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프로젝트 헤일 메리>를 보고
영화 <프로젝트 헤일 메리>를 보는 내내 주인공 그레이스의 모습에서 자꾸만 강아지가 겹쳐 보였다. 옛 소련에서 우주로 쏘아올린 떠돌이개 ‘라이카’ 말이다. 주인이 없는 유기견이며 순종적이라는 이유로 인간을 대신하는 실험대상으로 적합 판정을 받은 라이카. 그레이스 역시 같이 사는 식구는 커녕 심지어 기르는 개마저 없으며, 프로젝트를 잘 이해하고 있다는 이유로 강제 징용된다. (이 사실이 이야기의 꽤 후반부에 등장한다는 것이 이 영화의 백미이다. 우리의 영웅은 사실은 영웅이 될 맘이 없던 것이다!) 그렇게 21세기 ‘인간 라이카’는 울고불고 안간다고 도망쳐도 소용없이 머리통을 얻어맞고 주사도 맞고 우당탕탕 우주로 보내졌다. 누구 하나 그를 위해 울어줄 이 없는, 기댈 곳 하나 없는 천애고아같은 그에게 희생을 종용하는 인류의 공리주의적 잔인함은 냉전이 한참 지난 지금에도 별로 달라진 것이 없어 이렇게나 여전히 징그러울 따름이다. 인류 구원이라는 거창한 명분 아래, 돌아올 기약도 없이 차가운 우주선에 실려온 그레이스. 나의 희생을 강요하는 식구는 식구가 맞는가. 그런 곳을 과연 집이라 부를 수 있을까.
그렇게 등떠밀려온 우주에서 인간 라이카는 처음으로 진정한 동반자를 만난다. 월-E와 이티를 합쳐놓은 듯한 외모에, 우리보다 작고 무해하여 어딘가 애완동물을 연상시키는 사랑스러운 캐릭터의 클리셰란 클리셰는 다 갖춘 로키. 어느 별에서 왔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이 끝없는 보이드 속에서 내가 기댈 것은 이 돌덩어리 같은 생면부지의 존재뿐이다. 게다가 유머코드까지 맞다니! 각자의 별을 구하자는 목표 아래 생사고락을 함께하며, 로키는 그레이스가 누구에게도 준 적도, 받은적도 없는 ‘조건 없는 헌신’을 보여준다. 제 몸이 타들어 가도록 목숨을 다해 친구를 구하려는 이 생명체의 모습에서, 살아 있는 모든 것들은 결코 혼자 살 수 없다는 너무나 당연한 진리를 떠올린 것은 나뿐만이 아닐 것이다. 자꾸만 쏟아지는 눈물은 말할 것도 없고.
영화를 보고 집으로 돌아오는 내내 이 우주같은 삶에서 나와 함께해주고 나를 위해 기꺼이 몸을 던져줄 로키같은 존재가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를 생각했다. 그러다가 문득, 나는 누군가에게 로키가 된적이 있나를 떠올려보았다. 아니, 그럴 수는 있나. 등떠밀려서가 아니라 정말 재고 따지는 것 없이 누군가를 위해 몸을 던질 수 있나. 서로 언어를 나누는 과정 중에 그레이스는 로키에게 타인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 바보 같은 짓을 ‘dumb(바보 같은)’이라고 말한 뒤, 이내 컴퓨터에 기록할때에는 ’brave(용감한)’로 고쳐 적어 둔다. 사랑에 있어 이 둘은 완벽한 동의어다. 우리의 사랑은 늘 알면서도 어리석은 일을 자처하지 않던가. 스스로의 의지로 모든 것을 무릅쓰는 일. 그레이스는 마지막에 지구로 돌아갈지, 친구를 구할지를 결정함에 있어 둘 다 할수는 없다고 말한다. 이것이 인생의 핵심이다. 모든 걸 만족시키는 건 이세상에 아무것도 없다. 우리는 언제나 기어이 선택을 해야 하는 것이다. 그렇게 또 한번의 갈림길에서 이 똑똑한 멍청이는 집을 버리고 네모진 얼굴의 친구를 택한다. 약아빠지게 사랑하고 닳고 닳은 마음만이 남은 나는, 그런 용기있는 바보가 될 수 있을까.
기꺼이 나의 궤도를 수정해 당신을 향해 나아가는 것. 그렇게 나는 세상을 구하는 거창한 영웅이 아니라, 단 한 사람의 우주에서 끝까지 남아 있는 존재가 된다. 너른 공허같은 고독 속에서 서로의 손을 맞잡을 때. 그 찰나의 연대야말로, 우리같은 우주 미아들이 이 삭막한 생을 버텨낼 수 있는 유일한 구원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