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대체 뭐라고
이 글은 실제 있었던 일을 바탕으로 하지만, 특정인을 짐작할 수 없도록 일부 설정은 각색되었습니다.
소속사 측의 사과와 재발 방지 약속으로 사건은 일단락되었다. 문제는 해결된 ‘것처럼’ 보였지만, 내 마음은 전혀 그렇지 않았다.
무언가 분명히 잘못되었는데, 도대체 어디서부터 어긋난 것일까?
하나로 정의할 수 없는 수많은 감정들이 뒤엉켜 끝없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몇 달 동안, 스스로에게 끝없는 질문을 던졌다.
‘나는 정말 이 사람을 떠나야 하는 걸까?’
‘이 사람은 몇 년 동안 내 전부였는데.’
‘가족보다 자주 보고, 친구보다 더 의지했던 사람이었는데.’
‘내가 이 사람 없이도 잘 살 수 있을까?’
수많은 장면들이 스쳐 지나갔다.
처음 음악을 들었던 순간, 첫 공연의 떨림, 처음 내 이름을 불러준 날, 처음 손을 잡던 날.
관객 사이의 나를 보며 환하게 웃던 그 미소, 무심코 튀어나오던 편안한 말투까지...
그 사람은 분명 그대로인데,
이상하게도 내 마음은 점점 멀어져 가고 있었다.
그 모든 기억이 너무 선명하고 찬란해서,
지금의 실망이 더 견디기 어려웠다.
마음은 산산조각 났고, 상처는 좀처럼 아물지 않았다.
이별은 현실로 다가오고 있었다.
이미 답이 정해져 있는 고민이었지만,
막상 결정을 실행에 옮기려니 두렵고 외로웠다.
이별의 슬픔을, 그 상실감을 내가 온전히 감당할 수 있을까.
무엇으로도 채워지지 않는 그 빈자리를 안고, 내가 살아갈 수 있을까.
도저히 자신이 없었다.
그 사람 없는 삶을 단 한 번도 상상해 본 적 없었고,
내가 먼저 손을 놓는다는 건 애초부터 불가능한 일이었으니까.
그렇게까지 마음을 쏟아부었는데, 결국 아무런 의미도 없었다.
머리를 싸매고 고민하고, 싫은 소리를 나서서 할 정도로 애써보았지만, 나 역시도 그저 일개 팬일 뿐이었다.
스쳐 지나가는 찰나 같은 인연에, 나 혼자만 너무 많은 걸 걸고 있었던 건 아닐까?
내가 뭐라고.
내가 대체 뭐라고.
도대체 내가 무슨 자격으로 이 문제를 해결해 보겠다고, 저 사람을 바꿔보겠다고 그렇게까지 애썼던 걸까.
한참 빠져있을 땐 깨닫지 못했던 나의 현실적인 위치가 이제야 온몸으로 처절하게 느껴졌다.
시작도 끝도 키는 내 손에 있지만,
그 모든 뒷감당 역시 온전히 내 몫이었다.
고민만 하고 있던 어느 날,
눈부신 하늘을 등지고 걸어오는 그를 바라보다 문득 마음이 저릿해졌다.
나는 날이 갈수록 작아지고 있는데, 그는 여전히 찬란하게 빛나는 것 같았다.
미련에 발이 묶여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내가 한없이 초라하게 느껴졌다.
‘내가 없으면, 이 사람이 더 빛날지도 모르겠다.’
‘놓아줘야 할 시간이 곧 오겠구나.’
그 사람을 위해 아낌없이 퍼주던 내 마음의 우물이 어느새 바닥을 드러내고 있었다. 물은 더 이상 차오르지 않고, 감정은 모두 고갈되어 더 이상 그에게 줄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었다.
시리도록 아팠지만, 이제는 놓아줘야만 했다.
행복해지고 싶어서 시작한 덕질이었다.
그를 사랑했던 시간들, 무대를 쫓던 날들, 그의 모든 순간을 함께하고 싶던 마음까지.
그 어떤 것도 나에게 더 이상 위안이 되지 못했다.
그건 너무나도 확실했다.
행복만 하던 그 시절로 두 번 다시는 돌아갈 수 없었다.
고민의 끝이 다가왔다.
외면할수록 나는 점점 무너져갔다.
나는 나 자신을 지켜야 했다.
결정을 내려야만 했다.
내겐 너무 특별했던 그 사람을,
이제는 추억으로 남겨야 할 때가 되었다.
마음의 준비를 마친 뒤, 조심스럽게 펜을 들었다.
내가 견뎌온 감정의 무게, 버텨온 시간,
그리고 내가 그 사람을 진심으로 사랑했던 그 모든 마음에 예의를 표하고 싶었다.
그렇게, 나는 마지막 편지를 쓰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