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를 향한 할리우드의 반격
1. 영화 소개
- 제목: 시빌워(Civil War)
- 감독: 알렉스 가랜드(Alex Garland)
- 출연: 커스틴 던스트(Kirsten Dunst), 케일리 스페이니(Cailee Spaeny),
바그네르 모라(Wagner Moura), 스티븐 매킨리 헨더슨(Stephen McKinley Henderson) 등
- 장르: 전쟁, 대체 역사물
- 제작 국가 및 연도: 미국, 영국 공동 제작 / 2024년作
- 제작 및 배급사: DNA film(제작), A24(배급)
- 관람 등급: R(17세 이하 관람 불가)
2. 줄거리
미국은 세 번이나 연임하며 독재를 이어가는 대통령이 이끄는 권위주의 연방 정부와 독재에 맞서 연방 분리를 주장하는 세력 간의 내전에 휩싸여 있다. 최종적인 승리를 앞두고 있다는 대통령의 허세와는 달리 캘리포니아와 텍사스가 연합한 서부군(Western Forces, WF)과 중남부 19개 주가 연합한 플로리다 동맹(Florida Alliance, FA)은 승승장구하며 얼마 안 가 워싱턴 D.C.마저 함락할 기세다. 뉴욕에서 반정부 시위 현장을 촬영하던 베테랑 종군 사진기자 리 스미스(Lee Smith: 커스틴 던스트 扮)는 자살폭탄테러를 당해 죽을 고비를 넘기고 이 와중에 열정적인 젊은 사진기자 제시 컬렌(Jessie Cullen: 케일리 스페이니 扮)을 만나게 된다. 호텔에서 우연히 고참 기자 새미(Sammy: 스티븐 매킨리 헨더슨 扮)를 만난 리와 동료 기자 조엘(Joel: 바그네르 모라 扮)은 패전이 임박한 대통령을 만나 인터뷰할 계획을 세운다. 새미는 곧바로 수도로 향하는 것은 너무 위험하다며 버지니아州 샬러츠빌(Charlotteville)의 최전방으로 가자고 제안한다. 다음날 아침, 출발 직전에 리는 조엘이 젊은 신참 기자 제시 컬렌을 일행에 합류시킨 것을 알게 된다.
뉴욕을 출발해 샬러츠빌로 향하던 일행은 기름을 사기 위해 들른 주요소에서 자경단을 자처하는 무장괴한들과 마주친다. 내전으로 치안이 무너져 내린 미국은 이미 총을 든 자가 곧 법이요 정의인 무법천지가 되어 있었다. 주유소 옆 버려진 세차장에서 고문당한 채 매달려 있는 두 남자(무장괴한 중 한 명은 이들이 약탈자들이라고 주장하지만 어쩌면 그들은 단지 무장괴한들의 폭력에 희생된 약자(弱子)들인지도 모른다.)를 발견한 제시는 그들의 사진을 찍으려다가 무장괴한 중 한 명으로부터 위협을 당하지만 노련한 리가 끼어들어 가까스로 위기를 모면한다. 주유소를 벗어난 뒤 차 속에서 제시는 자신이 선택한 직업이 얼마나 위험한 일인지 깨닫고 두려움에 떤다. 그러면서도 제시는 두려움 때문에 사진을 찍지 못한 자기 자신을 질책한다.
일행은 샬러츠빌로 향하는 도중 계속해서 내전이 벌어지고 있는 현장을 목격하고 그때마다 위험을 무릅쓰고 전투 장면을 카메라에 담는다. 처음엔 두려움에 사로잡혀 카메라 셔터를 누르지 못하던 제시는 점차 폭력에 무감각해지고 용기를 내 사진기자로서의 본분을 수행해 나아간다. 위험한 사진 촬영을 함께 하며 리와 제시는 점점 가까워지고 어느새 멘토(metor)와 멘티(mentee) 관계로 발전하게 된다. 제시는 리에게 자신이 전투 장면을 촬영하다 죽게 되면 자신의 최후를 사진 찍어 줄 수 있겠냐고 묻고 리는 그러겠노라고 답한다.
