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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vie Review <<The Substance>>

영원한 젊음과 아름다움을 향한 끝없는 욕망과 파멸

by 금사대제

1. 영화 소개


- 제목: 서브스턴스(The Substance)

- 감독: 코랄리 파르자(Coralie Fargeat)

- 출연: 데미 무어(Demi Moore), 마거릿 퀄리(Margaret Qualley), 데니스 퀘이드(Dennis Quaid) 등

- 장르: 바디 호러(body horror)

- 제작 국가 및 연도: 미국, 영국, 프랑스 공동 제작 / 2024년作

- 제작 및 배급사: Working Title Films(제작), MUBI(배급)

- 관람 등급: R(17세 이하 관람 불가)



2. 줄거리


왕년의 할리우드 스타 엘리자베스 스파클(Elisabeth Sparkle: 데미 무어 扮)은 50세 생일날 마지막 남은 그녀의 출연 프로그램인 에어로빅 TV 쇼에서 속물 제작자 하비(Harvey: 데니스 퀘이드 扮)에게 나이가 많다는 이유로 급작스럽게 해고 통보를 받는다. 퇴근길(엘리자베스가 차를 몰고 지나가는 길은 공교롭게도 LA의 선셋 대로다. 할리우드 고전 명작 <<선셋 대로(Sunset Boulevard)>>(1950)에 대한 오마주(hommage)다.) 절망에 빠진 엘리자베스는 자신의 치아 미백제 광고판이 철거되는 장면에 정신이 팔려 그만 교통사고를 당하고 만다. 병원에서 검진을 받던 중 검진의를 돕던 젊은 남자 간호사가 은밀히 <서브스턴스>를 홍보하는 USB를 엘리자베스의 외투 주머니에 집어넣는다. 그 USB에는 누군가를 "younger, more beautiful, more perfect" 하게 변신시켜 준다는 불법 약품의 광고가 담겨있다.


귀가한 엘리자베스는 USB의 내용을 확인하고는 처음엔 어처구니없어하며 USB를 쓰레기통에 던져 넣지만, 시간이 갈수록 점점 호기심이 발동하고 다시 예전의 인기를 되찾아야 한다는 절박감에 사로잡혀 <서브스턴스>를 주문해 1회용 활성화 약물을 자신의 몸에 주입한다. 곧바로 엘리자베스의 몸에 격렬한 경련이 일더니 등 한가운데가 쩍 갈라지고 그 틈새로 젊고 아름다운 여성이 튀어나온다.


2025011601000410700042241.jpg <본체인 나이 든 엘리자베스(왼쪽)와 그녀의 분신인 젊은 수(오른쪽)>


엘리자베스는 자신의 젊은 분신을 수(Sue: 마거릿 퀄리 扮)라고 이름 짓는다. 본체와 분신은 반드시 7일마다 자아를 교체해야 하며, 자아가 빠져나간 육신은 시체처럼 마비된 채 생존을 위해 정맥주사로 일주일 분의 영양을 공급받아야 한다. 수가 별 탈 없이 활력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엘리자베스의 몸에서 추출한 안정화 용액을 매일 주입해야만 한다.


갈라진 등.jpg <수를 탄생시킨 엘리자베스의 갈라진 등>


수는 엘리자베스가 출연하던 에어로빅 TV 쇼 신인 발굴 오디션에 참가해 선발된 뒤 벼락 스타가 되고, 인기에 힘입어 제작자 하비로부터 방송국의 최고 인기 프로그램인 송년특집 쇼의 주연 자리를 제안받는다. 수가 승승장구하며 만족스러운 삶을 사는 동안, 엘리자베스는 자기혐오에 빠져 은둔생활을 하게 된다. 일주일간의 교체 주기가 끝나갈 무렵, 수는 젊은 남자와 One-Night Stand를 즐기기 위해 엘리자베스의 몸에서 안정화 용액을 추가로 추출해 교체를 지연시키는데, 이 때문에 엘리자베스의 오른손 검지가 급작스레 노화된다.


