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산된 다정함, 애정의 유효기간

그에게는 진심도 소모품이었을 뿐

by 렌토

이 글은 실제 있었던 일을 바탕으로 하지만, 특정인을 짐작할 수 없도록 일부 설정은 각색되었습니다.



그는 처음부터, 원래부터 그런 사람이었다.

이 깨달음은 내 잘못이 아니라는 안도감을 주었지만, 동시에 더 근본적이고 핵심을 파고드는 질문을 던지게 했다.

이 사람은 도대체 ’어떤 사람‘일까?

우리가 겪은 모든 이야기로 이 사람을 어떻게 정의 내릴 수 있을까?

시작은 잘못되었지만 결말은 옳았던 우리의 선택의 정당성을 찾아야만 했다. 같은 피해가 더 이상 반복되지 않도록.


누군가 굳이 정의하지 않아도, 많은 사람의 경험과 증언은 늘 하나의 결론으로 귀결되었다.

그는 근본부터 잘못된 사람이었다.






쓰임새가 먼저였던 관계

그가 피곤하다는 이유로 인사 한 마디 없이 차에 들어가도, 연락 없이 나타나지 않아도, 그럴 수도 있겠지 하며 넘겼다. 기본적으로 다정한 사람이라 믿었으니, 스쳐 지나가는 일일 거라 생각했다.


모든 퍼즐이 맞춰진 후에야 보였다.

작업에 도움을 주거나 금전적 지원이 가능한 팬들은 정확하게 기억하고 챙기면서도, 오랜 팬의 이름조차도 잊어버리는 게 어떤 의미였는지.


누구에게는 한결같이 따뜻하고, 누군가(아마도 나)에게는 무심했던 그 불균형에도 결국 이유가 있었다.

그 사람이 팬의 가치를 함께한 시간이 아닌 ‘얼마나 유용한지’로 평가했기 때문이다.


그에게 팬은 ’함께 걷는 존재‘가 아니라, ’나에게 필요한 가치를 제공하는 도구‘였다는 사실을 나는 10년이 넘은 지금에서야 깨달았다.

나 역시 한동안 그의 선택적 다정함에 속았었다.

짧은 몇 개월이었지만, 그가 나를 찾고 나에게 기대던 순간이 분명 있었으니까. 그의 다정함에는 유효기간이 있었다. 내가 쓴소리를 시작하자, 놀랄 만큼 빠르게 멀어지던 그 사람을 떠올려보고 알았다.


그의 기준은 처음부터 일관적이었다.

유효기간이 존재하는 선택적 애정.

그것이 그가 팬을 대하는 방식이었다.



감사할 줄 모르는 사람

팬을 도구로 보는 시각은 자연스럽게 감사의 부재로 흘러갔다.

생각해 보면 당연한 일이다.

도구에게 고마워하는 사람은 없으니까.

그에게 팬은 언제나 자기편이고, 언제든 필요할 때 꺼내쓸 수 있는 존재일 뿐이었다.


누군가의 무조건적인 사랑과 관심으로만 버틸 수 있는 사람임에도, 그는 팬의 소중함을 전혀 알지 못했다. 무대에 설 수 있는 이유가 팬들 덕분이 아닌 오로지 자신의 능력 때문이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내 영광을 위해 너무도 당연히 따라와야 하는 사람들’.

그 영광을 위해 팬들이 얼마나 많은 것을 포기하는지는 애초에 그의 생각회로 자체에 없었다.


그러니 선물이 고마울 리도 없었을 것이다. 무엇을 건네도 늘 미지근한 반응. 표현이 서툰 게 아니라, 고마움 자체가 없었던 것이다.





어리숙해 보였던 모든 행동 뒤에는 언제나 계산이 숨어 있었다. 그 미숙함과 어설픔이 자신에게 이득이 되는 방향으로 짜여진 결과였다는 사실을 깨닫자, 모든 시간이 송두리째 부정당하는듯한 배신감에 아찔해졌다.


모르는 척, 순진한 척 겉모습을 위장한 채

팬의 순수한 사랑을 재고 따지고 가늠했던 사람.

자기 자신만이 중요했던 이기적인 사람.


그런 사람 앞에 우리의 헌신은 그저 소모품이었을 뿐이었다. 우리의 진심은 애초에 그에게 고려대상조차 되지 않았다.

목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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