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조용한 복수, 침묵 속으로 사라진 10년
이 글은 실제 있었던 일을 바탕으로 하지만, 특정인을 짐작할 수 없도록 일부 설정은 각색되었습니다.
(이 이야기는 실제 경험을 바탕으로 재구성한 기록입니다.)
지독함을 넘어서 징글징글했던 10년 덕질의 마침표를 찍기로 결심을 하고, 정말 오랜만에 카페에 접속했다.
우리의 청춘과 열정, 그리고 수많은 마음들이 기록되어 있는 공간과도 작별하는 날이었다.
마지막으로 회원 목록을 훑어보다가 문득 멈칫했다.
당연히 있어야 할 그의 이름이 보이지 않았다.
언제인지, 왜인지도 모르게, 그는 자신의 팬카페를 몰래 탈퇴했다.
이 팬카페는 공식적인 소통 창구는 아니었다.
그의 팀 활동과는 별개로, 개인 활동을 집중적으로 응원하고 싶어서 내가 직접 만든 공간이었다.
카페 개설 소식을 전하자 그 역시 기꺼이 가입했다.
공식 채널에서는 볼 수 없는, 우리만을 위한 ‘한정판 셀카’도 올려줄 정도로 한동안은 활발하게 소통을 이어갔다. 규모는 작았지만, 밀도는 그 어느 곳보다 높았던 우리만의 소중한 안식처였다.
물론 모든 시간이 다 순탄했던 건 아니었다.
카페 개설 초반, 불미스러운 사건으로 인해 카페 회원 대부분이 탈퇴했다.
그는 그 사건에 대해 어떤 말도 하지 않았고, 우리는 더 묻지 않았다. 시간이 흐르며 그 사건은 우리에게 암묵적인 금기어가 되어 있었다.
사실 그 일은 탈덕이 당연할 정도로 큰 사건이었다.
하지만 그때의 나는 그 일의 심각성을 정확하게 인지하지 못했고, 바로 돌아서기에는 남아있던 마음이 너무 컸다.
그래서 남는 쪽을 택했다.
시간이 흐르면서 우리는 더욱 돈독해졌다.
규모가 작은 팬덤이기에, 자주 만나는 팬과 가까워지지 않는 게 더 이상한 구조였다.
하지만 좁혀진 거리만큼, 차라리 몰랐으면 더 좋았을 일들까지 볼 수밖에 없었다.
그의 대외적인 이미지 훼손, 팬덤 내에서 우리가 받는 피해 등.
그냥 두고 볼 수만은 없는 지점들이 계속 생겨났다.
때마침 찾아온 팬데믹은 상황을 더 악화시켰다.
공연은 멈췄고, 공백기는 기약 없이 길어졌다.
팬인 우리의 눈에도 다 보일 정도로 그는 방향을 잃고 표류했다. 속절없이 흔들리는 모습에 실망은 쌓여만 갔고, 애정으로 덮고 넘길 수 없는 지점까지 다다랐다.
우리는 더 이상 침묵할 수 없었고, 조금씩 말을 얹기 시작했다.
관리나 간섭이 아니었다.
방향 제시나 통제도 아니었다.
갈피를 못 잡는 모습과 같은 실수가 반복되는 걸 지켜보는 게 안타까울 뿐이었다.
매번 이야기한 것도 아니고, 어쩌다 한 번씩 조심스럽게 꺼낸 말이었다.
혹시라도 그가 상처받지 않을까 전전긍긍하며.
우리가 아니면 그런 말을 할 사람도 없었다.
잘되길 바라는 순수한 마음 외에는 다른 의도도 전혀 없었다.
함께한 세월과 대화가 존재하는 한, 그 정도 말조차 못 할 사이는 아니었다. 그건 분명했다.
우리는 질문을 던졌고, 날카로운 지적도 서슴지 않았다.
하지만 어떤 대답도 들을 수 없었다.
그 간절한 외침을 몰랐을 리 없는데도 그는 끝까지 어떠한 선택도 하지 않은 채 팬의 목소리를 외면했다.
길어지는 침묵에 지친 팬들은 하나둘씩 떠났다.
카페를 찾는 발길도 줄어들며 존재감은 점점 희미해졌다.
그러던 어느 날, 그 역시 아무 말 없이 사라졌다.
뒤늦게 알게 되었다.
그가 뒤에서 우리를 어떻게 이야기하고 있었는지를.
공연장을 가장 자주 찾고, 10년 넘게 그의 무대를 기록해 온 사람들.
쓴소리 몇 마디 했다는 이유로, 우리는 팬덤 분열의 원인이자 불편한 존재가 되어 있었다.
이제 와 생각해 보면,
그가 피한 건 팬의 질문이 아니라 그 말속에 비친 자신의 못난 모습이었을지도 모른다.
질문에 답하려면 깊이 생각해야 하고, 대답에 따르는 책임도 져야 했다.
그래서 조금이라도 듣기 싫은 말이 나오면 귀를 닫았을 것이다.
자신의 결점을 마주하는 일보다, 팬을 외면하는 일이 훨씬 쉬웠을 테니까.
아무 말 없이 카페를 탈퇴한 건 그가 우리에게 남긴 유일한 대답이었다.
그는 자신이 생각하는 가장 편한 방식으로, 팬과의 관계를 정리했다.
할 수 있는 건 다 했다.
배려는 끝났고, 이쯤에서 우리는 사라지기로 했다.
침묵 속으로 도망친 그에게 우리가 남긴 건 침묵 속으로 사라진 10년 치의 기록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