<급속히 노화된 엘리자베스의 오른손 검지>

당황한 엘리자베스가 <서브스턴스> 공급자에게 전화를 걸자, 공급자는 교체 주기를 지키지 않으면 본체가 돌이킬 수 없이 급속 노화된다고 경고한다. 동일 자아를 가진 본체와 분신임에도 불구하고 엘리자베스와 수는 서로를 별개의 개체로 보기 시작하고 급기야 상대방을 적대시하게 된다. 엘리자베스는 수가 교체 주기를 수시로 어겨 노화가 촉진되자 분노하고, 수는 수대로 엘리자베스의 끊임없는 자기혐오와 폭식에 혐오감을 느낀다. 극도의 자기혐오에 사로잡힌 엘리자베스는 수로 지내는 기간을 늘리기 위해 자신의 본체에서 안정화 용액을 한도를 초과해 추출해서 젊음과 아름다움을 유지하려 든다.


3개월이 지나 송년특집 쇼 방송 하루 전, 수는 안정화 용액이 떨어져 공급자에게 다시 전화를 걸자, 공급자는 용액을 보충하려면 반드시 육신을 교체해야 한다고 알려준다. 오랜만에 분신에서 본체로 교체가 이루어지자 엘리자베스는 자신의 몸이 기괴하게 변형돼 늙고 추한 모습의 꼽추괴물이 된 것에 경악한다. 수가 더 이상 자신을 노추하게 변형시키지 못하게 막기 위해 엘리자베스는 자신의 분신을 없애버릴 약물을 주문한다. 수의 몸에 제거제를 주사하던 엘리자베스는 젊음과 아름다움 그리고 대중적인 인기에 대한 집착을 버리지 못해 약물 주입을 도중에 중단하고 수를 소생시킨다. 육체뿐만 아니라 자아까지 분열된 두 사람은 격렬하게 다투고 수는 엘리자베스로부터 자신을 지키기 위해 엘리자베스를 공격해 잔인하게 타살(打殺)해버린다. 그리고 수는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송년특집 쇼에 출연하기 위해 촬영장으로 떠난다.


엘리자베스가 죽자 수의 몸도 급격히 노화되기 시작한다. 공황 상태에 빠진 수는 반드시 한 번만 사용해야 한다는 경고를 무시하고 남은 활성화 약물을 자신의 몸에 주사해 또 다른 분신을 만들려고 시도한다. 하지만 약물 부작용으로 엘리자베스와 수의 형상을 모두 지닌 추하고 기괴한 괴물 "Monstro Elisasue"가 탄생한다. 엘리자베스의 광고 포스터에서 얼굴 부분을 잘라낸 가면을 쓴 몬스트로 엘리자수는 송년특집 쇼 촬영장으로 돌아와 쇼를 진행하려 하지만 관객들은 기괴한 괴물의 등장에 경악한다.


스타 핏덩어리.jpg <할리우드 명예의 거리 바닥에 자신의 별 문양 위에서 미소 짓는 엘리자베스의 얼굴>


성난 한 관객이 몬스트로 엘리자수의 머리를 마이크봉으로 후려쳐 터트려버리지만 더욱 기괴해진 머리가 몬스트로 엘리자수의 몸에서 다시 자라나고, 부러진 팔에서 선혈이 솟구쳐 관객과 촬영장을 온통 피범벅으로 만든다. 몬스트로 엘리자수는 촬영장에서 도망쳐 나와 할리우드 명예의 거리로 향한다. 도망치는 도중 몬스트로 엘리자수의 몸은 하나하나 부서져 내리고 결국 엘리자베스의 얼굴만 남은 살덩어리가 할리우드 명예의 거리 바닥에 새겨진 자신의 별로 기어간다. 엘리자베스의 얼굴은 대중이 자신에게 환호하는 환상을 바라보며 미소 짓다가 핏물로 녹아내리고, 남겨진 핏자국은 다음 날 아침 바닥 청소차에 의해 닦여 사라진다.



3. 평가


<<The Substance>>는 프랑스의 여류 감독이자 각본가인 코랄리 파르자(Coralie Fargeat)의 뛰어난 연출력과 능수능란한 스토리텔링(storytelling) 능력 그리고 한물간 퇴물 여배우로 치부되던 데미 무어의 뜻밖에 열연이 절묘하게 어우러진 바디 호러(body horror)물이다.


