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보다 무서운 건 습관이었다
이 글은 실제 있었던 일을 바탕으로 하지만, 특정인을 짐작할 수 없도록 일부 설정은 각색되었습니다.
이제 진짜 그만해야겠다.
결심은 아주 사소한 순간에서 비롯되었다.
“그럼 난 월요일 휴가 쓰고 더 놀다 올래. 너도 시간 되지?”
“좋아. 2박 3일로 숙소 알아보면 되겠네.”
“같이 갈 사람 더 있나 물어보고 숙소는 나중에 예약하자.”
“그래. 그럼 비행기 시간 먼저 볼까?”
“새벽비행기가 싸긴 한데 공항 갈 방법이 없네.”
“그러게. 8시 정도는 어때?”
“그쯤은 괜찮을 것 같아.”
“더 갈 사람 있나 내가 확인해 보고 숙소 찾아볼게.”
“좋아! 나는 렌터카 가격대를...
잠깐만.
...나 이번꺼 일단 보류 좀 할게. 나중에 다시 얘기하자.”
주말 제주도 행사 공지가 뜬 지 한 시간도 되지 않은 때였다.
예전이라면 여행 가는 기분으로 신나게 다녀왔을 스케줄이었다.
친구와 통화를 하며 늘 하던 대로 계획을 상의하던 중, 바쁘게 움직이던 손이 문득 멈췄다.
급하게 전화를 끊고 주변을 둘러봤다.
몸과 마음이 지쳐 도망치듯 예약했던 시내의 한 호텔방 안이었다.
나는 나를 괴롭게 하는 것들로부터 벗어나보겠다고 온 곳에서도 그 사람을 향해 움직이고 있었다.
그 순간에는, 내가 상처받았다는 사실조차 망각하고 있었다.
달라진 건 아무것도 없었다.
공지를 확인한 순간부터 여행을 계획하던 그 순간까지.
물 흐르듯 흘러가는 줄 알았던 일상 속에서, 나는 그제야 크게 갈라진 균열을 감지했다.
휴대폰을 침대에 내던지고, 헛웃음을 치며 맥주 캔을 땄다.
수치스러웠다.
그런 취급을 받으면서도 당연하게 갈 생각부터 하고 있던 내가.
차가운 맥주가 목을 타고 내려갔지만, 뜨거워진 머리는 쉽게 식지 않았다.
알고 있었다.
내가 마음의 상처를 자각한 그 순간부터, 이 관계는 이미 끝이 정해져 있었다는 걸.
다만 그걸 인정할 자신이 없어서 회피하고 있었을 뿐이었다.
감정이 아닌 습관이, 계속 내 발목을 잡고 있었다.
6개월은 그 사람에게 준 유예기간이 아니었다.
사실은 끝을 받아들여야 하는 나에게 스스로가 준 과정이었다.
마지막 한 모금의 맥주를 털어 넣고, 빈 캔을 내려놓았다.
아티스트를 넘어 인간적으로도 기본이 안 되어 있는 사람에게 내 진심을 바칠 순 없었다.
내가, 간장종지보다도 작고 허름한 그릇에
너무 고귀한 사랑을 쏟아부었다.
통화를 하며 미리 예약해 두었던 렌터카를 취소했다.
나머지 앱들도 하나하나 종료했다.
구겨진 빈 캔을 손에 쥐고 잠시 망설이다가 쓰레기통에 던져 넣었다.
불을 끄고 침대에 몸을 뉘었다.
방 안 가득 내려앉은 어둠이, 내 결심을 대신했다.
남은 단 1회의 공연.
그 공연은 유예의 종료이자, 10년의 마침표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