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 부서진 조각들을 주워 담으며

침묵은 비겁하니까

by 렌토


여전히 누군가는 의문을 가질 것이다.

그리고 나 스스로도 늘 이 의문을 안은 채 키보드 앞에 앉는다.


왜 나는 이 글을 쓰고 있을까.

왜 이제 와서 직접 겪지도 않은 일에 이렇게 열을 내며 다 끝난 일을 들쑤시고 있을까.


한동안 그는 나에게 쳐다보기도, 떠올리기도 싫은 이름이었다. 그래서 일부러 더 외면했다.

떠올릴수록 상처를 스스로 헤집는 것 같아 괴로웠고, 어리석었던 과거의 내 선택이 떠올라 자괴감이 들었다.


팬의 마음이 식으면 모든 것은 끝난다.

얇디얇은 인연 한 줄 붙잡고자 이렇게 기록을 남길 필요까지는 없다고, 그저 흘려보내면 된다고 스스로를 설득했다.

10여 년의 시간이 모두 담긴 사진, 영상, 음성파일, 일기장까지.

버릴 수 있는 기록은 모조리 다 버렸다.

나라는 팬이 존재했다는 사실조차 찾기 힘들 정도로 최선을 다해 내 흔적을 지워냈다.


그럼에도 기억은 사라지지 않았다.

내가 지운 건 흔적이 아니라 증거였다.

10년 동안 내가 얼마나 진심을 다해 그를 대했는지, 얼마나 많이 고민하고 괴로워했는지, 그에게 어떻게 기만당했는지.

그 모든 것들을 이제는 기억이 아닌 기록으로 남겨두려 한다.

이 기록이 끝나야, 지독했던 그 시간들을 간신히 추억으로라도 여길 수 있을 것 같다.


기회가 없었던 건 아니다.

하지만 바빠서, 마음의 준비가 되지 않아서, 다시 떠올리고 싶지 않아서 등 여러 핑계를 대며 미뤄왔다.


그러나 모든 내막을 알게 된 지금, 나는 그들처럼 침묵하거나 방관하지 않기로 결심했다.

과거의 상처들과 마주해도 아프지 않은 지금.

바로 지금이 일기장 속, 우리의 기억 속 문장들을 밖으로 꺼낼 때다.

드디어 누군가에게 휘둘리지 않는 내가 오롯이 나의 이야기를 풀어낼 시간이 되었다.



이 글은 그에게 10년을 기만당한 내가 할 수 있는 조용하지만 유일한 복수이다.

지금부터 나는 부서진 마음의 조각들을 주워 담아

못다 한 이야기를 시작한다.

목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