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력한 리더십은 개뿔
이 글은 실제 있었던 일을 바탕으로 하지만, 특정인을 짐작할 수 없도록 일부 설정은 각색되었습니다.
무대 조명 아래에서 그가 이 말을 할 때마다 그 말이 전부 사실처럼 들렸다. 동생들을 이끄는 모습이 카리스마 있어 보였고, 거친 업계에서 오랜 시간 버텨온 그의 추진력은 경이로웠다.
옆에서 군말 없이 자리를 지키는 멤버들을 보며 그것이 끈끈한 신뢰로 만들어진 관계라고 믿었다. 멤버 변경 없이 오랜 시간 팀을 유지했다는 사실 자체만으로도 그들은 충분히 존경받을 만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환상이 깨진 후 다시 들여다본 저 문장은,
리더십은커녕 오만으로 똘똘 뭉친 자기 과시일 뿐이었다.
저 멘트가 대중에게 먹혔던 이유는 단순했다.
그가 만든 팀이었고, 우리는 그들의 속사정까지는 알 수 없는 철저한 외부인이었기 때문이다.
모든 결정은 내가, 협의 없는 독재
함께한 그 수많은 시간 내내 그는 멤버들과 협의를 하는 모습을 단 한 번도 보여준 적이 없었다. 우리가 겪은 잠깐의 경험만으로도 충분히 알아챌 수 있을 정도였다.
새로운 팬카페를 개설할 때도, 기획사와의 계약 체결과 종료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 과정 어디에도 멤버들의 의견은 드러나지 않았다.
방식은 늘 같았다. 결정은 혼자, 통보는 나중이었다.
그에게 멤버는 ‘함께’하는 동료가 아니라, 이미 정해진 결론을 ‘따르는’ 위치에 가까워 보였다.
좁혀지지 않는 생각, 공생할 수 없는 관계
그런 독단적인 생각 속에 회사는 그에게 방해물일 뿐이었나 보다.
그는 회사가 자신을 방치했다고 생각했다. 자신이 내고 싶은 곡을 내주지 않았고, 원하는 방향으로 밀어주지 않았다는 이유였다. 하지만 회사의 판단에도 사정은 있었을 것이다. 이윤 창출과 예술을 함께 고려해야 하는 관계에서 충분한 대화와 의견 조율은 필수다. 문제는 그 과정 자체가 존재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불만은 점점 쌓였고, 어느 날 그는 아무와도 상의하지 않은 채 계약 종료를 통보했다. 공사를 막론하고 그는 어떤 누구와도 협의와 의견을 공유하지 않고, 모든 것을 자기 뜻대로 결정했다.
당연하게 누린 누군가의 희생
우리 역시 예외는 아니었다. 모든 관계를 자기중심으로 재단하는 사람에게, 팬이 귀한 존재일 리 없었다.
팬인 우리는 그의 부탁을 쉽게 거절하기 어려웠다. 가능하다면 조금이라도 도와주고, 더 해주지 못함에 아쉬워했다. 그렇게 말없이 감수했던 희생과 헌신을, 그는 마치 처음부터 자신의 것인 양 당연하게 누렸다.
그는 팀에 대한 권한이 오직 자신에게만 있다고 믿었다.
그래서 ‘나만 믿고 따라오라’는 말을 팬에게 아무 거리낌 없이 내뱉었다.
그 말에는 오랜 시간 동고동락한 멤버와 회사에 대한 배려가 완전히 배제되어 있었다. 타인의 호의와 노력까지 마음대로 휘두를 수 있다는 생각, 그것이 그가 말하는 ‘강력한 리더십’이었나 보다.
순진한 척하며 팬의 순수한 마음을 재고 따지고 가늠했던 영악한 모습,
창작에 대한 존중 없이 매사에 불만이 가득한 채 타인을 험담하던 모습,
재능을 맹신하며 나태함을 정당화하던 모습,
갈등을 회피하고 방관하던 무책임함까지.
결국 이 모든 불편한 진실의 출발점은, 한 사람의 자아도취였다. 스스로를 세상의 중심이라 믿는 마음이, 수많은 혼란과 상처를 만들어낸 것이다.
타인의 희생 위에 쌓아 올린 모래성이 파도와 바람을 오래 견딜 수는 없다. 그는 여전히 자신의 세계에 갇혀있고, 그의 곁을 지키는 건 침묵뿐이다.
나는 아주 먼발치에서 무너지는 모래성을 관찰한다.
최선을 다해 버텼고 맞서 싸웠기에, 나는 이 결말을 지켜볼 자격이 있다.
아무도 시키지 않았고, 어쩌면 무의미한 일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건 나와 같은 상처를 받은 이들에게 건네는 나만의 위로 방식이다.
당신의 잘못이 아니라고,
이제 무거운 마음은 내려놓아도 좋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