계속해서 워싱턴 DC를 향해가던 일행은 도중에 전부터 알고 지내던 동양계 기자 토니와 보하이를 만난다. 달리는 차 위에서 서로 차를 바꿔 타는 장난을 즐기며 흥겹게 운전해 가던 일행은 앞서간 보하이와 제시가 민간인들의 시신을 구덩이에 매장하고 있는 총을 든 민병대에게 붙잡혀 있는 것을 발견한다. 새미는 너무 위험하다며 만류하지만 나머지 세 명은 제시와 보하이를 구하기 위해 민병대에게 다가간다. 협상은 난항을 겪고 민병대는 토니와 보하이가 미국인이 아니라는 이유로 그 둘을 가차 없이 총으로 쏴 죽여버린다. 절체절명의 위기 상황에서 새미가 민병대원을 SUV로 들이받아 버리고 나머지 일행을 구해 도주한다. 하지만 새미는 도주 중에 민병대원이 쏜 총에 맞아 결국 사망하고 만다.
새미의 죽음으로 충격에 빠진 나머지 세 사람은 샬러츠빌에 있는 서부군 주둔지에서 잠시 휴식을 취한다. 조엘은 새미가 헛되게 죽었다며 술에 취해 자책하지만 리는 평생 기자로 살아온 새미가 취재 현장에서 순직한 것은 고인에게 의미 있는 일이었을 거라며 자위한다. 하지만 리는 고인을 애도하는 뜻으로 카메라에서 새미의 비참한 최후를 담은 사진을 삭제한다.
연방군이 이미 괴멸됐고 워싱턴 D.C.에는 소수의 대통령 친위부대와 비밀경호국 요원들만이 남아 대통령을 지키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 세 사람은 위험을 무릅쓰고 백악관을 점령하려는 서부군을 따라 수도로 향한다. 치열한 시가전 중에 제시는 두려움 없이 전투 장면을 카메라에 담지만 베테랑 사진기자 리는 '외상 후 스트레스장애(PTSD)'에 빠져 사진을 찍지 못한다. 결국 서부군이 백악관 경내로 진입하고 이들을 따라 백악관 건물 안으로 들어간 제시와 리 그리고 조엘은 대통령의 최후를 지켜보기 위해 위험을 감수하고 선발대의 뒤를 따른다. 사진 촬영 중에 총격전에 휘말린 제시는 자신을 밀어내고 대신 총에 맞은 리의 죽음을 코 앞에서 목격하고 그 장면을 카메라에 담는다.
대통령 직무실(오벌 오피스)에 들어간 제시와 조엘은 서부군 군인들이 책상 밑에 숨어있던 대통령을 끌어내 즉결 처단하는 장면을 목격한다. 최후에 순간 조엘은 방아쇠를 당기려는 군인들을 황급히 제지하고 마지막으로 남길 말이 있냐고 대통령에게 묻는다. 권위주의 독재자로서 권력을 마음대로 휘두르던 대통령은 비굴하게도 '살려달라' 애걸하고 이에 실망한 조엘이 이것으로 충분하다고 말하자 군인들은 곧바로 총을 난사해 대통령을 사살한다. 제시는 무덤덤하게 이 장면을 촬영한다.
3. 평가
남북전쟁(The American Civil War: 1861~1865)은 250년 남짓한 미국 역사의 변곡점이 된 일대 사건이었다. 노예제 찬반을 놓고 벌어진 남부와 북부의 갈등과 대립은 끝내 내전으로 폭발하고 만다. 내전임에도 불구하고 전쟁의 양상은 미국 역사상 전례 없이 잔인하고 치열했다. 남북전쟁은 미국이 참전했던 그 어떤 전쟁보다 더 많은 사상자(대략 62만 5천 명)가 발생했고, 패전한 남부는 폐허가 되었다. 그러나 이 전쟁을 계기로 미국은 비로소 지방분권화된 느슨한 연맹체에서 통합된 단일 국가로 발전했고, 미국인들은 그들이 단순히 자신이 살고 있는 주(州)의 주민(州民)이라는 차원을 넘어서 미합중국의 국민(The Citizen of U.S.A.)임을 자각하게 되었다. 국가와 국민의 자기 정체성을 확립한 미국은 이후 국력이 급성장해 결국 세계 최강대국으로 올라서게 된다. 이런 극적 반전을 이끌어 낸 데에는 미국 역사상 가장 위대한 대통령으로 손꼽히는 에이브러햄 링컨(Abraham Lincoln: 1809 ~ 1865, 미국의 제16대 대통령)의 공이 컸다. 링컨 대통령은 전쟁을 불사하면서까지 노예제를 둘러싼 국론 분열로 붕괴될 뻔한 미연방(美聯邦)을 지켜냈고, 국민을 통합해 미국을 부흥으로 이끌어 훗날 미국이 초강대국의 지위에 올라설 수 있는 기초를 닦았다.
