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심을 쓰이고 버림받은 사람의 이야기
이 글은 실제 있었던 일을 바탕으로 하지만, 특정인을 짐작할 수 없도록 일부 설정은 각색되었습니다.
(이 이야기는 실제 경험을 바탕으로 재구성한 기록입니다.)
그날은 아주 평범한 하루였어.
기억에 남을 것도 없는, 정말 아무 일도 없던 하루.
저녁을 먹으며 휴대폰을 보다가 그 글을 발견하기 전까지는.
사생팬, 법적 대응 고려 중.
순간 이게 대체 누구 얘긴가 싶었어.
그런데 읽다 보니까 거기 적힌 모든 게 전부 내가 했던 것들이더라.
기가 막히지?
팬카페 운영자인 내가,
어느새 사생팬이 되어 있었어.
이렇게 될 줄 알았다면, 시작도 안 했을 텐데.
그런 건 항상 나중에 알게 되더라.
나 역시도 다른 팬들과 다를 바 없었어.
처음 본 순간 한눈에 반했거든.
좋아하는 마음을 멈출 수가 없어서,
사진, 영상, 쇼츠 등 여러 컨텐츠를 만들어서 SNS에 올렸어.
그러던 어느 날, 그가 내 게시물에 좋아요를 누른 거야!
정말 믿기지가 않았어.
이후에 공연장에서도 자주 만나고 DM으로도 소통하기 시작하면서, 우리는 금세 가까워졌어.
그게 비극의 시작인 줄도 모르고,
그때의 난 정신이 아득해질 정도로 행복했었어.
어느 날은 그가 먼저 전화번호를 주더라. 내가 센스 있어 보인다고, 활동에 도움 될만한 아이디어를 달라고 하면서 말이야.
그가 잘 되길 바라는 마음에 떠오르는 생각을 전부 이야기했어. 유튜브 컨텐츠, 공연 이벤트, 홍보 방식 등등 할 수 있는 건 모두 다. 처음엔 재미있었고, 내가 그에게 도움이 된다는 사실 자체가 좋았어. 내가 특별한 팬이 된 것 같기도 했고.
그러다 그가 나와 내 친구에게 새로운 팬카페 운영을 맡아달라고 했어.
팬이라면 거절하기 어려운 달콤한 제안이었지.
힘들 거라는 건 알았지만, 최애와 공적으로도 연결된다는 명분을 외면하기는 쉽지 않았어.
촉박한 시간 동안 친구와 내가 영혼을 갈아 넣어 준비한 카페가 드디어 오픈을 했지만, 우리는 시작부터 어긋났었어.
지금 생각해 보면 탈출 신호는 충분했었는데 말이야.
홍보 영상 촬영을 부탁했을 때도 그랬지.
대본도 내가 다 썼고 분량도 얼마 안 됐는데,
돌아온 결과물은 엉망이었어.
“이걸 왜 해야 되지?“
“어려워서 못 외우겠어”
“괜찮아 자르면 돼”
너도 알지? 나 그때 해외여행 중이었던 거.
회사에서 계속 재촉해서, 나 그거 새벽에 잠도 못 자고 울면서 편집했었잖아.
회사랑도 자꾸 틀어지기 시작했어.
직원도 아닌 내가 마케팅 업무 전반을 떠맡았었어.
내 아이디어 다 쓰면서 의견은 다 묵살당하고,
어려서 모른다고 무시만 당했어.
그는 그 사이에서 어떤 역할도 하지 않았어.
자기 일인데도 책임지지 않았고,
힘들다는 말만 늘어놓을 뿐이었지.
내 앞에서 소속사, 멤버, 심지어 동료들 험담까지 했었어.
나는 그런 이야기를 들으려고 곁에 있던 게 아니었는데 말이야.
결국 같이 하던 친구가 먼저 떠났고, 나 혼자 남게 되었어.
이상하게 그를 떠나는 상상만 해도 미안해졌어. 내가 마지막이라는 생각에, 책임감 비슷한 게 생겼었나 봐.
그가 안쓰럽고, 측은하기도 해서 몇 달을 더 끌려다녔어.
이건 아니다.
머리로는 알면서도 마음이 도저히 떠나 지지가 않더라.
주변에서 모두 말렸어.
이용당하고 있는 거라고,
그 사람은 좋은 사람이 아니라고.
그런데도 나는 계속 붙잡혀 있었어.
어쩌다 한 번 오는 다정한 말 한마디, 이모티콘 하나에 서러움이 눈 녹듯 사라졌거든.
지금 생각하면 고마움이 아니라, 나를 붙잡아 두려는 미끼였을 뿐이었는데.
어느 날은 긴 메시지를 보냈어.
내가 얼마나 힘든지, 그가 조금 달라졌으면 하는 진심을 모두 담아서.
답장은 딱 한 줄이었어.
“그래, 좋은 의견 고마워.”
잘되면 자기 공, 안 되면 남 탓.
자기 일에 대한 비전도, 확실한 목표도 없었어.
팬 입장에서 실망스러울 정도로 말이야.
그래서 결국 그만두겠다고 했어.
아쉬움을 남긴 채 마무리했고, 그땐 정말 홀가분했어.
하지만 그 평화는 길지 않았어.
일주일 뒤 올라온 그 공지 때문에.
기억해 봐.
먼저 연락한 것도,
약속장소를 그의 집 근처로 정한 것도,
전부 그쪽이었잖아?
그런데 갑자기 내가 ’ 문제 있는 팬‘이 되어 있었고,
그는 마치 아무 관계도 없다는 듯
그 공지 뒤에 숨어버렸어.
그제야 알겠더라고.
항상 나만 애썼고, 나만 이해하려고 했고, 나만 믿었더라.
그는 내 희생을 당연하게 여겼고, 나를 단 한 번도 배려해주지 않았어.
그는 언제나 사람을 그렇게 대했던 거야.
그가 필요했던 건 ‘진심’이 아닌 ‘도구’였던 거지.
그걸 인정하는 데 많은 시간이 걸렸어.
그래도 받아들이고 나니까 마음이 가라앉더라.
내가 잘못한 게 아니라는 확신이 생겼거든.
이제는, 다시는 그 사람과 엮이고 싶지 않아.
용서나 이해의 문제가 아니야.
그냥,
앞으로는 누군가에게 휘둘리는 위치에
나 자신을 두지 않겠다는 거야.
내가 그 사람을 도우려 했던 마음, 그건 진심이었어.
그래서 그 마음까지 부정하고 싶진 않아.
그저 다음엔, 누군가를 돕기 전에 나부터 지키는 사람이 될 거야.
세상엔 그 사람보다, 나를 소중히 여겨주고 아껴주는 사람이 더 많을 테니까.
그리고...
그는 결국 자기 선택에 대한 대가를 스스로 치르게 될 거야.
누군가의 진심을 땔감 삼아 타오르는 불꽃은 절대 오래갈 수 없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