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요할 때만 깨어나는 선택적 기억력의 소유자
이 글은 실제 있었던 일을 바탕으로 하지만, 특정인을 짐작할 수 없도록 일부 설정은 각색되었습니다.
나는 단순히 그가 내 이름을 기억해주지 않는 거에 대한 서운함 때문에 그를 떠난 것이 아니다.
가장 큰 문제는 그가 나를 포함한 팬 전체를 대하는 태도였다.
그 사람은 애초부터 기본이 안 되어 있었다.
오래된 팬의 이름조차 기억하지 못한 건, 그 수많은 면모 중 하나일 뿐이었다.
팬과 가수의 관계는 근본적으로 불균형하다.
팬은 가수에 대해 많은 걸 기억하지만, 그에 비해 가수가 알 수 있는 건 얼굴과 이름 정도에 불과하다.
이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나는 많은 걸 해야 하지만, 그는 그 한 가지만 하면 된다.
그렇기 때문에 이름은 그 불균형 속에서 우리가 받을 수 있는 최대의 존중이다.
이름이 기억된다는 건 팬에게는 너무나도 큰 의미이다.
수많은 사람 속 스쳐가는 존재가 아니라, 오롯이 나 자신으로 그의 기억에 자리 잡고 있다는 확신이자 희열이다.
내가 여기에 있고, 나 자체로 존중받고 있음을 느끼는 것. 그거보다 더 큰 선물이 팬에게 있을까?
공연에서 마주친 횟수는 수백 번, 손수 적었던 이름만 수십 번. 그럼에도 그의 기억 속에 내 이름은 단 한순간도 남지 않았다.
보통 사람이라면 몇 번만 스쳐도 이름은 기억하게 되는데, 매일 보는 열 개도 안 되는 이름 외우는 게 그렇게 어려웠을까.
나는 그의 이 한 마디로 팬을 대하는 마음가짐을 단번에 꿰뚫어 보았다.
고마움을 모르는 성의 없는 태도, 귀찮음과 무심함, 무능함까지.
어려운 게 아니었다. 그저 귀찮았을 뿐.
그에게 팬이라는 존재는 애정을 담을 가치가 없었던 것이다.
나중에서야 알게 된 사실이 있었다.
그는 자신에게 필요하다고 여긴 팬의 이름만큼은 확실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나는 그 사람에게 유용하지 않았기에, 내 이름은 기억할 필요가 없었다.
존재는 했지만, 존재감은 없었던 ‘쓸모없는 팬’.
내 가치는 그에게 겨우 그 정도였을 뿐.
그가 기본을 갖추지 않았다는 건 무심함과 무능에서 끝나지 않았다.
그의 기억력이 철저히 ‘선택적’이었다는 것을 알았을 때, 모든 의심의 퍼즐 조각들이 한 번에 맞춰져 완성되었다.
이전에 직감했던 무심함, 무성의, 회피형 성향, 무책임까지.
모든 건 착각도, 확대 해석도 아니었다.
그는 처음부터, 원래부터 그런 사람이었다.
이름은 우리의 정체성이랄지 존재감이 거주하는 집이라고 생각해요.
- 조해진, ‘단순한 진심’ 중 -
그의 집을 지키며 많은 걸 바친 사람들이 있었다.
아무 대가도 바라지 않고 그들은 그의 집을 깨끗하게 쓸고 닦았다. 모진 풍파를 견디면서도, 그의 집이 늘 평온하고 따뜻하길 바라는 마음 하나로.
그들이 바라는 건 많지 않았다.
그가 한 번만이라도 애정 어린 마음으로 우리의 집을 바라봐 주는 것. 그것만으로도 충분했다.
힘든 일은 우리만 하면 되니까.
하지만 당신은 우리가 어떤 집에 존재했는지, 단 한 번도 돌아보지 않았다. 무심하게 외면당하는 순간들이 쌓이자, 상처가 깊어진 사람들은 자신의 집을 지켜내기 위해 하나둘씩 떠날 수밖에 없었다.
그는 지금도 모르고, 앞으로도 절대 알 수 없을 것이다.
떠난 이름들의 진심 덕분에, 그의 집이 지금까지 버틸 수 있었음을.
사람 없이 오래 빈 집은 천천히 빛을 잃어 황량해질 일만 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