링컨이 국가와 국민을 단합시키기 위해 내세운 국가통치 이념은 다름 아닌 민주주의였다. 1863년 11월 19일, 내전이 아직 한창 진행되고 있는 와중에 링컨은 남북전쟁 최대 격전지였던 펜실베이니아州, 게티즈버그(Gettysburg, Pennsylvania)에서 열린 전몰자를 위한 국민묘지 봉헌식에서 "인민의, 인민에 의한, 인민을 위한 정부는 이 세상에서 사라지지 않을 것입니다.(The government of the people, by the people, for the people, shall not perish from the earth.)"라는 명연설(Gettysburg Address)을 남김으로써 전후 미국이 나아가야 할 국가 비전과 통치 이념을 천명했다. 링컨은 애초 부도덕한 이유로 시작된 전쟁을 숭고한 이상으로 극복해 낸 것이다. 그는 누구나 공감할만한 아름다운 이상을 제시함으로써 내전을 승리로 이끌고, 전후 미국을 자유, 평등, 정의가 넘치는 나라로 만들고자 했다. 아마도 당시 반인륜적인 노예제 아래에서 고통받던 남부의 흑인 노예들에게는 이 이념이 누구보다 더 절실히 다가왔을 것이다. 링컨의 바람대로 이후 민주주의는 미국적 가치를 상징하는 이념과 제도가 되었고, 미국을 부흥과 발전으로 이끌었다. 오늘날 민주주의는 미국을 넘어서 온 인류가 공감하고 공유하는 보편적인 가치와 제도로 발전했다.
그러나 영화 속에 묘사된 미국은 남북전쟁 당시와는 판이하게 다른 상황에 처해 있다. 남북전쟁은 노예제 폐지와 미연방 수호라는 타당한 대의명분이 있었고, 선악의 구분 또한 명확한 전쟁이었다. 윤리적인 측면에선 당연히 북부(연방정부)가 선이요, 남부 동맹은 악이었다. 도덕적 우위를 점한 북부는 시간이 갈수록 남부를 압도해 갔고 결국 승전할 수 있었다. 하지만 영화 속 재차 내전에 휩싸인 미국은 전쟁의 명분도 명확지 않고 선악의 구분조차 모호하다. 언뜻 남북전쟁 때와는 달리 독재를 자행하는 연방정부가 악이고 연방 분리를 주장하는 서부 연합(WF)과 플로리다 동맹(FA)이 선인 것처럼 보인다.(영화는 역사 비틀기를 위해 내전에서 북부의 연방 정부가 아닌 남부의 반란 세력이 승리하는 것으로 플롯이 설정되어 있다.) 하지만 서부군 역시 혁명군이 아니라 반란군에 불과하다. 서부군은 연방정부에 비해 결코 도덕적 우위에 있지 않다. 전투 중인 서부군 병사에게 리가 "당신들은 도대체 무엇 때문에 싸우고 있느냐?"라고 묻자 그는 "저들이 우리를 죽이려 드니까 나도 저들을 죽이는 것뿐이다."라고 대답한다. 서부군에겐 정당한 대의명분도 지키고자 하는 선하고 정의로운 이념도 없다는 것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장면이다.
