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과 상처가 공존하는 날들
이 글은 실제 있었던 일을 바탕으로 하지만, 특정인을 짐작할 수 없도록 일부 설정은 각색되었습니다.
갑자기 신곡이 나왔다.
아무런 예고도, 홍보도 없었다.
팬카페에도, SNS에도, 아무것도 없었다.
전날 밤, 인스타 스토리에 올라온 단 한 줄.
“내일 오후 6시, 신곡 발매”
그게 전부였다.
그 사람의 소식을 놓치다니,
다른 팬도 아닌 내가 그럴 리 없었다.
뭔가 아주 크게 잘못되었다.
2년 만에 나오는 앨범인데, 이럴 수는 없었다.
설마 하며 들어봤다.
믿을 수 없게도, 너무 별로였다.
지금까지 나온 곡 중에 단연코 최악이었다.
몇 년 전부터 그의 음악이 방향을 잃고 있는 걸 느끼고는 있었지만, 이건 아니었다.
실망스럽다 못해 화가 났다.
그러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 사람, 나한테 대체 왜 이러는 거지?’
아주 조심스럽게, 메시지를 보냈다.
팬들을 배려하지 않은 신곡 발표 과정에 대한 아쉬움을 담아, 최대한 완곡하게 내 의견을 전했다.
그 사람을 깎아내릴 생각은 없었다.
단지 지금의 이 무심함이 계속되면
그동안 쌓아온 모든 게 무너질지도 모른다는 신호를,
나라도 보내야 할 것 같았다.
하지만 반응은 없었다. 변한 것도 없었다.
그러려니 했다. 그럴 수 있다.
그리고 한 달 후, 연말까지 이어지는 장기 프로젝트 공연 소식이 들려왔다. 바닥까지 떨어진 실망과는 별개로, 남아있는 애정 때문에 아주 조금이나마 기대를 품었던 것 같다.
하지만 티켓팅 당일,
사전 안내 없이 티켓이 오픈되었다.
공연 구성, 좌석 배치, 이벤트 등 아무것도 공개되지 않았다. 팬들이 알 수 있었던 건 티켓팅 페이지 오픈 시간뿐이었다. 예정되었던 이벤트 상품은 어디로 간 건지, 공연 진행 방식 역시 아무도 알지 못했다.
사전 공지가 전혀 없었기 때문이었다.
소속사는 책임을 티켓 예매처에 돌리기 바빴고,
팬들에게 최소한의 설명조차 하지 않았다.
그날, 그동안 쌓아왔던 모든 신뢰와 기대는 처참하게 무너져 내렸다.
이성을 잃을 만큼 격한 분노가 온몸을 휘감았고,
산산조각 난 마음은 갈기갈기 찢어져 바람에 흩날렸다.
더 이상 붙잡을 힘도, 버틸 이유도 없었다.
괜한 문제를 만들기 싫어 여태까지 웬만한 일은 그냥 넘겨 왔다.
하지만 이번만큼은 달랐다. 선을 넘어도 너무 심하게 넘었다.
수년 간 눌러왔던 감정들이 한꺼번에 터졌다.
나는 그날,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팬카페에 글을 올렸다.
더는 참을 수 없었다.
침묵은 그저 비겁함의 다른 이름일 뿐이었다.
글을 올리고 나서도, 마음은 쉽게 정리되지 않았다.
남은 건 여전히 뒤엉킨 감정들과, 깊은 회의감뿐이었다.
이제는, 이 관계가 나에게 남긴 본모습을 마주할 시간이었다.
부서진 마음을 미처 다 추스르지도 못한 채, 다음날 그 사람을 만났다.
카페에 올린 글 이야기가 자연스레 흘러나왔고,
그는 무심한 듯 말했다.
“너도 알다시피 나 그렇게 깊게 생각하는 사람 아니잖아.”
그 말 한마디로, 모든 게 끝났다.
그제야 확신했다.
내가 알던 그 사람은, 이제 없다는 것을.
내 앞에 존재하지만, 더 이상 다가갈 수 없을 만큼 멀어지던 순간.
한때는 성실하고 현명한 사람이라 믿었다.
하지만 그건 내가 보고 싶은 모습을 그 사람에게 투영했던 환상에 불과했다.
처음부터 갈등을 회피하고,
문제를 직면하지 않는 사람이었다.
그저 무심히 남의 뒤에 숨어,
자신을 향한 진심을 짓밟는 사람.
모든 환상과 남아있던 기대마저 완전히 부서져 흩어졌다. 그저 싸늘한 현실 속, 그 사람만 내 앞에 서 있을 뿐이었다.
공연장은 이제 더 이상 행복한 공간이 아니었다.
그저 의무감으로 가는 곳이 되었고, 그조차도 점점 버거워지기 시작했다.
몇 달 동안 끝없이 고민했다.
붙잡으려는 마음과, 놓아야 한다는 현실 사이에서 수없이 갈등했다.
싸움은 생각보다 길고, 지독하게 소모적이었다.
아직도 그를 완전히 미워하지는 못했다.
모든 걸 단숨에 부정하기엔, 함께 했던 추억들이 너무나도 많았다.
하지만 결론은 같았다.
더 이상 내 마음을 방치할 순 없었다.
한꺼번에 끊어내는 대신,
집행유예라는 이름 아래에 잠시 내려놓기로 했다.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