<<The Substance>>의 테마(theme)와 스토리를 이끌어가는 주요 모티브(motive)들은 사실 하나도 새로운 것이 없다. 오히려 일순 진부하게 느껴지기까지 한다. 이 영화의 주제라고 할 수 있는 영원한 젊음과 아름다움을 향한 과도한 집착과 욕망 그리고 그 결과로 빚어지는 윤리적 타락과 파멸이라는 모티브는 아일랜드 출신의 유명 극작가 오스카 와일드(Oscar Wilde)의 명작 <<도리안 그레이의 초상(The picture of Dorian Gray)>>(1891)에서 따온 것이고, 여성의 가치를 인격이 아닌 외모로만 평가하는 외모 지상주의와 후광 효과(halo effect)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의식은 귀네스 팰트로(Gwyneth Paltrow) 주연의 2001년 작 <<내겐 너무 가벼운 그녀(Shallow Hal)>>나 김아중 주연의 한국 영화<<미녀는 괴로워>>(2006) 등의 영화에서 숱하게 다뤄졌던 주제이며, 이젠 퇴물이 된 왕년의 인기 여배우가 과거의 인기와 찬사에 광적으로 집착하다 파멸해 간다는 모티브는 빌리 와일더(Billy Wilder) 감독, 글로리아 스완슨(Gloria Swanson), 월리엄 홀든(William Holden) 주연의 할리우드 고전 명작 <<선셋 대로(Sunset Boulevard)>>(1950)에서 그대로 따온 것이다.


<2024년 제77차 칸 영화제에서 최우수 각본상을 수상하는 코랄리 파르자>

코랄리 파르자는 역량 있는 극작가답게 기존 작품들의 주요 설정을 변경해 플롯(plot)을 재구성하고 몇 가지 다른 요소들을 첨가해 새로운 스토리를 창출해 냈다. 이 영화를 보고 있노라면 새삼 '모방은 창조의 어머니'라는 경구가 떠오른다. 그녀는 <<도리안 그레이의 초상>>을 기반으로 시나리오 작업을 하면서 주인공을 미소년에서 한물간 여배우로, 배경도 19세기 런던에서 현대의 할리우드로 바꿔놓았다. 늙어버린 여배우와 할리우드라는 설정은 이 영화의 주제를 부각시키는데 안성맞춤이다. 영원한 섹시의 아이콘 마릴린 먼로(Marilyn Monroe)는 살아생전 할리우드를 "세상에서 가장 거대하고 화려한 매음굴"이라고 평가했다. 이와 같은 주인공과 배경의 설정 변경은 진부하게 느껴질 수 있는 스토리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었다. 코랄리 파르자는 <<The Substance>>을 통해 극작가로서의 능력을 인정받아 2024년 제77차 칸 영화제(Cannes Film Festival)에서 최우수 각본상(The Best Screenplay Award)을 수상했다.


코랄리 파르자는 극작가로서의 재능 이외에도 강렬한 연출력을 선보이며 영화의 완성도를 높였다. 색채의 대비를 활용한 감각적인 영상과 영화 곳곳에 숨어있는 상징을 통해 주제를 부각시키는 촬영 기법으로 영화를 더욱 빛나게 했다.


<<The Substance>>는 인트로(intro: 도입부)부터 강렬하다. 영화가 시작되면 껍질을 깬 날달걀에 정체 모를 연두색 액체를 주사하자 계란 노른자가 복제, 분열하는 장면이 나온다. 복제, 분열된 새로운 노른자는 기존의 노른자보다 훨씬 더 신선하고 모양새도 더 예뻐 보인다. 앞으로 펼쳐질 스토리를 예고하는 듯한 흥미로운 시퀀스다.