그러므로 결국 서부군이 벌이는 전쟁은 혁명이 아니라 단순히 중앙정부에 맞선 지방정부의 반란일 뿐이다. 많은 관객과 비평가들이 민주당 색이 강한 캘리포니아州와 공화당 색이 강한 텍사스州가 연합한 것은 현실성이 떨어지는 설정이라고 비판한다. 하지만 현시대의 화두인 양극화 문제(The Matter of Polarization)를 대입해 보면 캘리포니아와 텍사스의 연합은 충분히 실현 가능한 일이다. 2024년 기준으로 캘리포니아와 텍사스의 GDP는 각각 4조 1,030억 달러와 2조 7,090억 달러로 미국 50개 주 중 1위와 2위에 올라 있으며, 두 주의 GDP를 합치면 미국 전체 GDP(30조 3,371억 달러)의 약 22.4%에 달한다.(출처: GDP by State, The Bureau of Economic Analysis(BEA) of the U.S. Department of Commerce in April 10, 2025) 그러므로 제2차 미국 내전은 이념 갈등이 아닌 빈부 격차가 원인이 돼 벌어진 이권 다툼이라고 추론해 볼 수 있다. 국부(國富)가 집중돼 있어 배타적인 풍요를 누리는 지역인 스페인의 카탈루냐(Cataluña)州와 밀라노(Milano)를 중심으로 한 이탈리아 북부가 중앙 정부로부터 분리ㆍ독립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는 작금의 유렵 정세에 비춰봐도 미국이 빈부격차 때문에 부유한 주와 빈곤한 주로 분열돼 내전을 벌인다는 설정은 충분히 개연성이 있다. 남이야 어찌 됐건 나만 잘 먹고 잘 살겠다고 연방 분리를 주장하는 세력이 과연 선이요, 정의라 할 수 있을까?
그리고 전쟁에 임하는 서부군의 형태를 보면 결코 그들은 선한 쪽이라 할 수 없다. 서부군 병사들은 문명국의 전쟁 법칙인 제네바 협정(Geneva conventions) 따위는 아랑곳하지 않고 전투 중 사로잡은 포로들을 서슴없이 사살한다. 그뿐만 아니라 서부군은 적이라면 무장 여부와 상관없이 군인과 민간인을 가리지 않고 무차별 학살한다. 백악관 함락을 목전에 둔 서부군은 대통령 전용차를 타고 백악관 탈출을 시도하던 민간인들을 차에서 끌어내 잔인하게 학살하고, 대통령 직무실 앞에서 비무장인 채 명백히 항복의사를 밝히고 대통령 망명을 협상하려던 여성 민간인 관료를 협상은 없다며 가차 없이 죽여버리고 대통령마저 아무런 사법절차 없이 무참히 처형해 버린다. 이 마지막 장면은 서부군이 아무 대의명분 없는 반란군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극명하게 보여준다. 결국, 제2차 미국내전은 승자와 패자만 있을 뿐 어느 쪽도 선하고 정의로운 쪽은 없는 추악한 전쟁이다. 사실 역사상 벌어졌던 대부분의 내전이, 그리고 지금도 세계 도처에서 벌어지고 있는 수많은 내전의 실상은 대체로 엇비슷하다. 19세기 중반 미국에서 벌어졌던 남북전쟁이 오히려 예외에 속한다. 따라서 대부분의 내전은 국가 간의 전쟁보다 더 잔인하고 추악하다.
영화 속에 묘사된 내전에 휩싸인 미국의 모습은 한마디로 처참하다. 연방이 사분오열되고 국가 시스템과 국민들의 일상은 무너져 내려 아수라장이나 다름없는 무질서와 혼돈의 도가니에 빠져 있다. 영화 초반 뉴욕에서 리와 제시가 목격한 극렬 시위는 시민들이 행정 당국을 상대로 마실 물을 달라며 봉기해 벌인 시위였다. 경찰은 시위대를 무자비하게 폭력으로 진압한다. 이 와중에 누군가에 의해 자살폭탄테러가 일어난다. 이런 상황은 내가 2003년 5월 이라크 바그다드에서 자주 목격했던 민중 시위와 한 점 다름없이 유사하다. 시위 현장에서 죽을 고비를 넘기고 호텔에 돌아온 리가 지친 몸을 이끌고 10층 자신의 객실로 올라가려 하자 호텔 직원은 전기가 끊길 수 있으니 계단으로 걸어서 올라가라고 권한다. 그리고 기름을 사기 위해 들른 주요소에서 리가 석유값으로 300달러를 주겠다고 제안하자 무장괴한 중 한 명이 그 돈이면 샌드위치 한 개는 살 수 있겠다며 리를 조롱한다. 리가 다시 미국 달러(USD)가 아닌 캐나다 달러(CAD)를 주겠다고 하자 곧바로 거래가 성사된다. 법질서와 공권력이 사라진 자리엔 사적 폭력과 공포만이 난무한다. 자경단을 자처하는 무장괴한들이 민간인들을 붙잡아 아무 근거 없이 약탈자라 매도하며 린치(lynch)를 가하고, 어느 편인지 모를 인종차별주의 민병대는 민간인들을 대량 학살하고 시신을 구덩이에 암매장한다. 이들은 기자 일행을 붙잡고 어느 편에 속하는 미국인인지를 묻는다.(What Kind of an American Are You?) 민병대가 어느 편인지 모르는 리, 조엘, 제시는 공포에 사로잡혀 머뭇거리며 각각 미주리, 플로리다, 콜로라도(대체로 미국 남부에 해당하는 지역들이다. 따라서 민병대는 반란군에 속한다고 추정된다.)라고 자신의 고향을 밝힌다. 미국 시민권자이지만 미국 출신이 아니었던 동양계 기자 토니와 보하이는 미국인이 아니라는 이유로 무참히 살해된다.(영화 전편을 통해 가장 섬뜩하고 충격적인 장면이다.)
