤄내고 한 적이 떠올려지지가 않았다. 이게 다인가? 나이를 먹고 나서는 아찔해지는 마음에 막 겁도 났다. 그렇게 한동안 나의 진짜 호시절은 오지 않았기를 바랬다. 그럼, 아직 오지 않은거야. 그래야 앞으로 올 날들 중에 진짜배기 호시절이 있을거라고, 그런 기대가 없이는 매일이 너무 남루해서 견딜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치만 그런 때도 지나 이제는 다시 생각한다. 어쩌면 호시절 같은 것은 없어도 좋겠다고. 애초에 뭔가를 이루려는 포부같은 것도 없는 작은 그릇의 나여서 드는 마음이란 것도 잘 알지만은, 대단한 ‘호(好)시절’은 없어도 그냥 작고 평온한 ‘안(安)시절’ 이나, 그렇저럭 적당한 ‘양(良)시절’ 정도만 있어도 좋겠다고. 누군가 이런 날 보고 많지 않은 나이에 뭘 이뤄보지도 않고 왜 포기하는 듯한 소리냐고, 진짜 이렇다할 호시절이 없는 사람의 정신승리라고 비웃는다 해도 별 수 없다. 정말 내가 앞으로, 아주 한참 뒤에도 ’그때가 좋았지‘ 라고 떠올릴 날들은 대단한 날들이 아닐 것이다. 대단한 날들이 아니었으면 좋겠다. 매일을 호시절로 여기는 마음. 이것이 빛나는 호시절보다도 정말 내가 갖고 싶은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