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침표를 찍는 담담한 마음
이 글은 실제 있었던 일을 바탕으로 하지만, 특정인을 짐작할 수 없도록 일부 설정은 각색되었습니다.
늘 가던 곳이었지만, 그날의 공연장은 유난히도 낯설게 느껴졌다. 마지막을 예감하는 향하는 발걸음은 그저 무겁기만 할 뿐이었다. 10년의 추억을 접는 일은, 생각보다 훨씬 더 복잡하고 어려웠다.
그런 일은 절대 일어나지 않으리라는 걸 알면서도, 그 사람이 조금이라도 달라져 있기를 아주 잠깐 바라기도 했다.
이별을 조금만 더 뒤로 미루고 싶었다.
헤어지는 일은, 너무 버겁고 힘드니까.
하지만 역시나, 기대한 내가 바보였다.
내 진심은 철저히 무시당했고, 그의 시선은 단 한 번도 나에게 닿지 않았다. 두 시간 내내, 그는 관객석 중앙의 모니터만 바라봤다. 눈앞의 진심은 안중에도 없었고, 그저 화면 속 가사에 쫓기듯 노래할 뿐이었다.
그 순간, 정신이 번쩍 들었다.
나는 지금 이 공연을 ‘감상’하는 게 아니라,
‘감시’하고 있었다.
가장 좋아하는 곡 앞에서도 더 이상 아무런 감정이 느껴지지 않았다.
이제 정말 끝내야 하는구나.
조금이라도 더 오래 붙잡으려고 노력했지만, 나에게 그런 기적은 허락되지 않았구나.
몇 달 전부터 몸과 마음이 전부 무너져 있던 나는, 그 마지막 무대에 특별한 의미를 부여할 여유조차 없었다.
10년 간의 덕질을 마무리하는 순간이었지만, 그저 그 자리를 버티고 있는 것만으로도 숨이 턱 막혀왔다.
모든 게 끝났다는 사실에 집중할 힘도 남아있지 않았고, 지친 마음을 붙잡은 채 그저 공연이 끝나기만을 기다릴 뿐이었다.
공연이 끝났다.
말없이, 아무도 모르게 사라지고 싶었다.
하지만 그럴 수 없었다. 오랜 시간 함께한 친구들이 곁에 있었기 때문에.
그리고 무엇보다도...
나는 이별의 순간을 단 몇 분이라도 더 늦추고 싶었다.
그를 기다리는 짧은 시간 동안, 수많은 생각들이 스쳐갔다.
나는 왜 이렇게까지 되어버린 걸까?
나는 무엇 때문에, 이 사람을 위해 내 인생을 걸었을까?
분명 아쉬운 건 저 사람인데, 왜 매번 나만 이렇게 아플까?
혹시 이번에도 침묵하고 넘어갔다면, 조금은 더 오래 이 자리에 남을 수 있지 않았을까?
서글프고 씁쓸하고 안타까웠다.
내가 직접 이별을 고해야 하는 이 현실이.
먼발치에서 그 사람을 바라보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내가 정말 사랑했던 건 ‘저 사람’이었을까, 아니면 그에게 마음을 주던 ‘나 자신‘이었을까? 어쩌면 나는 사랑이라는 감정을 ‘이용’했던 건 아닐까?
살기 위해 매달렸던 그 감정 때문에 내가 망가지고 있었다는 걸 이제야 깨닫게 되었다.
“고생하셨어요.”
담담한 말투로, 그 사람은 모를 마지막 인사를 건넸다.
진짜 하고 싶은 말은 따로 있었다.
“사실 내가 고생했어요, 나 너무 힘들었어요.”
하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이미 마음은 떠났고, 더는 이 사람과 얽히고 싶지 않았다. 입을 여는 순간, 쌓아둔 서운함이 터져 나올 것만 같았다. 그래서 참았다. 저 사람을 위해.
그래도 10년 간 나를 버티게 해 준 고마운 사람이니, 좋은 추억으로 남겨두고 싶었다.
내가 떠난다는 걸 굳이 알릴 필요도 없었다.
우리는 그런 이야기를 나누는 게 허락되지 않은 사이니까.
그래서 덤덤하게,
나를 위해서,
이 관계의 마침표를 찍었다.
그 사람은 내 감정을 책임질 수 없었다.
사랑에 빠진 것도, 이별을 선택한 것도, 모두 내 몫이었다. 아무리 사랑했어도, 그 사랑이 날 아프게 한다면 떠나는 수밖에 없었다.
모든 마음을 내려놓은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은,
아름답게 퇴장하는 것이다.
나는 단 한 번도 진심이 아닌 적이 없었다.
떠나는 그 순간까지도.
그 누구도 대신할 수 없었던, 내 사람.
안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