그런데, 영화 속에 등장하는 전투 장면이나 기자들의 모습은 현실과 괴리가 크다. 영화 초반에 등장하는 전투 장면에서 군복도 제대로 갖춰 입지 못한 어설픈 민병대가 훈련된 연방 소속의 정규군을 손쉽게 제압하는 장면이나, 서부군 스나이퍼가 아무런 엄페물이나 은폐물이 없는 나대지(裸垈地)에 포복하고(스나이퍼는 결코 자신의 위치를 적에게 노출하면 안 된다. 이는 스나이퍼의 생사가 걸린 문제로 전문적인 스나이퍼라면 결코 해서는 안 되는 기본이 안 돼 있는 얼빠진 행동이다. 나는 군 복무 중 짧은 기간이지만 스나이퍼 훈련을 받은 경험이 있다. 비록 고된 훈련을 견디지 못해 자진 퇴소했지만 스나이퍼 부대에서 저격술의 기본은 배울 수 있었다.) 건물 안에 매복해 있는 적병 스나이퍼와 총격전을 벌이는 장면은 너무나 어설프다. 더구나 민병대 스나이퍼는 적병을 조준하면서 한가로이 기자들과 인터뷰를 이어간다. 이 장면에서는 정말 실소를 금치 못했다. 저격은 고도의 정신집중을 요하는 전문적인 사격술이다. 스나이퍼가 저격 중 기자와 인터뷰를 한다는 것은 실전에서는 결코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이는 각본가와 감독이 군대나 전쟁에 관한 경험이나 지식이 거의 없다는 것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그리고 제 아무리 베테랑 종군기자라 할지라도 한창 근접전이 벌어지는 와중에 선발대의 바로 옆에 붙어 전투 장면을 촬영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영화 속에서 리와 제시는 마치 그들이 투명인간인 것처럼 병사들을 따라다니며 바로 목전(目前)에서 전투 장면을 카메라에 담는다. 병사들은 분명 전투에 방해가 될 텐데도 이런 기자들의 무모한 행동을 전혀 제지하지 않는다. 그리고 비록 군인이 아닌 민간인 신분의 기자라 할지라도 적과 아군의 구별은 뚜렷하다. 종군기자는 사전에 아군의 허락을 득해야만 아군과 동행하며 취재를 할 수 있다. 전투 중에 기자가 적과 아군을 넘나들며 자유롭게 인터뷰를 한다는 것은 현실성이 전혀 없는 설정이다. 또 아무리 종군기자라 할지라도 웬만해선 최전선에는 접근이 허락되지 않는다. 우리가 알고 있는 유명한 전쟁 보도 사진들은 사실 전투가 종료된 후에 재현되거나 사전에 연출된 장면을 촬영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대표적인 예로 제2차 세계대전 중 이오지마(硫黄島) 전투에서 미해병대가 수리바치 산 정상에 성조기를 게양하는 장면도 실제 전투 중에 촬영된 것이 아니라 전투가 종료된 후에 마치 영화를 찍듯이 철저히 연출ㆍ재현된 장면을 사진과 영상으로 남긴 것이다.(출처: https://en.wikipedia.org/wiki/Raising_the_Flag_on_Iwo_Jima)
할리우드는 늘 여러 가지 사회 문제에 대해 대체로 진보적인 성향을 유지해 왔다. 이 영화 역시 최근 미국 사회에 불고 있는 극단적인 양극화와 극우주의 물결에 대한 통렬한 비판 의식을 담고 있다. 극 중에는 누가 봐도 트럼프를 연상시키는 대통령이 등장한다. 대통령은 권위주의에 경도된 독재자로 묘사된다. 그는 헌법을 무시하고 세 번이나 집권하고도 권력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해 자신의 독재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내전까지 벌이는 무능하고 부도덕한 인물로 묘사된다. 이 영화는 트럼프 대통령의 첫 번째 임기가 종료된 2022년에서 2023년 사이에 촬영되었고, 이미 제47대 대통령을 뽑는 선거전이 시작된 2024년 4월에 개봉되었다.