달걀.jpg <정체불명의 약물에 의해 복제, 분열된 계란 노른자>


계란 노른자의 노란색은 과거의 젊음과 미모 그리고 인기를 되찾으려는 엘리자베스의 갈망을 상징한다. 엘리자베스가 주문한 <서브스턴스>를 수령하러 갈 때 입고 있는 노란색 코트는 이런 그녀의 갈망을 반영한 의상이다. 그리고 극 초반 에어로빅 TV 쇼를 촬영하면서 입고 있는 칙칙한 파스텔 톤의 파란색 레오타드(leotard)는 나이 들어버린 엘리자베스를, 엘리자베스의 분신 수가 입고 있는 밝고 선명한 분홍색 레오타드와 입술에 바르고 있는 밝은 분홍색 립스틱은 젊음과 아름다움을 상징한다. 수가 엘리자베스의 몸에서 분리돼 나오는 장면에서 수의 젊고 아름다운 나신은 배경이 되는 욕실의 하얀 타일 때문에 옅은 핑크빛을 띠는데(시각적인 효과를 위해 배우의 몸에 전신 색조 화장을 한 것으로 보인다.), 이것 역시 분홍색을 이용해 젊음과 아름다움을 상징하려는 감독의 의도가 반영된 미장센(Mise-en-Scène)이다. 동양 문화권에서도 젊고 활기 넘치는 젊은이를 일명 홍안(紅顔)의 청춘이라고 부르지 않는가.


이 영화를 관통하는 가장 주요한 색채는 단연 붉은색이다. 시각적인 효과를 이용해 더 멀게(욕망을 충족시키기가 그만큼 어렵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해) 느껴지는 에어로빅 TV 쇼 촬영장의 복도(이 장면은 할리우드의 천재 감독 스탠리 큐브릭(Stanley Kubrick)의 명작 <<샤이닝(The Shining)>>(1980)에 나오는 호텔 복도 신(scene)을 오마주한 것이다), 속물 제작자 하비가 입고 나오는 슈트, 그리고 영화 여기저기에 등장하는 엘리자베스가 사용하는 각종 소품들(퇴근길에 타고 가는 승용차, <서브스턴스> 공급자에게 연락하기 위해 사용하는 전화 수화기, 중학교 동창을 만나러 가기 전에 입은 옷과 점점 진하게 바르는 볼터치와 립스틱 색깔, 그리고 극 말미에 송년특집 쇼 촬영장에서 몬스트로 엘리자수가 뿜어내는 엄청난 양의 선혈 등)은 모두 짙은 붉은색이다. 붉은색은 넘지 말아야 할 선을 넘어버린 인간의 과도한 욕망을 상징한다. 마지막 순간 몬스트로 엘리자수의 몸에서 솟구쳐 나오는 붉은 피는 과도한 욕망의 끝은 결국 파멸이라는 것을 보여준다.


그리고 영화의 결말부에 수(그리고 몬스터로 엘리자수)가 신년특집 쇼를 촬영하기 위해 입고 나오는 하늘색 드레스(영화 도입부에 등장하는 계란 노른자 신의 바탕색 역시 하늘색이다. 그런데 대중의 환호와 인기를 되찾고자 하는 엘리자베스의 갈망(계란 노른자의 노란색)과 이를 충족하기 위해 입은(계란 노른자 신의 배경처럼 욕망을 감싸는 듯 한) 화려한 드레스 역시 하늘색이다. 이것은 엔딩 신(ending scene)의 시퀀스를 예고하기 위해 오프닝 신(opening scene)에 깔아 둔 복선이다.)는 월트 디즈니社의 실사판 영화 <<신데렐라(Cinderella)>>(2015)에서 신데렐라가 왕자를 만나기 위해 궁전 무도회에 갈 때 입었던 드레스와 흡사한 의상이다. 마법으로 화려하고 아름다운 모습으로 변했으나 자정이 되면 본래의 남루한 모습으로 되돌아가야 하는 신데렐라와 마찬가지로 정체불명의 약물로 젊고 아름다운 분신 수가 되었으나 7일이 지나면 다시 나이 든 본체로 돌아가야 하는 엘리자베스의 숙명을 상징하는 의상이다.


