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론부터 말하자면 존재한다.
아니, 최소한 내가 다녔던 외국인학교에서는 존재했다.
전 세계적으로 큰 인기를 끌었던 미국의 하이틴 드라마 ‘Gossip Girl’는 상류층 학교에 다니는 고등학생들의 이야기로, 금발머리의 ‘세레나’와 갈색머리 ‘블레어’의 사랑과 우정, 그리고 다양한 막장 스토리를 다루고 있다. 이 두 캐릭터는 모두의 선망 대상이자 인기 있는 ‘it girl (잇걸)’의 대명사이다.
이 드라마는 2007년 방영을 시작했는데, 당시 드라마 캐릭터와 동일하게 고등학생이었던 나는 가십걸 드라마에 정말 매료돼서 대사를 다 외울 정도로 자주 시청했다. 심지어 가십걸 캐릭터들의 극 중에서 1991년생으로 연출되는데 나랑 동갑이어서 캐릭터들에게 더 애정이 갔던 것 같다.
이 드라마를 본 사람들은 알겠지만 블레어와 세레나는 아주 어렸을 때부터 절친으로 지내왔지만, 서로에게 거짓말, 배신을 일삼고 상처 주는 행위를 하면서 죽을 것처럼 싸우는 게 다반사이다. 그러다가 우정의 중요성을 깨닫고 다시 절친으로 돌아왔다가, 다시 싸워서 증오했다가, 이 순서를 시즌 6까지 반복한다.
정말 신기하게도, 내가 국제학교에 다닐 당시에 정말 세레나와 블레어 같은 존재의 동급생이 있었다. 항상 좋은 성적을 받으면서 운동도 잘하고 놀기도 잘하는 금발의 T양, 그리고 공부는 뒷전이고 항상 자유분방하고, 놀고 연애하는 데에만 관심 있던 B양이 그 주인공이다. 극 중 캐릭터들처럼 이 둘은 표면적으로 보면 정말 다른 성향인 것처럼 보이지만 항상 둘도 없는 우정을 과시했다. 둘 다 모델 같은 외모와 키, 그리고 스타일로 인해 매 학교 행사나 공연, 운동경기 때마다 이 둘의 존재는 독보적이었고, 대부분의 다른 학생들은 이 둘을 보고 ‘노는 애들’이라고 불렀다.
T양이 누구를 사귄대더라, 그 남자랑 헤어졌대더라, B양이 선생님한테 혼났대더라, B양이 학교 선배랑 그렇고 그런 사이 래더라 등등, 이 둘을 따라다니는 루머와 썰도 극 중처럼 항상 존재했다.
같은 학교를 다니고, 같은 수업을 들으면서도 뭔가 다가갈 수 없는 존재, 그리고 미국 하이틴 영화에서 나올 법만 한 아우라와 인생사를 가진 그녀들을 보면서 나는 ‘저런 연예인 같은 애들이랑 나랑은 절대 친해질 수 없겠다’ 싶었다.
요즘 넷플릭스에서 가십걸을 다시 보면서 이 두 친구들이 생각이 나서 오랜만에 페이스북으로 근황을 찾아왔다. 아직도 ‘파티걸’, ‘스캔들 가득한 삶’을 살고 있을까 궁금해졌다. 그러나 평범하고 행복해 보이는 최근 일상들의 사진들을 보니 당시에 가까이 다가가기 어려웠던 ‘노는 애들,’ 사고뭉치 문제아'처럼 보이지 않고, 그냥 ‘같이 학교 다녔었던 추억의 동급생’으로만 보였다. 갑자기 이 둘도 고등학교 때 얼마나 많은 루머와 관심 때문에 고생했었을까 싶은 생각도 들었다.
외국학교뿐만이 아니라 전 세계 거의 모든 학교에 이렇게 모두의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학생들은 존재할 것이다. 사람 사는 거 다 똑같듯, 이들도 남들의 관심의 유무를 떠나 그들의 인생을 잘 살아왔을 거고, 잘 살 거라고 생각한다. 학교에 존재하는 다양한 부류들 (인싸, 노는 애들, 파티광, 너드, 아싸 등)도 십여 년이 지나서 다시 만나면 다 그때보단 좀 더 공통분모가 많은 사이로 서로를 바라볼 수 있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