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는 태국인 이름에도 적용된다. 내 태국 친구들의 이름 풀네임은 최소 10자가 넘는 장문의 문장을 쓰는 느낌이었다. 그들의 이름은 '수차난 싱하라 나 아유타야', '파린다 보라반 아유다야', '와롱밧 와나차이끼앗' 등이 있었다. 한번 외우면 잊을 수 없는 엄청난 이름들이다. 외국인들에겐 너무 길고 어렵기 때문에 대부분의 태국인들은 짧고 쉬운 영어 닉네임을 갖고 있다. 그런 와중에도 나는 이 친구들의 풀네임을 줄줄이 외울 수 있었는데, 닉네임 말고 풀네임으로 부를 때마다 항상 신기하게 쳐다보던 친구들의 시선이 기억난다.
내가 태국에서 다닌 외국인학교는 유치원부터 고등학교까지 전 학년 통틀어서 약 1700명의 재학생들이 있는 대규모 학교였다. 학교 규모가 거대했기 때문에 동학년 학생이라고 해도 이름을 잘 모르거나 얼굴 조차 잘 모르는 사이가 있는 게 꽤나 흔한 일이었다.
그런 학교에서도 나는 중학교 때 6학년, 7학년, 8학년을 통틀어서 약 500명, 고등학교 9, 10, 11, 12학년을 약 500명 정도의 이름과 얼굴을 다 익히 잘 알고 있었다. 그 이유는 바로 ‘Yearbook’ (졸업앨범)이었다.
Yearbook은 외국학교에서 1년마다 발행되는 졸업앨범으로, 졸업을 하는 학년 (초등학교 6학년, 중학교 3학년, 고등학교 3학년)만 받는 게 아니라 전체 학년을 대상으로 매년 발행되는 점이 한국 졸업앨범과는 차이가 있다. 각급 학년의 개인 사진, 단체사진뿐만 아니라 다양한 연간 교내, 외 활동 사진들, 동아리 사진, 선생님 사진들 등이 담겨있는 추억앨범이라고 할 수 있다.
외국에서는 Yearbook 제작을 학생이 교과목으로 선택해서 직접 기획 및 작업하는 기회를 가질 수 있는데, 나는 중학교 8학년, 고등학교 9, 10학년 때 Yearbook 교과목을 들으면서 총 3권의 Yearbook을 발행했다. 학생들이 직접 졸업앨범의 테마, 디자인, 주제 등을 정하고, 학생들의 개인 사진과 이름을 매칭 해서 일일이 기입하고, 사진 촬영과 보정 등 모든 출판의 업무를 담당하기 때문에 업무의 양도 상당했지만 원래 디자인과 사진을 좋아했던 나는 이 교과목을 가장 즐겁게 수강했었다.
특히 개인 증명사진과 이름 기입하는 부분에는 특별히 조심 또 조심하면서 작업했던 기억이다. 왜냐면 한글 이름은 대부분 세 글자로 간단하지만, 영어와 그 외의 언어들의 이름들은 처음 들어보는 단어들이거나, 아주 길거나, 띄어쓰기가 많거나, 대소문자가 특이하거나 하는 특징이 있었기 때문에 검수를 아주 꼼꼼히 해야 했기 때문이다.
그 많고 많은 학생들의 이름과 얼굴을 익히면서 뭔가 내적 친밀감을 쌓을 수 있었던 것 같다. 십여 년이 지난 지금도 친구들의 근황 사진들을 보면 바로 풀네임 이름이 생각나는 거 보면, 그때 외웠던 기억력이 내 머리 어딘가에 잘 박혀서 쉽게 잊히지 않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