5.jpg <신데렐라의 하늘색 드레스, 수의 드레스와 유사한 의상이다.>


이밖에도 <서브스턴스>를 구성하는 여러 가지 약물의 색깔도 깊은 상징성을 지니고 있다. 본체와 분신 사이에서 자아가 교체될 수 있도록 해주는 활성제(ACTIVATOR)는 청춘을 상징하는 연두색(新綠), 분신인 수가 젊음과 활력을 유지하게 해주는 안정화 용액(STABILIZER)은 젊음과 미모 그리고 인기를 향한 엘리자베스의 갈망을 상징하는 노란색, <서브스턴스> 체험을 끝내고 분신 수를 없애버리기 위한 제거제(TERMINATION)는 죽음을 상징하는 검은색이다. 교통사고 이후 엘리자베스가 병원에서 검진을 받는 중에 남자 간호사에게 몰래 건네받는 <서브스턴스>를 홍보하는 영상이 담긴 USB의 색깔조차 검은색이다. 이것 역시 <서브스턴스> 체험은 결국 처참한 결말을 맞고 실패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암시하는 소품이라고 할 수 있겠다.


엔딩 신에서 엘리자베스의 얼굴이 할리우드 명예의 거리 바닥에 자신의 별 위에서 핏물로 녹아내리는 마지막 순간까지도 엘리자베스는 대중의 찬사와 인기를 향한 갈망과 집착을 버리지 못한다. 이 장면에서도 노화, 젊음과 아름다움 그리고 그것을 향한 갈망, 절제되지 못한 과도한 욕망과 파멸을 각각 상징하는 네 가지 색깔이 모두 등장한다. 순서대로 파란색(보도블록의 색깔), 분홍색(별의 색깔), 빨간색(핏자국의 색깔), 노란색(청소차의 색깔, 청소차가 노란색인 이유는 비록 청소차에 의해 지우져 사라질지언정, 다시 말해 엘리자베스가 죽어서 사라질지라도 젊음과 아름다움, 그리고 대중의 찬사와 인기를 향한 갈망은 결코 포기할 수 없다는 걸 암시하는 설정이다.)이 한 화면 속에 함께 등장한다. 색채를 이용해 주제를 부각시키려는 감독의 치밀한 연출 의도가 엿보이는 장면이다.




<<The Substance>>가 대중과 평단으로부터 높은 평가를 이끌어낸 데에는 감독의 절묘한 연출력 외에도 주연 배우 데미 무어의 발군의 연기력이 큰 역할을 했다. 과연 그녀보다 '엘리자베스 스파클' 역을 더 잘 소화해 낼 수 있는 연기자가 또 있을까 싶을 만큼 데미 무어의 연기는 뛰어나다. 그것은 데미 무어 본인의 인생역정이 '엘리자베스 스파클'과 닮아 있기 때문일 것이다. 아마도 데미 무어는 영화 속에서 각본 상의 캐릭터가 아닌 자기 자신의 이야기를 하고 있는 건지도 모르겠다.


과거 데미 무어는 연기력으로 승부하는 배우는 아니었다. 그녀의 인기 비결은 연기력이 아니라 항상 그녀의 '몸'이었다. 데미 무어는 전형적인 할리우드 미녀 스타일은 아니었다. 데미 무어는 보이쉬(boyish)한 매력을 지닌 개성파 미인이었다. 걸걸한 목소리와 단발머리는 그녀의 트레이드 마크였다. 그녀는 이런 자신의 약점을 운동으로 극복하고자 했다. 데미 무어는 엄청난 운동량으로 항상 탄탄한 근육질 몸매를 유지했다. '데미 무어의 몸은 타고난 것이 아니라 그녀 스스로 만들어냈다.' 혹은 '데미 무어는 운동으로 전신성형을 했다.'는 말이 떠돌 정도였다.


<잡지 표지에 실린 데미 무어의 만삭 누드 사진>

데미 무어는 70년대의 제인 폰다(Jane Fonda), 80년대의 신디 크로포드(Cindy Crawford)의 계보를 잇는 90년대를 대표하는 할리우드의 건강 미인이었다. 그녀의 이런 중성적인 매력이 극대화된 것은 <<G.I. Jane>>(1997)에서 美해군 특수부대 Navy SEALs 대원 조단 오닐 대위(lieutenant Jordan O'Neil) 역으로 출연했을 때이다. 이 영화 속에서 데미 무어는 도발적인 민머리에 남자들도 쉽게 따라 하지 못할 엄청난 근육질 몸매를 선보였다. 이밖에도 그녀는 1991년 8월 둘째 아이를 임신했을 때 만삭의 몸으로 전신 누드 사진을 찍음으로써 다시 한번 세간의 화제를 불러일으켰었다. 언제나 화제의 중심에 있는 것은 그녀의 '몸'이었다.


