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심을 외면한 죄, 집행유예는 끝났다
이 글은 실제 있었던 일을 바탕으로 하지만, 특정인을 짐작할 수 없도록 일부 설정은 각색되었습니다.
시간이 필요했다.
어떤 선택을 하든 그 선택에 후회하지 않기 위해서.
그리고 그 시간이 모두 지난 뒤,
나는 망설임 없이 펜을 들었다.
얼마나 걸렸을까?
일곱 장의 편지를 쓰기 위해 걸린 시간이.
하루에도 수십 번씩 메모장을 들여다보며 고치고 또 고쳤던 말들.
요즘 공연을 보는 내 심정이 어떤지, 어떤 게 아쉽고, 어떤 고민을 하고 있는지.
몇 주 동안 수정하고 또 수정했다.
오해하지 않도록, 상처 주지 않도록.
그러나 내 생각이 흐려지지 않도록.
한 자 한 자 정성껏 눌러 적은 일곱 장의 편지.
손목이 바스러질 것 같아도 포기할 수 없었던,
진심이 담긴 글자들.
다 써놓고 보니 이건 이별의 통보가 아니었다.
그에게 주는 마지막 기회였다.
내가 고민한 만큼, 그도 한 번쯤 스스로를 돌아봐주길 바랐다.
편지를 가장한 비판과 쓴소리였지만,
누군가는 한 번쯤 꼭 해야 할 이야기였다.
그 사람도 알 건 알아야 한다.
할 말은 다 해야 나중에 미련 없이 떠날 수 있을 것 같았다.
함께한 시간 내내 진심을 다했기에, 쉽게 이별을 꺼내고 싶지 않았다.
나는 단 하루라도 더 오래 그 사람을 보고 싶었으니까.
내 소중한 추억에게도 건강한 이별을 선물하고 싶었다.
이건 나를 지키기 위한 선택이자,
그와 나누었던 시간에 대한 마지막 예의였다.
조심스럽게 편지를 건넸다.
살짝 흔들렸던 눈빛을 본 것 같았지만, 그건 착각이었겠지.
편지는 내 손을 떠났고, 선택은 그의 몫이었다.
Nothing.
아무 말도 없었다.
읽었다는 건 표정으로 알 수 있었지만, 그뿐이었다.
피드백은커녕, 잘 읽었다는 인사조차, 정말 단 한마디도 없었다. 생각할 시간이 필요할 수도 있겠다는 얄팍한 기대도 했었지만, 역시나였다.
많은 시간 고민하며 조심스럽게 꺼낸 진심을 마치 애초에 존재하지도 않은 것처럼, 그는 끝내 어떤 답도 하지 않았다.
그 사람은 내 진심을 ‘읽씹’했다.
마지막으로 내뱉는 간절한 외침 역시 외면했다.
그 후 3개월, 아무것도 달라진 게 없었다.
오히려 그의 무심함만 더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선물을 건네도 무덤덤했고, ‘고맙다’는 말조차 의무처럼 내뱉었다.
그 고맙다는 한 마디가 뭐가 그렇게 어렵다고.
시큰둥한 인사, 무성의한 태도, 뒤도 돌아보지 않고 떠나는 모습까지.
애써 붙들고 있던 인내심도 전부 바닥났다.
그 사람 앞에서 더 이상 웃음이 나오지 않았고, 애정은 흔적 없이 사라졌다. 남은 건 차가운 시선뿐이었다.
답장의 의무가 없다는 것도, 반응을 기대하면 안 된다는 것도 잘 안다. 하지만 나의 마음이 누군가에게 그저 듣기 싫은 잔소리로 치부되었다는 사실은, 생각보다 큰 회의감과 환멸을 불러일으켰다.
모든 게 분명해졌다.
이 사람은 내 진심에 응답할 생각조차 없었다.
문제를 직면하기는커녕,
저열하게 회피하는 데만 급급했다.
그 침묵이 곧 대답이었다.
그걸로 충분했다.
나는 할 만큼 했다.
남아있던 미련까지 모두 사라졌다.
나를 존중하지 않는 사람에게 ‘좋아한다’는 이유로 더는 매달리지 않을 것이다.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스스로를 깎아내리는 일도 이제 끝이다.
진심을 가볍게 여기는 사람에게, 더는 마음을 줄 이유가 없다.
그 사람은 내 사랑을 받을 자격이 없다.
그에게 주었던 집행유예의 시간,
나는 스스로 그 끝을 선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