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아하는 마음만으로는 붙잡을 수 없는 것에 대하여
이 글은 실제 있었던 일을 바탕으로 하지만, 특정인을 짐작할 수 없도록 일부 설정은 각색되었습니다.
그날은 내 7년 덕질 인생 중 최악의 날 중 하나였다.
누군가에겐 별일 아닐 수도 있지만, 나에게는 이별을 결심하게 된 결정적인 사건이었다.
그날 이후로 마음 한편에 커다란 금이 가기 시작했고, 그 틈은 메울 수 없을 정도로 더 깊어져만 갔다.
우리는 공연이 끝나면 늘 그 사람을 기다렸다.
반갑게 인사하고, 소소한 대화를 나누며 사진을 찍고, 사인을 받았다.
덕질의 가장 큰 즐거움, 바로 ‘퇴근길’ 시간이었다.
특별한 일이 없는 한 나는 언제나 그 자리에 있었다.
가끔 우리가 보이지 않으면, 그 사람이 먼저 나와서 우리를 찾을 정도였다. 그건 누가 먼저 말하지 않아도, 우리가 변함없이 지켜온 암묵적 약속이었다.
그는 우리가 늘 기다린다는 걸 알면서도 그날따라 좀처럼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평소 30분 안에 나왔던 사람이 1시간, 2시간이 지나도록 나타나지 않았던 것이다.
포기하고 돌아서려던 순간, 급하게 연락이 닿았다.
부랴부랴 꽃과 선물을 챙겨 달려간 곳에는, 미안한 표정으로 그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한없이 다정한 눈빛에 마음이 녹아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돌아섰지만, 며칠이 지나도록 화는 풀리지 않았다.
그날의 그는 내가 5년 넘게 본 모습들 중 가장 따뜻했지만, 내 마음은 어느새 말없이 식어가고 있었다.
나는 왜 화가 났던 걸까?
단순히 3시간을 기다려서가 아니었다.
내가 가장 사랑하는 사람이, 내가 가장 용납하기 어려운 마지노선을 넘었기 때문이었다.
시간이 지나며 격한 감정은 누그러졌지만, 대신 그 자리에 관계의 본질을 묻는 질문만이 또렷이 남았다.
나는 대체 무엇을 위해 이렇게까지 달려왔던 것일까?
사실 팬과 가수의 관계는 생각보다 단순하고 명확하다.
‘내가 손을 놓는 순간, 모든 건 끝난다.’
이 관계의 시작도, 끝도 결국 팬인 나의 선택에 달려 있다.
내가 공연장에 가지 않는다면, 그는 평생 나를 만날 수 없다.
내가 먼저 다가가지 않으면, 그는 나를 알 수도, 내 존재를 느낄 수도 없다.
하지만 사랑 앞에선, 이 단순한 진실도 쉽게 잊혀져 버린다.
나는 비용을 지불하여 그의 음악과 공연을 ‘구매’한다.
그는 그 대가로 그의 매력과 환상을 ‘판매’한다.
소비자는 나고, 선택권 역시 나에게 있으니, 주도권은 내가 쥐고 있는 셈이다.
엄밀히 따지자면, 나는 이 관계에서 ‘갑’이다.
그런데 왜 나는 ‘을’처럼 행동했던 걸까?
왜 더 많이 좋아한다는 이유만으로, 늘 참고, 감당하고, 스스로를 갉아먹었을까?
내가 손을 놓아도 그 사람은 아무런 손해도 입지 않는다. 내 자리는 언제든 다른 누군가로 다시 채워진다. 그건 당연하다.
하지만 나는 다르다. 나는 모든 걸 잃는다.
그 사람에겐 내가 수많은 팬 중 하나일 뿐이지만, 나에게는 아니었다.
함께한 많은 시간이 이미 내 삶의 전부가 되어버려서, 나는 자존심이고 체면이고 다 내려놓은 채 그를 절박하게 붙잡고 있었다.
더 많이 사랑하는 쪽이 약자가 되는 건, 이 관계에서도 예외는 아니었다.
그날 밤늦게 돌아가는 길에 지하철 탈선 사고로 역에 고립될 뻔했다.
다행히 방송을 일찍 듣고 상황을 파악한 뒤, 재빨리 역을 빠져나와 택시를 타러 나가던 중,
문득 강한 허탈감이 밀려왔다.
‘나, 지금 뭐 하는 거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