lieutenant


<<The Substance>>에서도 데미 무어는 욕실 신에서 전라 연기를 선보인다. 하지만 이제 그녀의 몸매도 예전 같지 않다. 젊은 시절 보는 이의 경탄을 자아냈던 탄력 넘치는 몸매도 이젠 시들어버렸다. 굴곡이 사라진 일자형 통허리, 축 처진 젖가슴과 엉덩이 살에서는 어느새 세월의 무게가 느껴진다. 하지만 데미 무어는 당당하다. 비록 젊음과 탄탄한 몸매는 사라졌지만 그녀는 이 공백을 이제 연기력으로 메우고 있다. 그만큼 데미 무어의 연기는 훌륭하다. 젊은 시절에는 찾아볼 수 없었던 연기력이 뒤늦게 폭발한 듯하다.


그녀는 젊음을 잃어가는 중년 여성의 불안과 절망, 그리고 결코 이룰 수 없는 회춘의 꿈을 향한 광기 어린 집착을 무서울 정도로 사실적인 연기로 풀어냈다. 물론 평소의 이미지와는 상반되는 속물 캐릭터를 능청스럽게 연기한 데이스 퀘이드나 젊은 분신 수 역을 맡은 마가렛 퀄리 등 조연들의 감초 같은 연기도 훌륭했지만, 극 중 데미 무어의 존재감은 정말 이 영화가 마치 그녀만을 위한 일인극처럼 느껴지게 할 정도였다.


<<The Substance>>는 할리우드에 데미 무어라는 새로운 연기파 배우가 출현했음을 알리는 신호탄과 같은 영화가 되었다. 데미 무어는 이제까지 각종 영화제의 연기상 수상과는 인연이 없는 배우였다. 하지만 그녀는 이 영화를 통해 생애 최초로 제82회 골든 글러브 시상식에서 여우주연상을 수상했고, 오는 3월에 개최 예정인 제97회 아카데미 시상식에 여우주연상 후보에 올랐으며 수상이 유력시되고 있다.(안타깝게도 실제 수상은 불발되었다.) 이제 데미 무어는 후대에 더 이상 그녀의 몸이 아닌 연기로 기억될 배우가 되었다.


여담이지만 비록 이제 시들었다고는 하나 데미 무어의 몸매는 아직도 대단하다. 이 영화를 촬영할 당시 그녀의 나이가 이미 환갑에 접어들었다는 걸 감안하면 아직도 데미 무어가 얼마나 자기 관리에 철저한 배우인지 실감하게 된다. 60세의 나이에 그 정도 몸매를 유지하는 여성이 어디 그리 흔하겠는가. 게다가 전성기의 데미 무어는 영화 속에서 완벽한 아름다움과 젊음의 화신으로 등장하는 수 역의 마거릿 퀄리(90년대 유명 스타 앤디 맥도웰(Andie MacDowell)의 막내딸이다.)를 능가하는 더 멋지고 더 아름다운 몸매를 자랑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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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 젊은 날의 데미 무어 / 오른쪽: 20대의 마거릿 퀄리>


<<The Substance>>는 단순히 오락 영화라는 차원을 넘어서 젊음과 아름다움 그리고 자기 정체성과 자기 수용에 관한 진지한 철학적 질문을 던지며 관객들에게 깊은 여운을 남겨주는 영화다. 본작(本作)은 데미 무어가 과거에 멋진 몸매를 과감히 버리고 연기파 배우로 거듭 낳듯이, 결코 되돌릴 수 없는 지나간 과거에 집착하지 말고 현재의 자신을 사랑하고 남은 날들을 더 열심히 그리고 더 충실히 살아가라는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 <<The Substance>>는 강렬한 비주얼과 절묘한 연출, 그리고 배우들의 뛰어난 연기와 묵직한 주제가 어우러진 근래 보기 드문 수작(秀作)이었다.




<완 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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