도날드 트럼프(Donald J. Trump: 제45대, 제47대 미국 대통령)는 소수의 엘리트층과 다수의 하층민들 사이의 양극화가 심각한 지경에 이른 미국 사회에 우민 민주주의(愚民民主主義)의 맹점을 교묘히 파고들어 두 차례나 미국 대통령에 선출된 대중영합주의(populism) 선동 정치가다. 그와 그의 참모들은 제2기 취임 직후부터 3선 도전 의사를 공공연히 밝히고 있다. 트럼프가 재집권하면서 펼치고 있는 미국 우선주의(America First)와 MAGA(Make America Great Again) 정책은 미국과 국제사회의 기본 질서를 뒤흔들고 있다. 대단히 우려스러운 상황이다. 트럼프는 링컨과 같은 공화당 소속의 대통령이라는 점만 제외하고는 모든 면에서 링컨과 대척점에 서있는 인물이다. 링컨은 국난을 맞아 위기에 빠진 국가와 국민을 구해내고 조국을 번영으로 이끈 영웅이었다. 반면, 트럼프는 국가와 국민을 분열시키고 자국의 이익을 위해 관세를 무기로 전 세계 경제를 망가뜨리고 있다.(begger-thy-neighbor policy) 트럼프는 유세 도중 자신이 미국 역사상 가장 위대한, 그래서 퇴임 후 그의 얼굴이 러시모어 산 절벽에 다섯 번째로 새겨질 대통령이 되겠다는 거창한 포부를 밝혔다. 과연 트럼프는 후대의 역사가들로부터 어떤 평가를 받게 될까? 그의 대통령으로서의 자질과 능력, 그리고 인간성에 비추어 볼 때 그의 바람대로 긍정적인 평가를 받을 가능성은 매우 희박해 보인다.
대중의 정치적 무관심은 히틀러나 트럼프(히틀러가 주창한 '위대한 게르만족의 영광'이나 트럼프가 내세운 'America First'는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본질에 있어서는 동일한 개념이다.) 같은 독재자의 출현을 불러온다. 영화 속엔 기자들이 샬러츠빌로 향해 가는 도중 내전과 무관하게 평온을 유지하고 있는 작은 마을에 들르는 장면이 나온다. 마을 주민들은 그들이 누리고 있는 안온함에 빠져 우리와 무관한 내전 따위엔 아무 관심이 없다고 태연히 말한다. 이 장면은 국민들의 정치적 무관심이 어떻게 민주주의를 망가뜨리는지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주권재민(主權在民)이라는 너무나 당연한 국민의 권리 그리고 주인 의식을 망각한 무책임한 국민은 결국 독재의 노예가 될 수밖에 없다는 교훈을 심어주는 장면이다.
이 영화는 제아무리 선진적이고 부강한 나라라 할지라도 국가의 근간이 되는 민주주의라는 대원칙이 사라져 버리면 한순간에 무너져 내릴 수 있다는 강력한 경고의 메시지를 담고 있다. 영화 말미에 워싱턴 D.C. 점령을 위한 전투 중에 서부군의 탱크가 포를 발사해 링컨 기념관(Lincoln Memorial)을 파괴하는 장면이 나온다. 이것은 링컨 대통령의 게티즈버그 연설을 비꼬아 민주주의를 배제한 정부는 손쉽게 사라질 수 있음(The government without Democracy shall easily perish from the earth.)을 상징적으로 보여주고자 한 감독의 연출 의도가 엿보이는 장면이다. 민주주의 퇴행과 정치ㆍ경제적 양극화 심화에 대한 경고 등 현재 정치 상황에 대한 이 영화의 접근 방식은 참으로 시의적절했다. 트럼피즘(Trumpism)의 부활과 대통령 탄핵사태 등 국내외적으로 정치 상황이 뒤숭숭한 이때 새삼 민주주의와 평화의 소중함을 되뇌게 된 영화였다.
<완 결>